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기원과 사랑의 정신을 떠올리다
크리스마스는 서양에서 가장 큰 명절이다.
한국인인 우리에게도 각자 나름의 추억이 있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 카드들을 주고받아 벽에 빨랫줄처럼 주렁주렁 걸어 두었던 기억, 교회에서 성탄절이 되면 집집마다 찾아가 찬송을 불러 주던 풍경이 떠오른다.
영화나 책 속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도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바로 스크루지다.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는 소설가이자 사회 비평가였다. 어린 시절 가난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던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올리버 트위스트』와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작품을 남겼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는 인색하고 냉혹한 노인이다. 그는 크리스마스를 “쓸데없는 날”이라며 혐오하고, 가난한 이웃이나 조카의 초대도 모두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밤, 죽은 동업자 마얼리와 세 명의 유령이 차례로 나타나 “너도 이 길을 걷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공포 속에서 스크루지는 “제발 기회를 달라”고 외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마침내 변한다. 가난한 이웃을 돕고, 직원에게 후한 보너스를 주며, 조카 가족과 식탁을 나눈다. 이후 그는 크리스마스 정신을 평생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이 소설은 탐욕으로 굳어 있던 한 인간이 과거의 기억, 현재의 공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다시 사람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소비의 날이 아니라 연민과 나눔, 회복의 날로 보여준다.
나는 이십대에 프랑스에서 크리스천이 되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따르려 애썼다. 초기 교회처럼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목소리로만 찬송했고, 12월 25일을 예수의 ‘진짜 탄생일’로 보지 않았기에 특별한 행사를 치르지 않았다. 단지 그 의미만을 조용히 기념했다.
그 경험 이후로 나 역시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정확한 생일이 아니라, 예수의 탄생을 기억하기 위해 선택된 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 되었을까? 사실 초기 기독교는 예수의 탄생일을 특별히 기념하지 않았다. 초대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유월절(Passover)이었다. 탄생일을 축하하는 문화는 헬레니즘이나 로마 문화에 가까웠고, 유대 전통에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로 자리 잡은데는 로마 제국의 태양 숭배 축제와 관련이 있다. 로마에는 동지 무렵 ‘태양의 탄생’을 기념하는 큰 축제가 있었고, 해가 다시 길어지는 시점인 12월 25일은 ‘빛의 회복’을 상징하는 날이었다. 기독교는 이 날을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의 탄생일로 재해석했다.
동시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기존 이교 축제를 기독교적으로 대체함으로 사회적 통합을 도모하려는 정치적·선교적 이유도 있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예수의 실제 탄생 시기는 언제일까? 성경에는 정확한 날짜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단서로 미루어 볼 때, 겨울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목자들이 밤에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는 구절을 보면, 유대 지역에서는 겨울에 밤샘 목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출산과 목축이 활발한 봄이나 가을이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많은 성서학자들은 예수의 탄생 시기를 9월경으로 추정한다.
결국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역사적 생일이라기보다, 신앙적 기념일이다.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가”보다, “예수가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기억하는 날인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식은 문화권마다 다르다. 영화에서 보듯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가족이 모이는 날이다. 우리나라의 설이나 추석과 비슷하다. 반면 한국에는 이미 강력한 가족 명절이 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친구를 만나거나 연인과 데이트하는 날로 자리 잡았다.
또한 어느 문화권에서나 크리스마스는 가장 소비가 많은 날이 되었다. 중세까지 크리스마스는 교회 중심의 종교 절기이자 공동체 축제였지, 상업적인 날은 아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가정이 소비의 단위가 되었고, 크리스마스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타클로스라는 이미지가 정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가족 중심이든, 연인의 날이든, 그 핵심은 예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나는 얼마 전부터 젊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밥을 먹고 있다. 해양공원에서 만보 걷기를 하다 알게 된, 늘 단정하게 넥타이를 매고 두 명씩 다니는 미국 M선교단 청년들이다.
종교적 목적보다는, 아들보다도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남편에게 전화해 “우리 집으로 데려와 밥 먹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로 이어졌다.
어제는 한국에 막 도착한 H까지 세 명이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H가 피아노를 친다기에 노래도 불렀다.
예전에 부르던 찬송은 이제 늘어져 ‘할머니 찬송’이 되었지만, 오랜만에 부르니 그저 좋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It’s Christmas!” 하고 외쳤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니, 내가 이십대에 만났던 프랑스 할머니가 떠올랐다. 전도 차원에서 몇 번 찾아갔던 분이다. 그 할머니는 어느 날 “M교회 청년들이 와서 커피를 타줬는데 안 마시더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우리 집에 온 미국 청년들에게 농사지은 오미자를 타 주며 “이건 와인이 아니야”라고 했다. 그리고 왜 커피까지 안 마시느냐고 묻자, 그들은 모든 “중독적인 것은 결국 의존이 되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사실 커피를 안 마신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종교적 이유가 아니어도 커피를 끊거나 못 마시는 사람은 많다. 이슬람은 돼지고기를, 힌두교는 소고기를, 유대교는 카슈루트 규율에 따라 특정 음식을 제한한다.
이런 다른 점은 사실 각 종교의 특징일 뿐이니, 판단할 게 아니라 그저 존중해 주면 된다 본다.
오늘 아침 프랑스 할머니가 생각나 앨범을 찾아보다 참으로 오랫만에 이전 사진들을 봤다.
1. 내가 침례받던 날
2. 한국공예품 전시회에서 한복입고 찍혀서 신문에 난 기사
3. 내가 전도하러 갔던 프랑스 할머니댁에서
~그리고 나를 전도했던 예수님 닮은 미국친구 C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하다. 올해는 막내 시누부부가 1박 2일로 우리를 초대해 주었다. 점심은 시누남편이 직접 요리를 하고, 저녁은 조개구이 식당을 예약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