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책으로, 그리고 (24)

삶의 두 번째 문턱에서 배운 것들

by 김별


여행의 완성은 기록에서 출간으로~!


여행을 마치는 일만큼이나, 그 시간을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묶는 일 역시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원고를 다듬고 사진을 선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었다. 시간도, 비용도, 집중력도 필요했다.

그럼에도 나는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였던 ‘출간’을 위해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끌어다 썼다.

그렇게 2023년 5월, 첫 여행기 "일단 떠나라"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렇게 갈망하던 나의 첫 책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느긋해졌다.
5개월 여행을 마치고 나는 원래 자리로 돌아왔지만, 나는 더 이상 떠나기 전의 내가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한결 여유로워졌고, 떠나지 못해 안달하던 조급함과 긴장은 사라지고 마음의 여백도 생겼다. 결국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이동거리만큼 의식이 확장되는 또 다른 성장 방식이었을 것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유한하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는 더욱 하고 싶은 일을 미루며 살기보다, 그때 그때 해소하며 살려한다.

책임과 의무로 가득 찼던 인생 1막이 끝났다면, 남은 2막은 ‘더블’이 아니라 ‘트리플 세제곱’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하는 일이 몸과 마음 모두에 이롭고, 나중 하지 않은 걸 후회할 일이라면 주저 없이 하기로 했다. 그렇게 산다면 30년을 산다 해도 실제 체감상 90년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여행기 끝에 나를 낳고 날 수 있도록 두 날개를 달아주신 부모님께 특별한 감사의 말을 남겼다.

아버지는 20대의 나를 외국으로 보내 또 다른 세계를 보게 해 주셨고, 어머니는 언제나 넓고 따뜻한 품으로 나를 품어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멀리, 높이 맘 편히 날 수 있었다.


환갑이 되던 2023년, 첫 책을 낸 나는 다시 한 달간 중앙아시아와 몽골로 떠났다.




사람들은 보통 여행의 난이도가 제일 낮고 가까운 동남아를 먼저 가고 그리고 서구 문명국 영향력이 있는 나라 유럽을 간다. 그리고 그다음에 남미나 아프리카를 간다. 그런데 같은 아시아 대륙이면서도 스탄국은 멀게 느껴지는지 선뜻 나서지 않는다.

중앙아시아는 우리와 지리적, 유전적으로 가깝지만, 오랫동안 단절되어 낯설게 남아 있던 땅이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는 뛰어난 자연환경과 저렴한 물가, 그리고 현지에서 느껴지는 한국에 대한 호감 덕분에 머지않아 주목받는 여행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나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세 스탄국의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 도시들을 찍고, 텐산 산맥을 따라 광활한 초원을 달리며 산정 호수들을 만났다.


여행 내내 텐산 산맥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하늘에 이르는 산’이라는 이름처럼, 만년설을 이고 선 봉우리들은 중앙아시아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풍경이 되었다.

한국의 산이 마을을 감싸 안는 병풍이라면, 그곳의 산은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존재였다. 사람이 자연 속에 스며들어 살기보다는, 겨우 몸을 숨긴 채 공존하고 있는 듯 보였다.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가이드는 자신의 나라를 “동서양 어느 쪽도 아닌, 그 사이의 게이트”라고 표현했다. 그 말은 유목민의 역사와 러시아의 영향,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 선 그 나라의 정체성을 정확히 짚어냈다.

그리고 나에게 그 경계 위에 선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 일 끼? 곱씹어 보게 했다.


중앙아시아는 혼자 자유여행은 불가하다. 그 넓은 동선의 반경을 팀이 있어야 봉고차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과 말레이시아, 대만 등 다국적 팀으로 이뤄진 팀으로 함께 자유여행을 했다.

그리고 알마티에서 다국적 여행팀과 헤어진 뒤 혼자 몽골로 향했다.


드디어 온 칭기즈칸의 나라에서 나는 내 안의 유목민의 DNA가 깨어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보름간 몽골 여행을 마치고 나는"몽골몽골 한 몽골여행"이라는 또 한 권의 여행기를 출간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에 대한 감사의 기록이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했다. ‘서울의 거리’, 한국 편의점, 한국 브랜드들이 도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급속한 성장과 변화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과거를 떠올리게 했고 몽골 인구 열 집 중 한 집은 한국을 다녀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우리와는 고려시대 거의 백 년 이상 사위나라라는 이름으로 한몽 문화교류가 있었던 역사적 배경 또한 친숙함을 불러일으켰다.





몸과 마음의 리셋


몽골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나는 미뤄두었던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장 내시경 결과 4cm 크기의 종양이 발견되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같은 설명을 듣고도 남편과 내가 받아들인 의미는 달랐다. 남편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나는 마취에서 덜 깬 사람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이틀 뒤, 확진을 받았다. 남편은 두 아들과 단톡방을 열었고, 큰아들은 전화를 걸어와 울음을 터뜨렸다.

평소 죽음을 담담히 이야기하던 나도, 아들의 오열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상급병원으로 옮겨 정밀검사를 받고, 다행히 비교적 이른 시기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여행 중 겪었던 불규칙한 배변 습관과 잦은 복통이 ‘몸이 보낸 마지막 경고’ 요 신호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암진단과 수술 그리고 회복의 시간을 통해 가족이 하나로 묶이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결국 불행으로 보였던 암은, 나에게는 감사가 더 컸던 사건이 되었다.

수술 후 1년간의 불편함도 있었지만, 이제는 정기검진 주기도 늘어나 한숨을 돌린다.


내가 아프기 전에는 마음만 챙기고 몸을 소홀히 했다면, 이제는 둘을 함께 돌보는 삶을 선택했다. 그때 병상에서 겪고 깨달으며 느낀 기록들은 브런치 연재 "나의 대장암 병상일지"로 묶어 두었다.


다행히 암은 조기발견이어서 항암치료는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나는 하늘에 감사했다.


암과 수술은 나에게는 몸의 중요성을 통해 삶의 균형을 배우게 한 계기가 되었고 그 후 큰 쉼을 거쳐 내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리셋과정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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