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나니 Aug 25. 2023

나무에 내려앉은 별들

코타키나발루_말레이시아

2019년 2월. 매서운 한파를 뚫고 우리 차는 인천공항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출국장까지는 거리가 꽤 되었지만 모두 입고 온 패딩을 벗고 얇고 가벼운 경량패딩과 긴팔 카디건 정도만을 걸친 채 내렸다. 우리의 목적지인 코타키나발루는 꽤나 더운 나라였기에 입고 간 패딩의 든든한 보온성은 비행기에서 내림과 동시에 무용지물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바들바들 떨리는 몸과 딱딱 부딪히는 이빨로 주차장을 가로질러 무작정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차에서 내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는 추워 죽겠다는 말이 모자랄 만큼 힘들었지만 도착한 코타키나발루는 뜨거우리만큼 태양이 내리쬐는 한 여름이었다. 도착하고서야 추위를 견디며 가볍게 가져온 캐리어가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우리 가족이 여행한 코타키나발루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저렴한 물가와 순박한 사람들, 멋진 자연경관, 그리고 여유로움. 바삐 돌아가는 일상과 매서운 추위에 지친 우리들에게는 선물 같은 여행이었다.


 그곳에는 나의 수많은 처음이 있었다. 가족들과 처음 떠나본 해외여행, 처음 와본 인도네시아, 처음 맛본 두리안 등. 글로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수많은 처음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최고를 뽑자면 단연코 코타키나발루의 반딧불 투어였다.



 하루종일 진행된 투어는 내게 여유로움을 즐기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저 하루종일 먹고 마시고 웃었다. 작은 배를 타고 울창한 맹그로브 숲 속을 지나보고 넓은 천에 그림을 그리며 오후시간을 보냈다. 가족들과 직접 고른 도안으로 귀여운 헤나도 받으며 섬 전체가 우리 것인 양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해먹에서 드렁드렁 코를 골며 낮잠을 자는 아빠, 바다라며 좋아서 뛰어다니는 동생들, 팔짱을 끼고 산책하는 연인들, 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는 가족들. 지상낙원이라는 단어는 이곳을 두고 한 말임에 틀림이 없었다.

 해 질 녘에는 세계 3대 석양이라 불리는 코타키나발루의 일몰을 모두가 함께 감상했다. 붉은 태양이 온바다와 섬 전체를 함께 물들이며 가라앉는 모습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해가 바다에 완전히 가라앉고 나자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반딧불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모두가 든든하게 저녁식사를 한 뒤 구명조끼를 입은 채 차례로 배에 올라탔다. 배는 유유히 어둠 속을 익숙한 듯 전진했고 이윽고 배는 빽빽한 숲 속을 지나 탁 트인 공간에 도착했다.


헉.


 입이 떡 벌어졌다. 우리 외할머니댁은 굉장히 시골에 있었기에 밤하늘을 수놓은 빛나는 별들이 익숙했다. 하지만 이건 수놓은 수준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하늘 반 별 반이었다. 어둠으로 인해 검게 보이는 나무 실루엣 뒤로 빼곡하게 빛나고 있는 별들의 모습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아온 밤하늘을 부정하기에 충분했다.


 천천히 배가 멈추고 가이드가 작은 플래시를 켜더니 천천히 깜빡이기 시작했다. 주변은 뒤에 앉아있던 동생의 나지막한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그저 벌레들이 내는 찌르르하는 소리와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만이 적막을 채우며 시간이 멈추지 않았음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이 고요함이 익숙해질 때쯤 누군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내 내 입에서 적막을 깨는 작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우와…“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켜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적어도 그 배에 타고 있던 이들은 그 모습을 보았다. 깜빡이는 가이드의 플래시 불빛에 따라 새까만 나무의 실루엣 안에서 하나둘씩 작은 별이 켜졌다. 작은 별들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해 이내 나무 안에서 은하수를 만들었다. 그 은하수는 천천히 흘러 어느새 우리 주변을 가득 메웠다. 영화 ’ 아바타‘ 속 주인공 제이크가 판도라 행성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그저 감탄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밤하늘에 가득 떠있는 별, 그리고 그 별들이 가득 내려앉은 나무 위. 하늘과 땅을 가득 메운 그 별들을 나는 아마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의 부모님 세대에는 반딧불이 흔했다고 한다. 밤이면 작은 빛을 내며 자유롭게 숲을 날아다니었다고. 지금의 우리는 타국에서 약 5만 원 정도의 금액을 내고 그들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 세대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미 부모님들이 당연하듯 누렸던 권리를 잃었다. 지금도 말레이시아 곳곳에서는 우리가 모기에게 방해받지 않으며 반딧불을 구경하기 위해 가져간 모기기피제 때문에 반딧불이 전멸하는 지역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반딧불을 위해, 자연을 위해 그리고 자라나는, 곧 자라날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일까. 지금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다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