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생을 알아야 하나?
요즘 ‘기억의 살롱’에서 나는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생의 많은 질문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삶을 이해할 때 비로소 풀리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전생에 대해서 누군가는 흥미로운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라며 선을 긋는다.
하지만 여러 사례와 생각을 접하면서 내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전생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보다
왜 우리는 전생을 알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사람들은 살아가며 비슷한 질문을 반복한다.
왜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왜 어떤 관계는 반복해서 나를 힘들게 할까.
왜 어떤 일은 노력해도 쉽게 풀리지 않을까.
전생이라는 관점은 이러한 질문을 더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라보게 한다.
전생에 대한 이야기가 단순한 상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여러 사례에서 시작된다.
영국의 두 살 반 소년은 처음 방문한 도시에서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곳이라며 특정한 “ 시계”를 찾으러 가자고 말했다.
그는 어른을 이끌고 골목을 정확히 안내했고 결국 오래된 교회에 있는 독특한 시계를 찾아냈다.
소년은 자신이 전생에 ‘앤드류’라는 이름으로 그곳에 살았다고 말했다.
인도의 산티 데비라는 소녀도 전생 기억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자신이 다른 도시에서 살다 출산 중 사망했다고 말했고, 전생의 남편과 집, 숨겨둔 돈의 위치까지 정확히 설명했다.
이러한 사례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정신과 교수 *이안 스티븐슨(Ian Stevenson)이다.
그는 40여 년 동안 3,000건이 넘는 어린아이들의 전생 기억 사례를 조사했다.
그의 연구가 강조한 점은 환생을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기억이 단순한 상상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일관된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이러한 기억이 대부분 열 살 이전에 사라진다는 점도 흥미로운 특징이었다.
환생 개념은 특정 종교에만 존재하는 믿음이 아니다.
플라톤과 피타고라스 같은 고대 철학자들부터 쇼펜하우어, 괴테, 에머슨 등 서양 사상가들 역시 영혼의 지속성과 환생에 대해 사유했다.
이들의 주장 자체가 사실인지 여부와는 별개로,
환생이라는 개념이 인간 존재와 기억의 연속성을 설명하려는 철학적 질문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살아가다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 가본 장소인데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데자뷔,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은 친밀감,
배운 적 없는데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재능 등이 그렇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물이나 불, 높은 곳, 폭발음에 대한 강한 공포가 현재 삶의 경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삶에서 반복되는 인간관계와 갈등 역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비슷한 문제와 선택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실패라기보다
아직 이해되지 않은 삶의 질문이 남아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전생을 이야기하는 목적은 과거에 집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전생이 지금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고
우리가 겪는 일과 관계, 직업, 반복되는 문제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이번 삶에서 풀어야 할 배움이나 과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생 리딩가 박진여 소장은 우리가 삶을 선택해 태어날 때
영혼의 성장을 위해 일정한 숙제와 관계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이를 과거의 연에서 온 카르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생의 숙제가 가족 관계라면
사랑과 인내, 봉사와 이해를 통해
그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은 우주의 질서이자 섭리일 뿐이지
형상화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인간은 신성을 지닌 신의 한 조각이라 말하는
박진여 소장은 망나니 같던 아들도 남편도 엄마와 아내의
간절한 기도와 봉사로 차츰 상대가 바뀌어간 사례를 들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변화하지 않더라도 내가 그 상황과 인연법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마음공부, 수행의 완성이라고 하였다.
그 도구들을 통해 이루는 영혼의 성장이 인생목적을 이루는 것이라 본다. 관계뿐 아니라 돈과 건강, 일등 풀리지 않는 숙제 모두가 우리의 성장을 위한 도구들이다.
박진여 소장은 나쁜 카르마를 선한 에너지로 바꾸고
좋은 인연을 만드는 일은 의외로 단순하다며 예를 들어준다.
첫째, 미움의 에너지 차단하기
누군가를 계속 미워하면 그 에너지가 커져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치게 되니
미운 대상을 떠올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카르마의 증폭을 막을 수 있다.
