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브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래도 나는 쓰고 떠난다

by 김별



죽음이 유예된 시간의 속도


몰디브 해안가 아침 햇살이 비추자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상태로

김여사는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주름은 멈춰 있었고, 시간은 고요했다.


죽음이 멀어지자

오늘을 서둘러 살아야 할 이유도 함께 멀어졌다.


언젠가 쓰면 될 글,

언젠가 만나도 될 사람,

언젠가 떠나도 늦지 않을 여행.

끝이 없다는 사실은

삶을 느리게, 그리고 무디게 만들었다.




복제된 바다와 진짜 바다 사이


밤이 되자 바다는 한층 더 아름다워졌다.

달빛을 머금은 수면은 *가상현실에서

수없이 복제된 풍경보다 훨씬 깊고 느리게 흔들렸다.


그럼에도 김여사는

가상현실 속에서 보았던 바다보다

지금 이 풍경이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습도, 바람, 모래의 거칠음.

현실은 늘 이렇게 귀찮았다.

습도가 피부에 들러붙고,

바람은 생각보다 거칠었으며,

깨진 조개껍질이랑 뒤섞인 모래는 발밑에서 가끔 따끔거렸다.


감각을 피할 수 없고, 몸을 동반하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는

현실은 늘 이렇게 귀찮았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이 바다는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온몸으로 체감하는 시간’이 되었다.


김여사는 이해했다.

편리하게 설계된 행복은 뇌를 빠르게 만족시키지만,

불편을 통과한 현실만이 감정을 남긴다는 것을.

사람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완성도가 아니라 어쩌면 저항감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조용히 받아들였다.




완벽한 하루의 제안 - 기록되지 않을 길로 들어서다


다음 날 아침,

AI는 김여사에게 가장 효율적인 하루를 제안했다.

후회 확률이 가장 낮은 일정,

만족도가 검증된 동선,

이미 수많은 선택을 통과한 안전한 답안.

그 제안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너무나 완벽해서 오히려 김여사는 망설였다.

그리고 일부러

추천받지 않은 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틀릴 수도 있는 선택,

지도에는 의미 없는 경로로 표시된 길,

그 선택은 아무런 보장을 주지 않았고,

기억되지 않을 가능성도 컸다.


그러나 그 순간, 김여사는 또렷하게 느꼈다.


자유란 가장 좋은 선택을 고르는 능력이 아니라,

틀릴 수 있음까지 스스로 떠안는 용기라는 것,

감당할 수 있는 불완전함이라는 것을.

효율은 대신 살아줄 수 있어도,

책임까지 대신 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에필로그


몰디브에서 돌아오는 귀국 비행기 안에서

김여사는 조용히 노트를 펼쳤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이제 더 이상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였다.


그녀는 한 문장을 천천히 적었다.

“모든 것이 가능해진 시대에도

나는 여전히 부족한 인간으로 남고 싶다.”


여행과 글쓰기는

그녀에게 여전히 가장 인간적인 저항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인공적으로 구현한 3차원 환경에서 사용자가 시청각 센서와 헤드셋(HMD)을 통해 실제와 유사한 몰입형 체험을 하는 기술.

게임, 엔터테인먼트, 여행, 의료, 교육, 군사 훈련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상공간을 실제처럼 경험하게 해 준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