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어긋날 때, 감정은 피곤해진다.
우리는 사랑을 말로 쌓아 올리면서 동시에 말로 허물기도 한다. 22기의 ‘지지고 볶는 여행’은 그 어떤 시즌보다 감정의 소음이 컸고, 그것은 말투의 파열음으로 드러났다. 영숙과 영수는 바로 그 중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거나 회피했다. 그들의 말투에는 어떤 특징이 있기에, 이렇게까지 충돌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이게 싫어. 나 이러면 나 진짜 감정 못 숨겨.”
“아니, 그러니까! 그게 왜 그랬냐고! 그게 문제지!”
영숙은 감정을 돌려 말하지 않는다. 좋고 싫음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그것을 바로 말한다. 특히 자신의 불만이나 서운함에 대해서는 말을 덮거나 참지 않는다. 이로 인해 그녀의 말투는 직설적이며, 때로는 격정적으로 들린다. 이렇게 좋고 싫음이 분명한 것은, 사람에 따라 큰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당당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본인의 불편함에 대하여 솔직하고 투명하게 이야기하는 특성은 대화의 포문을 열어준다는 특징이 있지만, 영숙의 경우에는 표현이 매우 직접적이어서 상대방에 따라 굉장히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그녀는 반복해서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이상한 건가?”라고 자문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감정을 정당하게 표현하려는 언어적 투쟁을 시도한다.
영숙은 상황을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통제할 수 없고, 상대방이 뜻하는 대로 따라와 주지 않을 경우 감정이 쏟아지며 말이 과열된다. 감정 조절보다는, 감정노출을 통해 심리적인 우위를 장악해 원하는 대로 상황을 다루고 싶어 한다.
영숙의 말투는 자칫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다. 특히 영수처럼 감정에 둔감하거나 회피적인 사람 앞에서는 말의 목적보다 말의 ‘세기’가 먼저 전달된다. 감정 전달이 반복되다 보면, 메시지는 흐릿해지고 ‘예민한 사람’이라는 프레임만 남게 된다.
영숙에게 필요한 것은 ‘덜 말하기’가 아니라 ‘감정 빼고 천천히 말하기’이다. 감정을 마주한 상대가 받아들일 여유를 갖게 하기 위해, 말의 리듬을 조절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 지금 이거 말해도 돼?”와 같은 사전 언어, 그리고 “조금 감정적일 수 있어. 미안해” 같은 쿠션 메시지가 부드러운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그냥 그런 거지 뭐.”
“그냥 좀… 불편했어.”
“다른 얘기하자.”
영수의 말은 늘 단문이다. 짧고, 함축적이며, 자주 생략된다. 그는 감정 표현을 절제한다기보다는 감정 자체를 아예 꺼내지 않는다. 자꾸 도망가다 보니 영숙과의 대화에서 자주 말이 막히거나 방향이 틀어진다.
영수는 회피형의 전형적인 말투를 보인다. 갈등 상황을 감정적으로 풀기보다는 회피하고, 감정을 설명하기보다는 회피한다. “그냥 좀 불편했어”라는 말은, 사실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신호이자 ‘이 감정을 나도 잘 모르겠다’는 방어다.
말은 하지만, 진짜 감정은 말하지 않는다. 이런 유형은 대화를 통해 감정을 해소하기보다는 대화를 줄이며 감정을 봉합한다. 문제는 그것이 상대에게는 무관심 혹은 차단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영수는 “내가 뭐 잘못한 거야?”라고 되묻지만, 정작 본인의 감정은 풀어 말하지 않는다. 그 결과, 갈등은 반복되고 상대는 답답함을 느낀다. 말의 생략은 상대방의 감정까지 생략하게 만든다. 심지어는 영숙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는다. 때문에 같은 말을 자꾸만 해야 하는 영숙은 더욱 답답함과 분노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혼자만 말을 하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까지 귀 닫고 듣지 않는 태도는 상대방에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영수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건 ‘말 많이 하기’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기’, 그리고 '제대로 듣기'이다. “나는 지금 감정이 섞이면 말이 꼬이니까,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갖고 이야기하자” 같은 선언은 상대에게 오히려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성숙’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성숙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못하겠다면, 적어도 키워드라도 기억하는 것이 대화의 합당한 태도이다. "슈니첼을 먹고 싶다."라는 영숙의 무한 재생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면, 사람의 말을 듣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메모를 하든 녹음을 하든, 최대한 키워드라도 기억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영숙은 감정의 속도가 빠르고, 영수는 감정의 언어가 느리고 단절되어 있다. 둘의 말은 계속 어긋났지만, 그 어긋남은 말의 ‘내용’보다 ‘리듬’의 충돌에 가까웠다. ‘지지고 볶는 여행’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말로 사랑을 만드는 법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결국 관계는, 내가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상대가 어떤 언어를 이해하는지를 읽는 능력이다. 솟구치는 분노를 내려놓고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도망가지 않고 문제를 직면할 때 관계는 원만히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