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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은유람중 Jan 01. 2024

2023 홍콩유람기

Day 1: 인천공항부터 침사추이까지!


오래간만에 떠나는 해외가 퍽이나 설렌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탑승구에 점퍼를 두고 내렸다. 에어팟 본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걱정, 내렸을 때 혹여 잃어버리면 아무런 외투가 없다는 것에 대한 걱정과 점퍼를 맡길 필요가 없는 홀가분함도 같이 느꼈다.

갈때마다 설레는 인천공항


비행기에 타니 기내식으로 기다란 단팥빵, 음료 한잔 그리고 330 ml 생수 한 병을 받았다. 물에 "tibet spring"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니 내가 중국에 가고 있다는 것이 조금 더 실감이 났다.

처음보는 티베트의 물

공항에 도착하여 e-sim을 개통하려는데 잘 되질 않는다. 알고 보니 QR 코드를 pdf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프린트를 해갔어야 했으며, 카메라를 찍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찍은 정보가 통신사에 가서 승인이 되어야 그제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 사용하는 e-sim인지라 버벅거렸다. 사용설명서를 좀 더 꼼꼼히 읽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왜 이렇게 설명서를 열어보기 힘든 곳에 박아 놓았나 생각이 들었다. 일단 수속은 하고 숙소에 가야 할 것 같아 공항에 와이파이가 터지니 일단 그것을 사용하고, 길을 사진으로 저장해 두었다. 다행히도 게스트하우스가 침사추이 역 근처라 사진으로 저장하는 것만으로 길을 잃을 것 같지는 않았다.


공항을 나오니 배가 고팠다. 저녁 7시 반쯤이었다. 기왕지사 온 거 홍콩의 맛을 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보니 완탕면이 유명하단다. 그리고 막만키라는 완탕면 집이 있는데 60년이 넘었다고 한다. 고속철도로 칭이 역까지 가고, 조던역에 가려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를 타는 것부터 약간 꼬이기 시작했는데, 구글 맵과 위치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서 찾는데 애를 먹었다. 꽤 나중에 되어서야 구글맵이 그렇게까지 정확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을버스를 어찌어찌 찾아서 탔는데, 뒤에서 과자를 먹는 소리가 들린다. 과자 종류는 못 봤지만, 콘칩 같은 것을 와작와작 씹어먹는 소리였다. 우리나라도 위법은 아니다만, 보통 이렇게까지 부스럭거리는 과자는 안 먹는데… 뭔가 여기서부터 '사람들이 남의 눈치를 잘 안보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니 영어와 한자가 뒤섞인 메시지들이 쓰여있다. 역시 영국 식민지라 영어를 꽤나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았다.


오밀조밀 친근감이 드는 마을버스. 여기 버스 기사님들은 모두 프로들이시다


버스가 처음에 주차장 같은 곳을 빠져나가는데, 도로에 제한속도 30이라고 쓰여있지만 지키질 않았다. 주차장 건물 1층인데도 50 km로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기사님들이 버스를 운전하는 솜씨가 부산못지않았다. 한국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빨리빨리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본에서는 목적지에 도착해야 그제야 손님들이 내리는데, 여기서는 무조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서있어야 한다.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얼마나 급한지 손님을 내려주고 버스 문을 닫기도 전에 버스가 출발하기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리고 조던역 근처로 나오는데, 표준중국어로 줘둔이라고 쓰여있었다. 역명에 외국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것이 생경스러웠다. 중국에 온 것 같으면서도 이런 부분에서는 영국 스러운 맛을 살짝 가미한 것 같다. 완탕면 집에 들어갔다. 목요일 저녁임에도 사람이 정말 많았다. 평일 홍대보다 더 많은 것 같다. 막만키에 도착하니 저녁때가 지난 8시 반쯤임에도 약간 줄을 서고 있었다. 5분도 안되어 들어가긴 했다만, 문에 붙어있는 5년간의 미쉐린 마크가 '여기는 찐맛집'임을 보장하고 있는 것 같아 아주 신뢰가 들었다. 혼자라고 하니 나를 어떤 모자가 있는 테이블에 같이 앉혔다. 땅이 워낙 귀하다고 듣기는 했다만, 이런 식으로 손님들을 합석시키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가 보다. 유럽이었다면 "Hi" 정도는 말하고 합석했다만 여기에는 그런 것은 없다. 철저히 각자 자기 밥만 먹고 눈길 한번 주지도 않는다. 기왕지사 같이 앉은 것인데 이건 좀 아쉬웠다.

