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

애정결핍

by 고수머리

어리고 무지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살찌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살찌니깐 고기는 안 먹어야지!'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야물지 못한 생각으로 잘 먹지 않았던 나는 영양가 있는 걸 골고루 먹었다면 그나마 컸을 수도 있는 키도 당연하게 자라지 않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식욕이 터져 학교 앞 떡볶이집을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떡볶이는 먹어야만 했다. 오징어튀김과 떡꼬치를 생각하면 지금도 침이 고인다. 그때만 맛볼 수 있는 추억의 그 맛…. 후회하지 않는다.)

그 결과 고등학교 때는 더 퉁퉁해져 굴러다녔다.

키는 1센티도 안 컸는데 몸무게만 늘어난 것이다.

그렇게 짧고 퉁퉁한 외모는 나의 콤플렉스가 되어있었다.

고칠 방법이 없는 외모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사춘기가 동시에 온 나는,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에 빠져버렸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나는 왜 세상에 존재하는가?'

그런 생각으로 항상 괴로웠고, 공부도 하기 싫었다. (원래 안 함)

뻥 뚫린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부족함을 채울 수가 없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나에게 "너는 그냥 너라서 사랑해~"라고 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을 비하하고, 나는 왜 태어나서….라는 생각까지 간 것 같다.

어느 날 엄마가 그런 나를 보며

"신은 필요해 의해 사람을 만들었다."

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 말은 듣는 순간, 신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나도 어딘가에 필요한 존재라서 태어난 거구나 키 작고 뚱뚱해도 누군가에게 필요하니깐 태어난 거네' 하며 속으로 작게나마 안심했던 것 같다.

너무 괴로워 비빌 때가 필요했던 그때, 그 말은 나에게 잠깐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외모 콤플렉스는 그대로였다.

그래도 답이 없던 학창 시절과는 다르게 외모 콤플렉스를 가려줄 해결 수단을 찾았다. 그건 높은 구두와 다이어트였다.

조금이라도 날씬하고 길어 보이기 위해 킬힐을 신고, 바지는 절대로 줄이지 않았다.

힐을 신고 땅에 끌리는 바지를 입고 있으면 너무 불편하고 몸이 힘들었지만 나는 이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도 그런 나를 이쁘게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

항상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사고 내 몸에 맞지 않는 옷들을 샀다.

그것들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걸, 내 인생의 반 이상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초 5학년인 아들에게 물었다

"넌 콤플렉스가 있어?"

대화에 전혀 집중하지 않는 아들은

"콤플렉스가 뭐야?"

"음 나에게 싫은 부분?"

"음…. 없어" 1초 생각하고 대답한다.

나도 분명 아들처럼 어린 시절에는 콤플렉스가 없었을 것 같은데 비교군이 생기는 순간 '나도 저 사람들처럼 사랑받고 싶다'라는 생각에 콤플렉스를 만든 것 같다.

나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더 사랑받고 싶어, 단순히 이뻐지면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불편보다는 남의 시선에 이뻐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 자신을 믿지 못했다.

나에 대한 애정이 없던 시절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사람마다 밝게 빛나는 보석 하나를 마음에 안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의심하는 순간, 보석의 빛은 점점 소멸해 간다.

나는 아직 나 자신을 사랑해서 꺼져가던 빛이 다시 켜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도 의심하고 콤플렉스로 가득하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내 보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내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맹목적인 사랑을 내 아들이 나에게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혼탁한 나의 보석이지만 그래도 지금의 내가 좋고 나를 의심할 시간도 없다.

아들이 주는 애정에 내 마음속 보석이 그나마 반짝이며 힘을 낸다.

내가 받은 이 애정의 힘을 내 아이에게도 잘 전달할 수 있길, 아이에게 시련이 와도 그 보석의 힘으로 잘 이겨내 세상 속에서도 계속 빛나길 바란다.


언젠가 나를 떠나 반짝일 아이를 보면,

나도 어떻게 자신을 잘 사랑해야 할지 알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길,

나 자신이 나다워지길,

그래서 콤플렉스에서 해방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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