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스와 만난 삶 (26)

낯선 집에서 배운 환대와 세계 시민의 연습

by 김별


나에게 여행은 성향이 아니라 오래된 본능이었다


이십 대에 유학을 떠났고, 삼십 년을 외국어 교사로 살았으며, 지금도 여행을 좋아하는 데에는 하나의 맥이 있지 않나 싶다.


가장 오래된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내가 혹시 머나먼 별나라에서 온 공주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외국’이라는 말조차 몰랐을 때부터, 언젠가는 아주 멀리 가 보리라 마음먹던 아이였다.


그래서일까.

1980년대 유학은 흔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내겐 비교적 자연스러운 선택이 되었고, 유럽 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나들던 배낭여행도 설렘과 긴장이 뒤섞였을 뿐 나에게는 낯설지가 않았다.


그리고 혹시나 외국에서 오래 살 줄 알았던 삶은 오 년 만에 귀국으로 방향을 틀었고, 곧바로 발령을 받아 결혼과 출산, 자녀 양육으로 이어지는 바쁜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숨 가쁘게 살다 한숨 돌릴 즈음, 나는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남편의 여섯째 누나를 통해 알게 된 서바스(Servas) 라는 여행 공동체였다.





서바스, 집을 나누는 여행


서바스는 유네스코 산하의 국제 평화 여행 단체로, 서로의 집을 열어 호스트와 게스트가 되는 방식으로 여행한다. SERVAS는 국제공용어인 에스페란토어로 We serve, 우리는 봉사한다라는 뜻인데 인종과 민족, 종교나 이념, 국경을 넘어 여행을 통한 우정을 나누며 민간 외교와 세계 평화증진을 도모하려는 목적도 있다.


시누는 올케는 “외국에 살다 왔고 영어도 하니, 앞으로 여행할 거면 이 단체를 알아두면 좋을 것”이라며 나에게 서바스를 소개해 주었다. 가뭄에 단비 같은 제안이었다.

다만 그 시절 나는 교회 생활과 시댁 일로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 냈기에 대신 국내 모임에 참여하며 우리나라를 찾는 해외 회원들을 집으로 맞이하는 간접 여행부터 시작했다.



문화 충격은 침대 위에서 온다


기억에 남는 방문객중 가운데 하나는, 두 자매가 아흔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온 일본 가족이었다.

우리는 마산 집에서 가까운 김해 왕릉과 우포늪을 함께 다녔고, 남편은 운전도 하고 노모의 휠체어도 밀며 정성을 다했다.

이틀 머무는 동안 잠자리를 안내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노모와 작은딸은 온돌방, 큰딸 부부는 더블침대 방을 쓰시라 했다. 그런데 언니가 말하길, 자기가 노모를 모시고 자겠단다.

다음 날 아침, 더블침대 방에서는 형부와 처제가 함께 나왔다.

나의 놀란 표정을 눈치챘는지 언니는 웃으며 설명했다. 동생이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여행을 좋아하는 자신이 해외에 나가면 동생이 형부를 돌봐주곤 했다는 것이다.

나는 “소우 데스까…” 하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이게 문화 충격이 아니면 뭘까’ 싶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한국 회원은 단칼에 말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되지.”

문화는 참, 가깝고도 멀다.


너무 완벽한 환대의 나라, 일본


그 후 우리 가족이 일본을 여행하며 서바스 회원 토모코상 댁에 머문 적이 있다.

그녀는 기차역까지 마중 나와 우리 가족 네 명을 차에 태우고 이층집으로 데려갔다. 저녁에는 이웃 회원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어주더니, “편히 쉬라”며 본인은 같은 동네의 어머니 집으로 가서 주무셨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와서 아침상을 차려주고, 떠나는 기차역까지 또 데려다주었다.

픽업부터 식사까지, 그야말로 말 그대로 풀 서비스였다.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요…”라는 말이 입에 맴돌 만큼 그것은 완벽한 일본식 환대였다.






프랑스식 위생과 한국식 정성의 간극


프랑스 영어교사 F 도 잊을 수 없다.

그녀는 프랑스인은 노래를 못 한다는 나의 편견을 단번에 깨준, 노래와 자전거를 사랑하는 활달한 싱글 레이디였다. 남편은 그녀의 노래를 녹음해 CD로 만들어 선물했다.

그녀는 한 달간 한국을 여행하며 릴레이 호스트를 받았는데, “아침마다 불고기와 나물이 나와서 너무 힘들었다”는 고백을 듣고 나는 그날부터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간소화했다.


다만 한 가지 난감했던 건 여름철 그녀의 땀 냄새였다.

샤워를 권해도 웃으며 사양하던 모습에, 프랑스 기숙사 시절 청소하던 아주머니가 “한국 여학생들은 왜 매일 머리를 감느냐”며 툴툴대던 기억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


우리는 너무 씻어서 탈이고, 그들은 물을 아껴서 탈인가 보다.

그래서 프랑스는 결국 향수가 발달한 나라가 되었다.


