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소풍

경남 고성 바닷가와 고분 탐방

by 김별


동네에서 같이 운동도 하고,

가끔 밥도 먹는 친구, 언니, 후배와 나
이름하여 ‘밥팀’.
이름부터 이미 먹을 기운이 충만하다.


그중 한 명이 요즘 스트레스가 쌓여
“수면제도 나를 포기했다…”며 SOS를 쳤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 없이 결론을 냈다.
“약 말고 바람 맞으러 가자.”


나선 김에 근처 바닷가 한 바퀴 돌고,
함양 시골집에서 하룻밤 보내기로 했다.

결정은 늘 빠르다. 실행도 더 빠르다.

(이게 바로 밥팀 스타일)


아줌마 넷, 소풍 가듯 마트에 들러
“이건 왜 사?” 하면서도 결국 다 카트에 넣고,
한 차 가득 싣고 신나게 출발—고고씽.

평소 입도 빠르지만 손은 더 빠른 친구는
아침에 고구마와 계란을
마치 초등학교 소풍 날처럼 따끈하게 쪄왔다.
이쯤 되면 준비성이 아니라 거의 의무감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365일 꼭 해야 하는 일도 있지만,
가끔은 다 내팽개치듯 떠나야 할 때도 있다.
삶이 굴곡이라면, 쉬어가는 것도 기술이다.


나는 감기 기운이 좀 있었지만,
여자 넷이 한 차에 타면 그건 이미 치료다.

계란 까서 사이다랑 먹으며
남편 흉 한 바가지,
자식·손주 자랑 두 바가지,
웃음은 무한 리필.

그러다 보니
컨디션이 안 좋다는 사실조차
웃음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 있다가 사라졌다.


바닷바람 한 번 들이마시고,
고분 속도 기웃기웃 들여다보고,
어둡기 전에 함양 시골집에 안착.

막걸리 한 잔에
친구가 바리바리 싸온 음식이 풀리자
우리의 진짜 여행이 시작됐다.

그리고… 노래방 개장.


평소 그렇게 얌전하던 후배가
노래하는 친구 옆에서
갑자기 코믹 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사람이 이렇게 변한다.


생각해 보면
늘 같은 모습으로만 사는 건 좀 심심하다.

가끔은 내가 만든 ‘나’라는 틀을
한 번쯤 깨부수고 나와야 숨통이 트인다.

어제의 내가 아닌
오늘의 낯선 내가 되어보는 것,
그게 또 꽤 괜찮다.


가끔은
“이게 나 맞나?” 싶은 순간을 지나야
에너지가 한 바퀴 돌고,

그제야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올 힘이 생긴다.


상족암 군립공원
가족의 건강, 손주 잘 자라라고...


고성은 공룡발자국과 공룡박물관이 유명하다
잔잔한 봄 바다를 누렸다
배가 드나들지 않는 바다는 물이 투명하다



고성은 소가야의 중심지였기에 고분과 박물관 투어도 했다. 해설자가 상세한 설명도 해 주시고 공짜 차와 커피도 있었다.





일본과 소가야(小加耶) 고분 논쟁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주장한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를 찾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의 주장은 고성 송학동 1호분이 일본 고훈 시대특유의 무덤 양식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 앞은 사각형, 뒤는 원형인 무덤)이라고 주장했고 이를 근거로 4~6세기경 일본 규슈 지방의 세력이 가야 지역에 진출하여 다스렸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한국 학계는 이를 정면 반박했고 동아대학교 박물관 등이 재조사한 결과, 송학동 고분은 여러 개의 봉토가 합쳐진 형태이거나 자연 구릉을 가야식으로 깎아 만든 5~6세기경 가야의 전형적인 석실묘(돌방무덤)

임이 밝혀졌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입증하기 위해 가야 지역의 고분을 도굴하고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고분의 구조가 왜곡되거나 잘못 해석되었다 본다.

이는 송학동 고분을 전방후원분으로 규정하여, 이 지역이 왜(倭)의 식민지이거나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해석하려는 시도였으나 왜식 무덤이 아님이 확인됨으로써 소가야의 토착 지배층 무덤임이 최종 확인되었다.


다만, 고분 내부에서 일본 규슈 지방의 채색 고분(장식 고분) 특징이나 일본산 유물이 일부 발견되기도 하여, 소가야가 왜 및 다른 가야 연맹(대가야, 신라)과 활발한 해상 교역을 했던 거점이었음이 입증되었다.

요약하자면, 소가야 고분 논쟁은 일제가 왜곡했던 가야사를 바로잡고, 소가야가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며 해상 무역을 주도했던 고대 왕국이었음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한 사건이다.


이웃나라와 잘 지내야 하는 것은 옳으나 역사를 제대로 알 필요는 여전히 있다 본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은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까지 약 200년 동안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가야 지역)를 정벌하여 '임나일본부'라는 통치 기관을 세우고 지배했다는 학설이다. 이 학설은 과거 일제가 한국 침략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역사적 근거로 활용되었으나,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고고학적 증거 부족과 문헌 해석의 오류 등을 이유로 그 허구성이 입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