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다시 꿈을 꺼내다 (25)

시 당선과 시낭송 대회

by 김별


여행과 글쓰기


5개월의 혼자 여행은 나에게 인생 2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고, 동시에 오래 품어왔던 꿈들을 다시 꺼내 보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글쓰기였다.


지금 나는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약 1800명의 구독자와 함께 글을 쓰고 있다.

여행을 하며 보고 느낀 것들, 그 길 위에서 확장된 나의 생각과 의식을 글로 옮기고 싶어한다.

내 삶에서 체험하고 발견한 것들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언어로 남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여행기 두 권을 낸 뒤에도 나는 여전히 쓰고 싶다. 호스트 여행기, 그리고 언젠가는 시집도.

우연한 계기로 중앙문예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내가 주로 쓰는 에세이와는 별도로 나는 시를 더 써 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소설보다는 시라는 압축된 형식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시와 에세이의 경계 어딘가에서, 지난 30여 년간 내가 붙들어 왔던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 그리고 영성과 탐색의 흔적을 한 편의 풍경처럼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한다.


짧고 응축된 언어로, 그러나 오래 남는 울림으로.





시를 말하다


나는 원래부터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기를 좋아했다.

어쩌다 등단으로 시인이 된 후에는 자연스레 시 낭송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배울 거라면 아예 빠르게 배우고 싶어, 대회 참가를 목표로 삼았다.


대회를 한 달 반 앞두고 시를 외우고 연습해 동영상 예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경남 진주 개천예술제 시 낭송대회에 첫 출전을 했다.

강당에 도착하자, 이미 여러 해 낭송을 해 온 듯한 참가자들의 리허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분위기에 조금 위축이 되니 문득 ‘내가 여기 왜 왔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막상 대회가 시작되자, 나는 처음 온 자리인 만큼 밑져봐야 본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차례는 48명 중 47번째였다. 긴 대기 끝에 무대에 섰고, 나는 그 순간의 나로서 할 수 있는 만큼을 최대한 쏟아냈다. 다소 거친 부분도 있었지만, 초보의 한계라 여기며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는 장려상이었다. 상의 크기보다, 첫 도전에서 그 자리에 섰다는 사실이 더 의미 있었다.

무엇보다 준비하는 시간, 몰입했던 과정 그 자체가 나에게는 이미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시 낭송을 통해 문장이란 것이 장단과 고저, 강약, 완급, 리듬으로 그리 달리 표현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나는 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내 언어와 감정도 조금 더 섬세해졌다.

그 변화가 내가 시를 쓰가는데 앞으로 한 발 더 다가서게 한 것이 고마웠다.






때를 아는 삶


인생이란 영혼이 육체에 깃들어 머무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출생의 첫 울음부터 마지막 숨에 이르기까지, 그 시간대 전체가 곧 한 사람의 생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떤 ‘때’에 와 있는지를 아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씨를 뿌릴 때와 돌볼 때, 거둘 때를 모르면 농사를 지을 수 없듯, 삶에도 저마다의 철이 있는데 그 흐름을 모른 채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거꾸로 산다면, 우리는 흔히 말하는 ‘철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지난 60년 또한 각자의 때에 맞게 펼쳐져 왔다.

십 대와 이삼십 대가 봄이었다면, 내 인생의 사오십 대는 치열한 여름이었다.

그리고 지금, 환갑을 맞은 나는 가을의 초입에 서 있는 듯하다.

머지않아 수확의 계절을 지나, 저장과 휴식, 관조의 시간으로 들어갈 것이다.





자유에 대한 좌우명


내가 가 본 크레타 섬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지에는 이리 적혀있다.


I hope nothing.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I fear nothing.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So I am free.

나는 자유롭다


다소 건방져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래전부터 나는 그의 묘비명을 내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 후 바랄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을 때 비로소 자유롭다는 말,

그 말이 실제로 집착과 기대를 내려놓게 했고 그럴수록 삶은 더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나는 점점 더 실감하게 되었다.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날 때는 마치 진흙탕속에 뒹굴던 개가 무거운 흙을 털어버리듯 그렇게 온 몸을 뒤흔들어 무거움을 털어버리고 하루를 가볍게 시작한다.



사람을 만나고, 웃음을 되찾다


퇴직후 이제는 시간이 생겨, 어릴 적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웃고 떠들며 밤을 보내다 보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기분이 든다.

황토방 좁은 공간에 여럿이 모여 얼굴 팩을 붙이고 윷놀이를 하며 웃던 며칠은, 몸에 쌓여 있던 묵은 혈이 풀리는 듯한 시간이었다. 사람은 결국, 어릴 적의 성정 그대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유년의 친구들을 보며 새삼 느꼈다.


초등학교 동창회는 작은 가족 모임과도 같다. 집성촌이었던 고향의 기억, 서로 얽힌 친척 관계, 그리고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교가의 가사까지. 세월이 흘러도 유년의 정서는 그렇게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




메멘토 모리 — 죽음을 기억하며

나에게 ‘메멘토 모리’는 친정어머니였다.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냈기에, 어머니의 죽음은 여전히 내 삶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떠난 사촌오빠의 죽음은, 그 기억을 다시 선명하게 했다.

같은 시기에 암 선고를 받았지만, 나는 조기에 발견되어 회복했고 오빠는 긴 항암 끝에 세상을 떠났다.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간 오빠를 보며, 삶의 덧없음뿐 아니라 하루의 절실함을 느꼈다.


그 이후로 나는 더 많은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꽃이 보고 싶으면 꽃을 보러 가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면 미루지 않고 만나며, 먹고 싶은 것은 먹는다.

되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남은 시간에 대하여


사람마다 선택은 다르다. 끝까지 무언가를 성취하며 사는 이도 있고, 느긋하게 하루를 음미하며 사는 이도 있다. 어느 쪽이 옳다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살아보는 일일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장 풍성한 시간을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남은 시간이 한꺼번에 포개지는 시기.


그렇다면 유년의 꿈과 청춘의 열정, 노년의 지혜를 함께 써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이제
그렇게
나의 세 번째 30년을
조용히
기대해 본다.




유안진 시인의 시 자화상 대회 준비하면서 녹음한 게 있어서 올려본다 :)

https://brunch.co.kr/@c3e689f797bd43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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