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 환대로 지도 위를 걷다 (27)

서바스 국제미팅에서 호주까지, 사람을 따라 이어진 여행

by 김별



서바스, 오래된 소원을 이루다


명예퇴직을 앞두고 내가 품었던 작은 소원 하나가 있었다.
서바스(SERVAS) 국제미팅에 참석하는 일이었다. 4년마다 열리는 이 국제행사는 방학 기간이 아니었기에 현직 교사였던 나에게는 늘 그림의 떡이었다.

국제행사에 참여하면 세계 곳곳의 여행 친구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고, 행사국에서 호스트를 만날 기회도 훨씬 넓어진다.


그리고 마침 2025년에 프랑스 디종에서 서바스 국제대회가 열렸고 나는 처음으로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다.

45개국에서 185명이 모였고, 디종 부시장이 직접 환영 인사를 전하는 공식적인 자리였다.

그 자체로도 감격스러웠지만, 그곳에서 무려 여섯 가정의 호스트를 경험하는 특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툴루즈로 돌아가다


환영회 자리에서 나는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내게는 제2의 고향 같은 도시, 툴루즈에서 온 피에르였다. 그는 나를 망설임 없이 툴루즈로 초대했고, 그의 아내 브리지트는 프랑스 서바스 회장이었다. 여행의 신이 다시 한번 미소 지은 순간이었다.


행사를 마친 뒤 우리는 디종에서 툴루즈까지 약 650km를 차로 내려갔다. 센트랄 산맥과 구릉, 농촌 풍경이 이어지는 길 위에서 피에르는 프랑스의 자연과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브리지트와 가족과 은퇴, 그리고 서바스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브리지트는 영어말 ‘호스트(host)’보다 불어로 ‘아꿰이르 (accueillir, 마음을 열어 맞이하다)’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숙식 제공을 넘어, 마음의 문을 여는 일. 그 말은 서바스 여행의 본질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툴루즈 근교의 전원주택에서의 3박 4일은 하루처럼 흘러갔다.
치즈 가게에 들러 종류별로 치즈를 고르고, 베란다에서 아페리티프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한국 가수의 노래를 틀어주는 피에르의 배려에 웃음이 번졌다.


툴루즈 시내와 중세 마을, 재래시장, 숲 속 피크닉까지. 브리지트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대화 속에서 나는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깊이 경청해 주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쉼이었다.




보르도,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


툴루즈를 떠나 보르도로 향하는 길은 순탄치 않았지만, 여행은 늘 필요한 만큼의 인연을 데려다준다. 출발 이틀 전 연결된 호스트 샹탈은 은퇴한 사회복지사였다.

그녀의 집에서 남편과 나의 큰 캐리어와 작은가방을 맘껏 펼칠수 있는 거실에 머물렀다 쇼파형 침대를 사용했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호스트의 고마움에 나는 제육볶음으로, 그녀는 라클레트로 서로를 대접하며 음식 문화를 교류했다.


코드가 맞는 대화는 국경을 넘는다.

샹탈과 나는 유독 티키타카가 잘 되었고 샹탈은 몇 번 '넌 마인드가 프랑스인보다 더 프랑스인 같다'고 했다. 사실 나도 전생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여러번 살았을 거라고 거의 확신하는 편이다.


내가 프랑스에는 365가지가 넘는 치즈가 있어 매일 바꿔 먹어도 되겠다고 하자, 샹탈은 자기 아버지도 우유가 남아돌아 버리다가 나중에 치즈를 만들었다며, 프랑스 치즈는 시중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거라고 말해 함께 웃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대대로 보르도 근교에서 살아온 조상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프랑스에는 대혁명 이전에는 기록된 가계도인 족보도 없었다.

그녀의 부모들은 소작농의 삶을 이어갔는데, 자신이 자랄 때만 해도 지주에게 소출의 50% 이상을 바쳤다는 이야기에 나는 기가 막혀서 "아니, 대혁명의 나라에서 그게 말이 되냐?" 며 믿기지 않는다고 하자, 샹탈은 웃으며 "왜?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생각나?"라고 응수하였다.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본 그녀의 말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라로셸과 앙제, 역사가 일상이 되는 집들


라로셸에서는 은퇴 교사 부부 이자벨과 클로드를 만났다. 넓은 전원주택에서의 체류는 여유로웠고, 그들은 도시의 역사와 위그노의 흔적을 차분히 안내해 주었다. 마지막 날 내어준 알자스식 슈크루트는 여행의 마침표처럼 깊은 맛이었다.


그녀는 다음번에 올 때는 파리에서 보자며 파리에 물려받은 4대째 내려오는 그녀의 집으로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헤어질 때 파리의 역사가 스며들어있는 그녀가 출간한 그 집에 관한 책과 마당에 있던 허브로 만든 향주머니를 내게 선물로 주었기에 고맙게 받았다.


어쨌든 2박 3일 동안 내가 받았던 따뜻한 환대에 감사하며 떠나오면서, 문득 한 시 구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자벨의 게스트 방명록에 이렇게 남겼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방문객’ 시 중에서)


앙제에서는 미레이의 안내로 루아르 강변의 성과 소뮈르를 둘러보았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그녀는 공예와 서바스 활동으로 삶의 균형을 지켜가고 있었다.

