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데 왜 허전할까?
기술은 풍요를 약속하지만 풍요가 반드시 의미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편리함은 불편을 제거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을 단련시키던 감각들까지 함께 지워버린다.
나는 여행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한 여인의 하루를 떠올렸다. 몰디브의 바다 앞에서, 뉴럴링크와 가상현실 속에서 한 사람의 감각이 흔들리는 순간을 기록한 이야기다. 이제, 김여사의 하루로 들어가 보자.
김여사는 명예퇴직 후 연금을 받으며 산다.
시간은 넉넉해졌고, 오래 미뤄두었던 여행과 글쓰기가 일상이 되었다.
그녀는 세상을 바쁘게 증명할 필요가 없는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고 느낀다.
이번 여행지는 몰디브였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물 위에 떠 있는 방갈로.
모든 것이 포함된,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휴식.
그런데 이상했다.
모든 것이 완벽한데, 마음은 자꾸만 빈자리를 더듬었다.
몰디브의 조식 뷔페는 끝이 없었다.
과일은 매일 다른 배열로 쌓였고,
원하면 언제든 다시 가져다 놓았다.
기다림도, 선택의 부담도 없었다.
처음엔 풍요로움이 감탄을 불렀다.
그러나 접시를 몇 번 비우고 나자
김여사는 이상한 허기를 느꼈다.
배는 분명히 찼는데, 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김여사는 접시를 내려놓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환호하며 먹던 이 과일을, 왜 오늘은 아무 감흥 없이 씹고 있을까.
예전엔 오늘 먹지 않으면 다시는 못 먹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잠자던 미각을 더 깨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고,
언제든 다시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은
한입의 집중력을 빼앗아 갔다.
무한 공급은 풍요를 주는 대신
선택의 무게를 제거했고,
그 순간 음식은 ‘기억될 사건’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양’으로 바뀌었다.
충만함은 있었지만,
떨림은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가
행복과 포만의 차이였다
기쁨은 늘 부족함을 전제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그제야 떠올렸다.
기다림, 망설임, 선택하지 못한 아쉬움 같은 것들.
그러나 이제 희소성이 사라진 세상에서
도파민은 더 이상 설렐 이유를 찾지 못한다.
충만함은 있었지만, 떨림은 없었다.
해변 의자에 누워 글을 쓰다 말고, 김여사는 손을 멈췄다.
머릿속에 떠오른 감정 하나가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공유되는 시대.
이제 생각은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뉴럴링크는 오해를 줄였지만, 대신 '혼잣말의 권리'를 빼앗았다.
괜찮은 척할 자유, 말하지 않아도 될 감정, 그냥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까지
모두 데이터가 되어버렸다.
김여사는 예전처럼 아무도 모르게 여행 일기장을 덮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사라질 데이터가 아니니 마치 투명유리에 갇힌 갑갑함을 느낀다.
몰디브 리조트에는 옵티머스 로봇 컨시어지가 있었다.
말투는 부드럽고, 반응은 정확했다.
김여사의 표정을 읽고
“조금 외로우신 것 같네요”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무심코 웃어버렸다.
그 위로는 틀리지 않았다.
심박수, 안면 근육의 미세한 떨림, 최근의 수면 패턴까지
모든 데이터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김여사는 곧 알아차렸다.
이 위로에는 망설임이 없다는 것을.
인간의 위로는 종종 늦고, 어설프고, 때로는 상처를 남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기도 하고,
괜히 한 말이 더 아프게 꽂히기도 한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상대가 나를 위험을 감수하고 이해하려 한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래서 마음은 더 깊이 반응한다.
하지만 로봇의 위로에는 실패가 없다.
상처 입을 가능성도, 관계가 틀어질 위험도 없다.
언제나 정확하고, 언제나 안전하다.
그 안전함은 따뜻했지만,
그 온기는 김여사의 몸 안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위로는
누군가의 마음이 다쳐가며 건네진 것이 아니라
최적의 확률로 계산된 결과였기 때문이다.
김여사는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람을 살게 하는 위로는
정확함이 아니라 진심의 불안정성이라는 것을.
상대도 나처럼 불완전하다는 사실,
그래서 나를 위로하다가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그 가능성.
그 위험이 사라진 위로는
편안하지만,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김여사는 해변을 바라보며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아프지 않은 위로는
나를 보호해 주지만
나를 살아 있게 하지는 않는다.”
*뉴럴링크(Neuralink)~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
작은 칩을 뇌에 이식해 생각이나 감각 신호를 전기 신호로 읽고, 다시 뇌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처음 목적은 마비 환자의 의사소통 회복이나 신경 질환 치료였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억 보조, 감정 조절, 인간과 AI의 직접 연결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즉, 말하거나 입력하지 않아도 ‘생각 자체’가 기술과 연결되는 시대를 향한 실험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연재 〈미래를 사는 사람들〉을 시작합니다. 머지않아 도착할 미래를 미리 건너가 보며, 기술의 속도보다 인간의 감정과 사유가 얼마나 따뜻하게 남을 수 있을지 여러분과 함께 묻고, 천천히 기록해 보려 합니다.
#미래를사는사람들 #미래사회 #AI와인간 #기술과감정 #사유 #AGI #기본소득 #가상현실
#인간다움 #픽션에세이 #뉴럴링크 #일런머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