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반도에서 홍콩섬으로
아침에 일어나니 홍콩의 아침을 먹고 싶었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waso cafe라는 데가 마침 숙소 근처에 있어서 가보았다. 비프 사테는 어느 정도 맛이 보장되어 있으니 비프 사테면과 나이차를 한잔 시켰다. 라면에 사테를 넣어먹는 게 신기했고, 이런 헤비한 음식을 아침부터 먹는다는 것도 신기했다. 사테는 말레이시아 쪽에서 먹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의 짜장면처럼 홍콩으로 넘어오면서 면을 섞은 혼종이 된 것인지, 말레이시아에서도 애당초 면을 넣어먹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맛을 보니 면은 한국에서 먹던 라면 맛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약간 좀 더 꺼끌꺼끌했다. 표본은 몇 번 없지만, 여긴 한국의 칼국수 같이 호로록 넘어가는 면은 잘 먹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데리야끼와 간장을 묘하게 섞은 사테 소스와 부드럽게 익은 고기의 조화가 좋았다. 탄수화물이 당기는 맛이라 면이든 밥이든 필요는 할 것 같은 짭짤한 반찬이었다. 나이차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홍차에 우유를 섞은 것으로 보이는데, 달달한 맛과 우유맛이 강해서 좋았다.
나와보니 도로에 빨간색 2층 버스가 자주 돌아다닌다. 근처에 스타의 거리로 조성되어 있는 만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바다 건너편에 보이는 홍콩섬의 건물들과 한가로이 걷게 조성해 놓은 바닷가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걷다 보니 홍콩 섬이 보이는 쪽에 스타벅스가 있어서 저녁에 오면 꼭 여기서 커피를 한 잔 해야겠다 싶었다. 스타의 거리를 걷다 보니 전시관, 박물관들이 몇 개 있으며 바닷가 쪽에 쳐놓은 난관에는 홍콩 스타들의 손바닥을 찍어놓은 동판이 있었다. 양조위나 유가령 같은 유명한 스타들의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더 걷다 보니 시계탑이 화단의 꽃들과 야자나무들 사이로 멋들어지게 세워져 있었다. 엄청 높지는 않고 10층 아파트 높이 정도였는데, 가지런히 나있는 야자나무 사이에 네모난 인공연못이 있고, 그 끝에 있는 유럽식 시계탑이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침사추이 쪽 해안가를 나지막이 걷다 보니 홍콩섬으로 가는 페리 선착장이 있었다. 흡사 90년대 버스터미널 같은 분위기에 터미널 안에는 회전 선풍기가 천장에서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막 배를 놓친 터라, 관리하는 할아버지께 물어보니 10분 후에 배가 온다고 한단다.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배를 타고 가니 홍콩섬 쪽의 큰 건물들이 더더욱 눈앞에서 보이고, 광고판을 중간에 틀어놓은 관람차도 보이기 시작했다. 대륙 쪽의 반도를 넘어서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니 본격적으로 홍콩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거리상은 멀지 않기 때문에 대략 10분 이내로 배가 도착했다. 여기가 홍콩 사람들이 흔히 '센트럴'라고 부르는 곳인가 보다. 'Centeral (중환) 역'도 마침 있기도 하고. 이제 멀리서 보던 그 큰 건물들 안쪽을 본의 아니게 투어 하게 되었는데, 회사 건물과 백화점 건물들이 구름다리로 대부분 이어져 있어서 햇빛을 쬐지 않고도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까지 갈 수 있었다. 추측건대 여기도 사계절 내내 덥기 때문에 이런 구조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빌딩 숲을 요리조리 빠져나오니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 도착했다. 중경삼림에서 양조위 집 창문에서 슬쩍 보이는 에스컬레이터 틈새로 사람을 보내고,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 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자그마치 30년이나 된 영화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이렇게 유명해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긴 옥외 에스컬레이터라고 하니 여기까지 온 이상 날름 올라탔다. 올라가는 방향만 있고, 내려가는 방향은 없는데, 출근시간에만 산 위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잠깐 내려가는 방향으로 바뀐다고 한다. 홍콩은 땅에 비해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에스컬레이터에서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이 가까운 거리에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이런 광경이 이색적이었다. 카페 음식점 등등 그래도 꽤나 분위기 낼 수 있는 가게들이 많아 보였다. 물론 창가 쪽에 앉은 사람들은 프라이버시 따위는 거의 기대하긴 힘들어 보였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생각보다 꽤 길었다. 에스컬레이터만 대략 20분을 타고 간 것 같은데, 올라와보니 산꼭대기에도 아파트들이 즐비해있었다. 그리고 여기도 그렇지만 홍콩에는 여기저기서 건물들을 새로 올리느라 공사를 하는 곳이 많았다. 야산 비탈에 세워져 있는 아파트들이 신기해서 아파트들 주변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버스를 타고 나름 유명한 찻집에 가기로 하였다. 15분을 기다려도 버스가 너무 안 와서 결국엔 20분 정도를 걸어내려 갔다. 사실 산 위에서 내려가는 골목골목을 좀 더 보고 싶어서도 걸어오긴 했다.
