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기 옥순과 남자 4호는 왜 파국을 맞이했을까?

감정 소통의 미스매치

by 유창한 언변


뭐 때문에 파국이 됐을까.

<지지고 볶는 여행>은 감정의 온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말의 미세한 균열이 어떻게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키워나가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특히 9기 옥순과 남자 4호의 대화는 처음에는 농담처럼 시작되지만, 어느 순간 무거운 감정이 흐르며 서로에게 피로를 안긴다. 말의 방식이 마음을 어떻게 밀어내는지, 그리고 그 감정적 악순환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살펴본다.


1. 9기 옥순의 말투: 감정은 강하지만, 표현은 빙빙 돈다


1-1 말투의 특징


9기 옥순은 직설보다는 우회적인 감정 기반의 화법을 사용한다. 그 말에는 분명히 뾰족한 감정이 숨어 있으나, 드러나는 방식은 에둘러 말하거나 뾰로통한 톤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다.


“아니, 그럼 나는 뭐야? 그냥 그런 존재야?”

“내가 뭐 그렇게 웃겨? 그렇게 웃기게 보여?”




이런 말투는 감정이 상해 있는 상태임을 드러내지만, 정작 원하는 바는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대화 상대에게는 “왜 저러지?”라는 의문만 남기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제공하지 않는다. 자꾸만 뭐가 문제인지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빙빙 돌리는 말투를 사용하다 보니, 상대는 자연스럽게 지칠 수밖에 없다.



1-2 심리학적 특성


이러한 말투는 애착 회피보다는 불안형 애착에서 자주 나타난다. 상대의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애정의 부족이나 관심의 결핍을 과장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감정을 정확히 말로 표현하지 않고 상대의 해석에 맡기려 한다. 일종의 감정 퀴즈’를 내는 방식이다. 호감이 있는 상대방이라면 그 감정 퀴즈를 풀어주려 애쓰겠지만, 사실 퀴즈가 일종의 시험이기 때문에 계속 맞춰주기가 힘들다고 느낀 상대방은 지쳐 나가떨어지고 만다.



1-3 문제점


1. 감정은 분명히 있지만, 구조화되지 않아 전달력이 떨어진다.

2. 상대방이 해석해야 할 여지를 남겨, 오해의 소지가 크다.

3. 반복되면 ‘피곤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1-4 개선점


1. “나는 지금 ~해서 서운했어”처럼, 감정을 구체화하고 원인을 설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2. 감정 표현을 상대에 대한 기대치로 바꾸지 말고, 자신의 내면 상태로 정직하게 풀어내야 한다.

3. 빙빙 도는 말’보다 ‘한 문장 감정 요약’을 먼저 연습해 보면 좋다.



2. 남자 4호의 말투: 감정 단절형 논리 화법


2-1 말투의 특징


남자 4호는 전형적인 논리 중심 말투를 구사한다. 감정이 언급되면 불편해하고, 상황을 사실로만 정리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말들이 있다.


“그렇게까지 받아들일 일은 아니잖아.”

“그건 네가 오해한 거야.”

“그냥 나는 그런 의도가 없었어.”



감정에 대한 반응보다, ‘그게 사실이냐 아니냐’에만 몰두하면서 감정을 차단하는 말투를 사용한다. 이는 일시적으로는 갈등을 피해가게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2-2 심리학적 특성


이런 말투는 감정 회피형 성향에서 흔히 나타난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곧 ‘약함’이라고 여기는 문화적 영향도 있고, 갈등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회피적 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감정은 무시되지 않고 누적되어 폭발하게 된다. 감정을 차단하는 스스로마저도 답답함과 짜증을 자꾸만 느끼게 된다. 상대의 감정뿐만 아니라 나의 감정도 억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2-3 문제점


1. 상대방의 감정을 부정함으로써 방어적으로 보일 수 있다.

2. “그건 오해야”라는 말은 좋지만, 그 이후에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것은 감정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므로 결국 관계를 소원하게 만든다.

3. 대화가 ‘논쟁’으로 변질되기 쉬워진다.



2-4 개선점


감정에 논리로 반응하기보다, 감정을 ‘인정’하는 태도가 먼저 필요하다.


예: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럴 수 있어.”

“나는 그런 의도는 없었지만, 네가 그렇게 느낀 건 중요한 것 같아” 같은 중립적 완충 문장이 효과적이다.


감정을 논리보다 먼저 수용한 뒤, 설명은 천천히 이어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3. 말투의 부딪힘이 감정을 피곤하게 한다


9기 옥순은 감정 표현이 핵심인 사람이고, 남자 4호는 감정을 피하고 싶은 사람이다. 말이 어긋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둘은 서로를 향해 말하고 있지만, 서로의 언어를 해석하지 못한다. 9기 옥순은 “왜 내 감정을 몰라주지?”라고 느끼고, 남자 4호는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만 반응하지?”라고 답답해한다.


그리하여 말은 점점 복잡해지고, 마음은 점점 지친다. 결국 “말 좀 그만하자”는 감정적 단절로 이어진다. 이 지점이 가장 위험하다. 말이 끊긴 순간, 감정도 단절된다.




감정은 말투를 타고 움직인다


말은 기술이 아니다. 말은 감정의 흐름이다. 감정에 진심이 없거나, 감정을 전달할 언어가 빈약하면 말은 오히려 상처를 준다. 9기 옥순과 남자 4호의 대화는, 말투의 어긋남이 관계 자체를 지치게 만든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관계를 유지하는 말은 논리도, 유머도 아닌 ‘이해받고 있다’는 감정적 수용감이다. 이를 위해서는 말투가 서로의 언어 체계를 이해하고 조율하는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감정은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이 언제나 말로 잘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이 간극을 메우는 일이 바로, 우리가 ‘말’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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