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를 만나고...

by Cecilia Floquet 현숙

정신없이 강의를 듣다 보니 깊은 밤은 축시를 지나 어느듯 인시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여태 뭐 한다고, 산다고 바빴는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도 읽지 못한 채 수업을 듣고 나니


많이 부끄러워지고, 줄거리만 겨우 상상 속에서 따라가는 듯, 이렇게 훌륭한 그림들도


표면적 이해로만 그치다 보니, 구체적인 감동을 실을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래도 교수님 강의에 실린 이야기의 힘으로 '생각하기'의 주제를 나름 생각하게 됩니다.



첫 번째, 제 주변에 오디세우스의 이미지에 걸 맞는 분은 '이태석 신부님'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및 책으로 이미 소개가 되었기에 많은 분들이 아시고 계십니다 그분의 삶과 흔적을.


'나는 누구인가'를 찾기 위해 사제의 길에 들어서 남수단 톤즈의 오지에서 누구를 위해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치열하게 사셔야만 했는지......


한센인들에게 신발을 맞춰주기 위해 그들의 발을 본 뜬 그림을 간직한 채,


발가락 다섯 개가 아닌 뭉개지고 떨어져 나간 발가락에 맞춤 신발이라도 신겨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던.


오디세우스의 길 떠남과 이 신부님의 길 떠남이 겹쳐집니다.



두 번째, 객지에서 30년 넘는 세월 살아 온 본인의 삶이 갑자기 오디세우스의 긴 여정에 맞물립니다.


어느 한 순간인들 쉬운 고비들이 있었을까?


출퇴근 왕복 3시간 거리, 파김치가 되어 어두컴컴한 퇴근 길 집으로 돌아올 때,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오는 내내 울지 않고 그 길을 걸은 적은...드물었지 아마도.


때론 줄줄 흐르는 눈물 그대로 삼키며, 때론 대성통곡을 하며, 뭐가 그리 서러웠고 힘들었는지,


아마도 배가 고파서였을까, 아니면 으시시한 날씨와 어둠 탓이었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어쩌면 엄마가, 엄마가 너무도 보고 싶어 그리 울어재꼈던 건 아니었을까.



우리네 삶이 오디세우스 삶과 별반 다를 바가 있을까?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삶이라는 진중함 앞에.



이젠 눈을 좀 붙여야겠습니다.


내일은 또 내일분의 몫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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