지독하게 어려운 고부관계나 삼각관계가 있다 가정해볼 때
만약 내가 전생에서는 그 관계에서 지금처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인 역할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나를 괴롭히는 시어머니나 죽이고싶을정도로 미운 내연녀를
보다 쉽게 용서하게 되지않을까!
둘째, 일상의 작은 친절 실천하기
거창한 희생이 아니더라도 엘리베이터 문 잡아주기, 자리 양보하기, 웃으며 인사하기와 같은 작은 배려로 티끌모아 태산처럼 선한 에너지가 비축되어 부정적인 카르마를 정화하고 좋은 인연을 불러오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셋째, 선업의 힘
평소 내가 베푸는 선행이 모여 인생의 시련이 닥쳤을 때,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보호막' 역할을 해 준다.
전생을 통해 자신의 삶의 흐름을 이해하고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며 미움보다 용서를 선택하고 작은 선행을 습관처럼 실천하다 보면 선업이 쌓여 카르마도 자연스레 풀리고 좋은 인연을 불러오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무지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과 억울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더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생의 의미는 단순한 성공이나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번 삶에서 자신이 가져온 배움과 목표를 이루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영혼이 성장하는 데 있다.
전생을 이해하는 것은 결국
지금의 삶이 왜 주어졌는지에 대한 질문에 조금 더 깊은 답을 찾게 한다.
일상의 바쁨 속에서 잊어버린 삶의 방향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20세기 미국의 영능력자 **에드거 케이시(Edgar Cayce)는
우주의 모든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는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도 박진여소장도 이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하여 전생을 읽는다.
나는 우리 영혼과 우주 모든 역사의 기록인 이 아카식 레코드를 믿는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여러 삶을 거치며 배우고 성장한다고 보았는데
그의 저서 "삶의 열 가지 해답"에서 삶의 목적이 결국 영혼의 성장과 사랑의 실천에 있다고 말했다.
영혼의 존재: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며, 영혼은 불멸하고 진화하는 과정에 있다.
삶의 목적: 영적인 성장과 배움을 통해 신성(Divine)에 가까워지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 목표이다.
평온을 누리는 방법: 내면의 조화와 명상, 기도를 통해 신과의 연결을 회복할 때 진정한 평온이 찾아온다.
건강과 활력: 육체는 영혼의 성전이며, 긍정적인 생각과 바른생활 습관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결정한다.
일과 사랑의 능력: 이기적인 목적보다는 타인의 행복과 봉사를 위해 일하고 사랑할 때 최고의 능력이 발휘된다.
좌절 극복: 부정적인 생각과 좌절은 자신의 마음가짐(태도)을 바꿈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죄의식과 두려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신의 사랑을 신뢰함으로써 죄의식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유 의지: 신은 인간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었으며, 자신의 선택이 운명을 창조한다.
죽음 후의 삶: 죽음은 끝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며, 영혼은 계속해서 성장한다.
위대한 진리(종교): 모든 종교의 본질은 사랑과 봉사이며, 진리는 형식보다는 삶의 실천을 통해 나타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생 자체가 아니다.
지금 이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있다.
그러나 전생이라는 관점은 우리가 겪는 삶을 더 넓은 시간 속에서 바라보게 한다.
지금 내게 주어진 관계와 사건, 반복되는 문제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특별한 배움의 과정임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전생과 지금 내게 주어진 인연의 흐름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삶을 조금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왜 이런 경험이 내게 왔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게 된다.
그때 비로소 삶은 단순한 우연의 연속이 아니라
이해하고 풀어가야 할 하나의 여정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전생을 아는 일의 진짜 의미는
과거를 확인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온전히 살아가기 위한 데 있을 것이다.
아래 관련되는 내용의 한나 Kim작가님의 글 두편을 공유한다.
내가 받아본 전생리딩과도 비슷하여 상당히 공감하며 재밌게 읽었는데
전생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일독을 추천한다 ^^*
https://brunch.co.kr/@hanna0425/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