막만키 안의 전경. 가게가 넓지는 않다. 홍콩에서 모르는 사람들과의 합석은 자연스럽다.

많이들 먹는 새우완탕면을 시켰다. 완탕 위에 노란 옥수수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면이 올려져 있다. 평소에 한국에서 보던 라면그릇의 지름이 절반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내용물은 꽉 찬지라 라멘집에서 먹는 양의 70퍼센트 정도 되어 보였다. 배가 고픈데 이걸로 될까 싶었다. 먼저 국물을 한 스푼 떠먹어봤는데, 멸치나 생선으로 국물을 냈음에도 비리지 않았고 약간은 심심했다. 면맛은 아주 특이했다. 덜 익고 더 익고의 문제가 아니라 면이 아주 까슬까슬했다. 회 먹을 때 깔아주는 밑에 국수 같은 것을 씹으면 이런 질감이 날 것 같았다. 아주 맛있는 식감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완탕이 3알 들어가 있는데, 완탕 안에 새우가 꽉 차게 들어가 있어서 완탕은 아주 맛있었다. 완탕면이 아니라 차라리 완탕이 더 들어가 있는 그냥 완탕을 시켰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먹고 보니 '아주 맛있다'까지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맛있게 먹었다. 양은 좀 아쉬웠다. 55달러 (약 9500원) 였는데, 이거 2그릇은 먹어야 배가 찰 것 같았다.


완탕이 있는 까슬까슬한 면. 한국인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듯 하다.

나오고 침사추이까지 20분 정도를 걸어야 한다고 하니 기왕지사 여행 온 거 길 구경, 사람 구경 할 겸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딜 가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래도 조던역 주변을 나오니 약간은 한산해지고, 나무들도 많아지면서 살짝 불어오는 초여름 날씨의 바람이 기분 좋았다. 길을 지나면서 보니 칠이 벗겨지다 못해 쓰러질 것 같은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나름대로 여기 도심인데, 새 건물은 아니더라도 겉이라도 좀 깨끗하게 관리하지 싶었다. 그래도 저런 방조차 도심이니 다 몇억씩 하겠지 싶었다.

선선한 저녁 바람이 불던 조던역에서 침사추이 사잇길. 이정도면 홍콩 도심에서는 다소 한산한 편이다.
도심에 있는 빌딩. 여러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듯 한데, 호텔이라고 써있는 간판도 보인다.

게스트하우스에 오니 내 방에 아무도 없었다. 메일에는 당장이라도 예약하지 않으면 '넌 절대 방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은 식으로 글을 썼다만 막상 오니 혼자라서 편하기도 하고, 왜 그런 얘기를 써놨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여하튼 70000 원 가량에 홍콩에서 이 정도 방을 혼자 쓰는 것은 조금은 만족스러웠다.


저녁에 잠은 안 오고, 뭔가 아쉬워서 템플스트릿 야시장에 가보기로 하였다. 가보니 대만 야시장만큼 크진 않았지만, 삼삼오오 모여서 노상에서 맥주와 해산물을 즐기고 있었다. 이 동네도 뭔가 게 요리가 유명한가 보다. 다들 간판에 spicy crab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많이 보았다. 비싼 홍콩 물가 감안하였을 때 게까지 먹기는 힘들 것 같고 일단 아무 노상가게에 들어갔다. 아줌마를 불렀는데, 영어가 통하질 않는다 (…!). 정말 정말 다행히도 공항에서 광둥어로 숫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영어 할 줄 아시나요, 그리고 보통화 할 줄 아시나요 이렇게만 외웠는데 바로 써먹을 데가 있었다. 서툰 광둥어로 영어 할 줄 아냐고 물어보니 보통화로 말하자고 하신다. 근데 문제는 이 분의 보통화도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었다. 중국어는 원체 그다지 잘하는 것도 아닌데 보통화를 써도 이게 광둥어인지 보통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내 말은 이해하는 것 같았다. 추천 좀 해달라고 했더니 요리를 2개나 추천하신다. 2개 시키면 여기 물가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추천한 것 중에 새우찜만 시키고 추가로 맥주를 한 병 달라고 하였다. 100 달러가 조금 넘는 요리라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새우의 양이 많고 다져서 익힌 마늘과의 맛이 상당히 잘 어울려서 예상보다는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렇게 혼자 노상에서 술을 까고 있으니 어쩐 시 청승맞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것이 혼자 여행하는 단점인 것 같기도 하다.

템플스트릿에서 야식으로 찐새우와 맥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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