40대 반란과 나의 천로역정
나는 새벽같이 두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출퇴근하던 워킹맘이었다. 1남 8녀 집안의 외며느리로, 그리고 열성적인 교회 ‘김자매’로 삼십 대를 빼곡히 채워 살았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던 만큼 나 역시 빛나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그때의 내가 가장 예뻤다고 말하곤 한다.
외동딸로서 친정아버지께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유학 시절 5년간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헛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착한 며느리이면서 동시에 효녀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는 내가 결혼해 두 아들을 낳은 것을 박사학위에 못지않은 결실로 여기셨는지, 학위를 끝내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 조용한 배려를, 나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에야 제대로 이해했다. 살아 계실 때 더 잘하지 못한 마음이 오래 남았다. 아버지는 평생 나에게 사랑의 빚만 남기고 가셨다.
교회생활에 열심이었던 만큼, 육신의 가족에게는 소홀했던 면도 있었다. 아버지는 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셨고, 점점 한쪽 몸이 마비되어 갔다.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차도가 없었다.
아버지를 뵙기로 한 어느 주말, 나는 교회 일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하늘이 무너진 듯 했다.
어머니 말로는 나를 기다리느라 눈을 감지 못하고 기다리셨다고 했다. 나는 오열하며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눈을 감겨 드렸다. 그날 이후, 내 삶의 중심은 완전히 바뀌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더 이상 교회를 내 삶의 최우선으로 삼지 않으려했다.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내 가슴이 뛰는 쪽,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먼저 선택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런 개인적인 변화가 계기가 되어, 나는 다니던 교회를 떠났다. 그곳은 자신들의 성경 해석만이 유일한 진리라 믿었고, 다른 해석의 가능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십 년 가까이 교회생활을 했지만, 종교적 열심과는 별개로 쉽게 달라지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내가 생각하는 교회는 특정 교단이나 벽돌 건물이 아니었다. 광야에서 말씀으로 모였던 초대 공동체처럼, 삶에서 변화되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했다. 그런 교회를 찾다 인터넷에서 비슷한 갈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여러 교파를 거쳤지만 인간적인 실망 끝에 신앙의 순수함만을 붙들고 나온 이들이었다.
나는 교회 장로님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 했는데, 저는 더 큰 진리의 바다로 나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다니던 교회를 정리했다. 그렇게 온라인 공동체와 교류하며 때때로 오프라인 모임도 가졌다.
그러나 그 모임은 결국 무너졌다. 중심인물의 다중적 정체성과 거짓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아이디를 만들어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꾸며내며 사람들을 현혹했다. 그 폭풍의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고, 결국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그 공동체는 해체되었다.
이 경험 이후, 나는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에 거리감을 두게 되었다. 종교라는 틀 안에서 사람을 몰입시키고 조종한다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기독교라는 강을 건넜다"
그럼에도 나의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삶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지,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떤지, 나는 여전히 알고 싶었다. 이제 관심은 종교가 아니라 영성으로 확장되어갔다.
불교에는 창조주 신이 없다. 그러나 싯다르타 고타마는 왕궁을 떠나 6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고, 45년 동안 고집멸도의 *사성제로 인간의 고통과 마음의 작동 원리를 설명했다.
무상, 고, 무아라는 가르침은 불혹의 나이에 있던 나에게 삶을 이해하는 또 다른 언어가 되어주었다.
기독교 역시 다시 보게 되었다. 예수의 생애는 대부분 기록되어 있지 않고, 신약성경은 주로 짧은 사역 기간과 교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교회 역사 속에서 성경이 정리되고 교리가 확정되는 과정에는 정치와 권력의 영향도 있었다.
20세기에 발견된 *고대 문서들은 성경이 하나의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형성된 기록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믿음을 부정하기보다는, 믿음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나는 이제 특정 종교의 울타리 안에 있지 않다. 그러나 삶의 진실을 묻는 질문에서는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인간이 만든 종교의 껍데기를 벗기고 나서야, 비로소 신앙과 삶 자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한다.
이것이 마흔에 시작된, 나의 새로운 천로역정이었다.
*사성제 (四聖諦)~ 불교 교리의 핵심인 고집멸도
고~인간의 삶은 필연적으로 괴로움이다
집~ 이 괴로움은 탐진치(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집착에서 비롯된다
멸~ 괴로움의 원인인 집착과 번뇌를 소멸할 수 있다
도~ 번뇌 소멸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은 중도인 팔정도다.
팔정도 (八正道)~ 정견, 정사, 정어, 정명, 정업, 정정진, 정념, 정진
팔정도는 치우치지 않은 중도(中道)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부처님 가르침의 시작과 끝이다.
*새로 발견된 주요 문서들
1. 사해 문서 (Dead Sea Scrolls / 쿰란 문서)
~1947년 이스라엘 사해 인근 쿰란 동굴에서 한 목동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고대 문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구약성경 사본으로, AD 900년경의 것으로 알려졌던 기존의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성경 사본보다 약 1,0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구약성경의 거의 모든 책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이사야서 전체 두루마리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
또한, 당시 유대교 종파였던 에세네파의 규율이나 주석 등 외경 및 비성경적인 문헌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2. 나그함마디 문서 (Nag Hammadi Library)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 지역에서 한 이집트 농부에 의해 발견된 초기 기독교 및 영지주의(Gnosticism) 문서다.
파피루스로 된 13권의 가죽 제본 책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50여 편 이상의 다양한 문헌이 담겨 있는데 이 문서들은 4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가 비정경 서적의 사용을 금지한 후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은 예수의 어록 중심인 「도마복음」, 「빌립복음」, 「마리아복음」, 「유다복음」 등의 주요 복음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서의 의미는 초기 기독교 시대의 다양성을 보여주며, 당시 주류 교단이 '이단적'이라고 여겼던 영지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책들은 당대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정경으로 채택되지 않았으며, 현대 성경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3. 시나이 사본 (Codex Sinaiticus)
19세기에 시나이반도의 성 카테리나 수도원에서 독일의 성서학자에 의해 발견된 고대 그리스어 성경 필사본이다. 4세기 중반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거의 완벽한 형태의 기독교 성경(구약 헬라어 70인역과 신약 전체 포함) 사본 중 하나다.
이 발견은 성경 본문 비평 연구에 매우 중요하게 활용되며, 현존하는 신약성경 본문의 가장 오래된 증거 자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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