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자유를 위해 떠나다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서 여행은 늘 빠지지 않는 항목이다.
그다음으로는 해보지 않은 운동이나 악기, 그림 같은 취미들이 따라온다.
누구나 이번 생에 한 번쯤은 다른 삶을 꿈꾼다.
내가 “혼자 여행을 간다”라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대부분 걱정이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어?”
“불안하지 않아?”
“무섭지 않니?”
물론 설렘만큼 긴장과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이든 처음 시작할 때 드는 마음이라 여겼다.
명예퇴직 후, 친정어머니 병간호로 8개월을 보내고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나는 비로소 나의 몫의 시간을 살아도 되겠다고 느꼈다. 그때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쉼’이자 ‘자유’, 그리고 ‘떠남’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장 단순하게 가능하게 하는 것이 여행이었다.
되도록 멀리, 가능하다면 길게.
혼자 떠나는 자유여행.
그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던 중, 한 친구가 뉴질랜드 패키지여행을 간다며 전화를 해왔다.
영어도 잘하는 친구였기에 자유여행을 권하자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무서워서 못 가.”
나는 말했다.
“한국에서 택시 앱 쓰듯, 숙소랑 이동 앱만 쓰면 돼.”
그래도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자기가 해보지 않은 일을 가장 무서워한다. 접싯물에도 빠져 죽는다는 말처럼 말이다.
내게 여행은 일상에서의 휴식이 아니라, 일상과의 결별이어야 했다.
낯선 사람과 장소 속에서, 내가 몰랐던 나 자신을 만나는 일.
의식이 조금 다른 차원으로 확장되는 경험.
그래서 혼자여야 했다.
부부나 가족 여행은 결국 가족이 중심이 된다.
친구와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혼자 가면 100을 보고, 둘이 가면 50을 본다”는 말처럼,
내게 필요했던 여행은 친목이 아니라
자유와 성찰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첫 목적지는 북아프리카 이집트의 다합이었다.
마산에서 인천, 인천에서 이스탄불을 거쳐 꼬박 하루가 넘는 이동 끝에 도착한 곳.
굳이 다합을 선택한 이유는 젊은 배낭족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인 그곳,
물가가 싸고 한국인이 많은 곳에서 여행의 ‘적응기’를 갖고 싶었다.
마침 도착한 날이 라마단이 시작되던 날이었다.
새벽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소리를 들으며 짐을 놓고
바닷가 카페에 가서 아침을 먹었던 첫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렇게 다합에서 느긋하게 스노클링을 하며 지내던 중, 문득 카이로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방값을 미리 냈지만, 여행에서 계획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다만 떠나기 전, 이곳에 온 이유였던 다이빙만은 해보고 가기로 했다.
체험 다이빙 전 20분 호흡 교육을 받으며 나는 몹시 긴장했다.
사람의 생명은 호흡을 멈추면 3분 안에 끝이다. 그러니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가!
드디어 그 무거운 산소통을 메고 물갈퀴를 신은 채 뒤뚱거리며 입수했다.
물이 무서웠다기보다, 마우스피스를 놓칠까 봐 온 신경이 입에만 가 있었다.
그러다 조금씩 호흡이 안정되자 물고기와 산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 놓고 즐기기보다는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수면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다이빙 체험보다는 물속 ‘두려움 하나를 넘었다’는 안도감,
나의 또 다른 버킷 리스트 하나를 숙제하듯 해치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전히 스노클링이 더 좋다.
예습 없는 여행의 기쁨
나는 여행 전문가도 아니었고,
장기 자유여행 경험도 없었다.
60이라는 나이에, 여자 혼자,
5개월 반 동안 떠난 여행이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기에 시간에 쫓기지 않았고,
누구 눈치 볼 필요가 없어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렀다.
지루해지면 떠났고,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는 오래 있었다.
그렇게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거쳐
18개국 48개 도시를 다녔다.
‘예습 없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3주간의 지중해 크루즈 여행이었다.
여행 중간쯤 지치기 쉬운 시기에, 삼시 세끼 먹여주고 재워주는 크루즈는 최고의 쉼이었다.
산토리니, 미코노스, 델로스 섬 등 크루즈가 아니면 쉽게 가기 어려운 곳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순간은, 30년 전 유학하던 프랑스 툴루즈를 다시 찾았을 때였다.
기숙사 주변의 나무들이 그대로 서 있었고, 건물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강산이 세 번 바뀌었는데,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이 반가웠고
내가 바게트빵을 사러 건너 다니던 철교다리를 보니 눈물이 났다.
5개월 여행의 끝자락, 남편과 큰아들을 베트남에서 만났다.
타국에서 가족을 만나는 기쁨은 특별했다.
혼자 떠난 여행이 마지막에 가족과의 재회로 마무리되자,
여행 전체가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나만의 여행이, 나를 마중 나온 가족과 함께 귀환한 셈이었다.
나는 여행 중 매일 일기를 썼다.
혼자였기에 가능했고, 혼자였기에 더 자유스러웠다.
하루의 여정을 마치면 어둠이 내리기 전 숙소로 돌아와 그날의 동선을 적고, 사진을 정리했다.
감정과 기억이 흩어지기 전에 붙잡아 두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쌓인 기록들은 훗날 여행기를 써낼 수 있게 한, 가장 단단한 밑천이 되었다.
여행은 3부작으로 완성된다.
준비가 1부,
실행이 2부라면
기록은 3부다.
그리고 그 기록들을 다시 되새김질할 때
시간과 거리를 두고 돌아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마치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꽃을 내려오며 본다”는 말처럼.
*내 여행기 일단 떠나라 기록들은 몇 개의 브런치북으로 나눠져 올려져 있다.
나는 1986년 프랑스 유학과 유럽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대략 50개국 이상을 다닌 것 같다.
앞으로 체력이 허락하는 동안은 더 먼 곳을 먼저 가고 싶다.
다만 여행을 하더라도 1년의 절반 이상은 국내에 머물 것이다.
가족은 언제나 나의 베이스캠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이 언제든 내가 머무는 곳으로 와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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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버킷리스트(Bucket List)’는 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
‘Kick the bucket’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내게 버킷리스트는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목록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 라마단~라마단(Ramadan)은 무슬림들이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금식하는 성스러운 기간인데 이슬람 5대 의무 중 하나다. 한 달간 금식뿐 아니라 물, 흡연, 성행위도 금한다.
이는 신에 대한 순종과 욕망의 절제를 통해 영적 성장에 이르기 위한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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