찻집에 내려왔는데, 혼자라 그런지 왠지 모를 박대를 당했다.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야외이며, 파라솔이 제대로 햇빛을 가려주지 않아서 꽤나 더운 상태에서 뜨거운 차를 마셨다. 황차는 처음 마셔봤는데, 녹차와 홍차 사이 정도로 발효한 맛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찻집 바로 앞이 예전에 교도소로 쓰다 문화공간으로 바꾼 타이쿤이었다. 죄수들의 삶과, 재판소, 형벌에 쓰던 기구 등등을 전시해 두었다. 가야 할 여행지 중에 하나긴 하나, 크게 감흥은 없었다. 타이쿤을 나오니 공교롭게도 주변에 벽화거리가 있어서 설렁설렁 걸어가 보았다. 벽화거리 역시 길지 않아서 약간은 아쉬웠다.
벽화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린다. 홍콩은 땅이 비싸서 그런지 지대가 높은 곳에도 높은 빌딩들이 많은데, 찻길은 부산의 산길 같으면서도 높은 건물로 에워쌓여 있다는 점이 굉장히 이색적이다.
버스를 타고 케네디 타운에 도착했다. 이곳은 외국인이 많이 산다는 동네라고 하는데, 침사추이나 홍콩 센트럴과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좀 더 한적하고 좀 더 깔끔한 건물들이 많았다. 물론 상대적이라 가까이서 가면 한국 기준으로는 죄다 오래된 건물이긴 하다.
출출하여 근방의 햄버거집에 들어가 본다. 한국 수제버거집처럼 안에 책들도 꽂아놓고, 주방도 오픈형이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파인애플 번이라고 홍콩에서만 먹는 빵이 있는데, 그걸 햄버거 빵으로 활용하여 소고기 패티, 감자튀김과 같이 내왔다. 파인애플이 들어간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살짝 달달하면서도 겉은 사각사각한 느낌이 좋았다. 빵껍질이 소보로의 식감하고 비슷한 듯하면서도 좀 더 페스츄리처럼 얇게 부서지는 느낌이 독특했다.
케네디 타운은 바다와 아주 가까워서 해안가에 산책로가 잘되어있다. 누군가는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누군가는 개를 데리고 걷는다. 평일 오전이라 아주 한적했다. 그럼에도 워낙 사람 많은 홍콩이다 보니 적막한 정도는 아니었다. 동네 오락실도 가보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센트럴 쪽으로 이동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경로 중간에 홍콩대학이 있어 홍콩의 학교도 구경할 겸 들려보았다. 홍콩대학역부터 시작하여 신기하게도 모든 건물들이 햇빛을 쬐지 않고 이동할 수 있게 설계가 되어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천장만 있는 통로를 지나려니 높은 건물들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적절히 선선한 바람도 불어 여기서 노트북을 하는 학생들, 한창 동아리 준비를 하는 학생들, 삼삼오오 수다를 떨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여타 캠퍼스와 같이 건물과 건물 사이의 녹지가 많지는 않았으며, 약간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대학교 건물들이 전반적으로 높은 지대에 있어 중간중간 건물을 이동할 때 바다와 보이는 풍경은 꽤나 아름다웠다.
홍콩대학을 나와 센트럴 쪽의 Skye라는 고층호텔의 바를 들어갔다. 네이버 카페에 같이 한 잔 할 사람을 찾았더니 직장인 2명의 연락이 왔다. 덕분에 심심치 않게 루프탑에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도 하고, 시원한 바람도 맞으면서 맥주도 한잔 할 수 있었다. 센트럴 쪽에서 바다를 넘어 침사추이 쪽의 높고 화려한 빌딩들을 보니 15000원 정도 하는 맥주 한 잔이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도심과 빌딩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좁은 땅에 빽빽하게 지어놓은 이런 높은 빌딩들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줄은 몰랐다. 인공적이라고 생각했던 빌딩들조차 무질서의 자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페리를 타고 센트럴에서 다시 침사추이 쪽 스타의 거리 근처로 이동을 한다. 매 8시마다 '라이트 오브 심포니'라는 쇼를 하는데, 음악이 흘러나오고 약 10분간 홍콩섬 쪽 고층빌딩에서 조명을 일정 리듬을 가지고 켰다 껐다 하는 것이다. 도시의 건물들을 전체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약간은 신기하기도 하였으나, 엄청 번쩍번쩍하는 것은 아닌지라 생각보다는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실제로 사용하는 건물들이니 그렇게 화려하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하였다.
저녁을 못 먹어서 아까 맥주 한잔을 한 친구와 원딤섬이라는 곳을 갔다. 무려 나보다 12살이나 어린 친구였는데, 이미 사회생활 3년 차라고 한다. 이렇게 새로운 친구를 또 알게 되었다. 음식점에 가니 새우 딤섬, 돼지고기 딤섬, 춘권 등등 3,4개 피스를 약 4000원 안팎에 먹을 수 있었다. 한국이 이상하리만치 딤섬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있는데, 거의 한국의 절반 가격이라 생각하니 이것저것 다 먹어봐야겠다 싶어서 둘이서 한 6,7 종류를 시켜 먹었다. 정말 정말 배가 불렀는데 1인당 2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으로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