그녀의 집에 가득한 수공예품처럼, 사람의 삶도 그렇게 손으로 빚어가는 것임을 느꼈다.


이외에도 디종가기 전 나는 브장송에서 두 가정의 환대를 받았다. 연극교사인 베티와 데이빗부부의 오래된 집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방이라 큰 가방을 아래 창고에 두고 가벼운 짐만 들고 올라갔었다.


그리고 딸바보로서 딸만 셋인 올리비에 집에서는 정말 프랑스식 식사 대접을 받았고 세계 일주를 두 세 번한 그 가정에서 프랑스 젊은 부부의 열정을 보았다.


이렇게 두루 나는 국제행사에서 참석한 덕분에 프랑스의 6 가정에 호스트를 받는 귀한 체험을 할 수 있었고 각 가정마다 보석처럼 빛나는 각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호주에서 배운 자유



2025년은 서바스 여행으로 풍성했던 한 해였다. 4월 발리여행 이후 나는 호주로 향했고, 이번에는 혼자였다. 부활절 연휴로 호스트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멜버른의 수잔이 나를 맞아주었다.


은퇴 후에도 활기차게 살아가는 그녀는 유기견 봉사를 하며 하루에 2만 보를 걷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집 방명록에 남긴 수많은 여행자들의 기록 속에서, 나는 환대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았다.


브리즈번에서는 길리안과 윌마를 만났다. 호주 사람들이 자연, 동물 친화적인 건 아는데 수잔처럼 의사인 길리안도 특별히 새를 좋아했다. 새 관련 책자를 가져와서 내게 설명을 해 주는데 내가 관심이 없던 분야에 대한 방대한 지식에도 놀랐다.


아침도 우유와 호밀 섞은 것에 과일과 꿀을 넣은 포리지를 해 주었고 점심때도 채식주의자인 그녀가 만든 야채수프와 빵 치즈가 내 속을 편안하게 해 주어 맛있게 먹었다.


그녀는 사우스뱅크에 가서 City Cat이라 불리는 유람선을 타고 브리즈번 강 뷰를 보며 달리는 동안 도시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유람선은 가격이 우리 돈 480원 정도니 거의 공짜인 셈이다.

59년생인 그녀는 부모와 함께 영국에서 50년 전에 이민을 왔고 당시는 호주의 백호주의 정책이 유지될 때라 돈을 받고 이민을 왔다고 한다.

전망대가 있는 가장 높은 건물 옆 눈에 뜨는 둥근 빌딩은 카지노인데 그 주요 손님들이 중국인이라 한다.

그 손님들을 위해서 건설한 새 다리가 있었고 우리는 배에서 내려 그 다리를 건너 강변 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롯데타워에 비하면 높지 않았지만 브리즈번 야경을 즐길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가이드까지 해준 게 고마워서 집 근처에 베트남 식당에 가서 내가 저녁을 샀다.

하지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원주민 같은 여자가 버스 안의 모두에게 욕을 하며 ‘Shut up’ 하고 외쳤고 승객들이 다 입을 다물었는데 길리안이 나에게 작은 소리로 계속 얘기하자 우리에게 와서는 협박적인 어투로 아주 모욕적인 욕을 했다.


나는 겁이 났는데 뜻밖에도 길리안은 그 기괴한 행동에 끝까지 침착했다.

나는 속으로 어쩌면 원주민들에 대한 그들의 인내도 호주백인들이 받아들여야할 역사적 의무이자 숙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 이상한 여자와 길리안의 반응에 둘 다 놀란 내가 나중에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 있었냐고 물으니 그녀 자신 약물 중독자 같은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니까 그런 사람들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그랬다고 했다.

호주에서 원주민 문제와 백호주의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닌 거 같다. 어찌 되었든 모두가 서로 양보하고 이해해서 잘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윌마와 여행이 남긴 것


나는 길리안이 차를 태워주어서 브리즈번의 두 번째 호스트인 윌마네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윌마는 내가 호스트 요청멜을 보냈을 때 정보를 보니 우리 나이로 79세인 46년생이어서 연세도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호스트에도 적극적일 수 있을까? 싶으면서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 많았다.

브리즈번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그녀의 동네는 약간 언덕 위에 있었고 기차로 세 정거장이면 시내로 갈 수 있는 거리여서 여러모로 편리했다.

나는 아침은 물론 매 번 저녁은 6시 반이니 시간 내로 돌아오라며 윌마가 저녁까지 해 주어서 너무 감사했다.


같은 말을 쓰고도 끝내 알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시간의 대화로 깊이 연결되는 사람도 있다.

내게 윌마와의 만남이 그러했고 서바스 여행은 내게 그런 만남들을 선물했다.

나는 이 여정 속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행은 장소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삶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품게 되었다.






*25년 여행글은 나의 여행길 위의 삶 매거진에 수록되어 있다


https://brunch.co.kr/@c3e689f797bd432/555


https://brunch.co.kr/@c3e689f797bd432/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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