지역회원의 집에서 환대
집밥과 남편과의 노래경연
밥이 부담스럽다는 그녀에게 샌드위치로 아침준비
근처 한옥 탐방


커피를 사랑한 호주 부부와 파스타 협정


호주 부부 K와 H도 기억에 선명하다.

커피를 너무 좋아한 K는 남편이 내려준 이태리식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하루에도 몇 잔씩 더 부탁했다.

그의 잦은 요구에 나는 솔직히 ‘이건 좀…’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나중에 귀국 후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택배로 보내왔다.


다만 이전 호스트에게서 “카페에서도 커피 값을 내지 않더라”는 말을 들은 터라, 나는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오늘 저녁은 같이 장을 봐서 너희가 요리하면 어때?”

요리를 못 한다는 부인 H 대신 남편 K가 스파게티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심플한 파스타였지만 그날 이후 우리는 훨씬 편해졌다.

서바스는 나눔의 여행이지만,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부담을 느끼면 우정에 금이 가고 상호 화평이 무너질 수 있다.

나중에 우리 지역 회원들은 “그 부부보다 요리시킨 네가 더 무섭다”며 웃었다.


호주부부와 마산 통일돌탑과 남지 유채공원 사진
밥은 뜨겁기도 해서 나는 앞 접시 대용겸 주로 접시에 담는다
호주부부가 해 준 파스타 즐감




뉴욕의 쿨한 호스트와 자유의 미학


2009년 나는 뉴저지에서 한 달 연수를 받으며, 매 주말 뉴욕 맨해튼의 서바스 회원 P 아저씨 집에 머물렀다.

그는 첫날 냉장고 위치와 현관 키를 주며 말했다.

“네 집처럼 써.”

정성 가득한 상차림 대신, 자유와 신뢰를 건네는 미국식 호스트였다. 덕분에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센트럴파크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주말, 완전 방임 자유형 호스트에 살짝 서운할려는 나에게 아저씨는 맨해튼을 함께 걸으며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맛있는 식사까지 대접해 주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의 환대는 느슨함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일정과 시간적 자율성에 대한 최대 존중이었다는 것을.



집을 열면 세계가 넓어진다


2013년 더블린 연수 때도 나는 서바스 회원 덕분에 특별한 경험을 했다. 트리니티 대학에서 일하던 사서는 일반인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유서 깊은 도서관 내부 깊숙한 곳을 보여 주었고, 우리는 기네스 맥주를 마시며 더블린의 역사와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어 방문한 코크에서는 음악교사 니콜라스와 대학 강사인 션본 부부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채식주의자인 그들은 시장에서 구한 버섯으로 직접 요리를 해 주었고, 벽난로 옆에서의 식사와 직접 피아노연주를 해 주던 다정함은 서바스 정신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벽난로 앞의 리조또와 화이트와인~ 부부의 온정이 느껴졌다
니콜라스네 아늑한 거실과 베란다
감성적이던 그의 피아노 연주
입을 맞추면 언변의 재능을 얻게 된다는 전설적인 코크의 블라니성




2014년 여름, 가족과 함께한 유럽 여행에서는 스위스의 피터 쿤츠 씨와의 만남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에너지 박사이자 종교 간 평화운동가인 그는 알프스를 관광지가 아닌 ‘느끼는 산’으로 안내해 주었고, 우리는 하이디 이야기 속 풍경 같은 산과 들을 직접 걸으며 자연을 만났다.


그의 집에서 멀지않은 수도 베른을 직접 안내하며 보여주었고, 그가 알려준 감자를 치즈에 발라먹는 스위스식 아침은 지금도 십년 넘게 우리 식탁에 남아 있다.


유로가 아닌 스위스 프랑으로 돈을 환전하려했을 때 아저씨는 You’re my guest.하시면서 일체 돈이 왜 필요하냐?며 모든 비용을 다 내 주셨기에 나는 미안해서 장을 봐서 잡채와 불고기등 요리를 해서 저녁을 대접해드렸다.

한국음식을 너무나 좋아하셔서 내가 더 감사할 지경이었다. 아들이 한번 간식처럼 끓인 라면도 좋아하셨다. 언제 한번 한국에 오시면 꼭 모시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종교 평화주의자이자 에너지 박사이신 피터 쿤츠님과 함께


피터 아저씨는 시골이 좋다며 일부러 수도 베른에 가까운 농가를 렌트해서 사셨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피터 아저씨를 따라 걷기
옥빛을 자랑하던 베른의 깨끗한 강물



서바스의 주고받는 우정은 내가 받은 환대를 바로 같은 사람에게 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다시 베품으로써 결국 그 순환이 돌고 돌게 만드는 나눔의 선순환이 되게 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게 서바스 여행에서 내가 받은 친절을 꼭 같은 사람에게 돌려주지는 못하지만 그 친절은 국경을 넘어 선순환하며 다시 세상으로 흘러간다.


집을 열어 준다는 것은, 사람을 믿어보겠다는 선택이고
세상이 조금은 평화로울 수 있다고 믿는 연습이다.

그것이 내가 서바스를 통해 배운 가장 따뜻한 세계 시민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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