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마카오 콜로안, 반도
카지노로 넘쳐나는 타이파에서 20분 정도 더 내려가면 콜로안이라는 곳이 있다. 옛 포르투갈 건물들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원래는 해적들의 근거지였다고 한다. 타이파 호텔에서 콜로안으로 내려가려니 시간은 30분 조금 안되게 걸렸는데, 중국 본토에서 오는 입국심사장을 거치느라 굉장히 뱅뱅 돌아갔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멀리서 중국 본토인 주하이시를 볼 수 있었는데, 공사 중인 건물에 임대한다는 광고에 간체자가 쓰여있었다. (홍콩과 마카오는 한자를 쓸 때 한국과 같이 정체자를 사용한다) 같은 나라인데, 땅에 국경을 그어놓고 다른 말, 다른 문자를 쓰는 것이 신기했다.
콜로안에 버스로 도착하면,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로드 스트로우 베이커리가 있다. 워낙 유명한지라 에그타르트를 하나 시키고, 옛날 매점 샌드위치 같은 것이 있어 그것도 하나 시켰다. 맛살과 옥수수가 가득 들어있는 샌드위치였는데, 딱 어렸을 때 동네 빵집에서 보던 무언가로 꽉꽉 차있는 그 비주얼이었다. 에그타르트를 먹으러 온 것이지만 이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마땅히 식탁 같은 것은 물론 없는지라 베이커리 앞 공원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옥수수와 맛살 마요네즈의 조합이 맛없을 수가 없었다. 배는 샌드위치로 채우고, 메인 메뉴인 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겉바속촉한 것이 한국에서 먹던 에그타르트 맛과는 격이 달랐다. 일단 겉의 페스트리 질감이 살짝은 딱딱할 정도로 바삭하여 씹는 식감이 굉장히 좋다. 안에는 부드러운 계란이 들어있는데 너무 부드러워서 잘 저어진 계란으로 만든 차완무시 (계란찜)을 먹는 것 같았다. 이런 식감의 대조와, 계란의 은은한 향이 올라와서 굉장히 맛있었다. 유명한데는 다 이유가 있나 보다.
콜로안 마을은 남서쪽 끝에 있어서 바다를 면하고 있는데, 포르투갈 풍의 건물들과 해안가 그리고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나무들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걷다 보니 Biblioteca이라고 쓰여있는 마을 도서관이 있어서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1층으로만 되어있고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작은 유럽풍 도서관이었는데, 안의 적막감과 포근함은 한국의 여타 도서관들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셔터를 누르면서 다른 사람들을 방해할 수 없어서 살짝 구경만 하고 나왔다.
바다와 면한 곳 말고도 좀 더 육지 쪽으로 들어가면 포르투갈풍 건물, 옛날 중국풍의 건물들이 뒤섞여서 조화를 이룬다. 천천히 걸으면서 사람구경도 하고, 건물들의 색감을 구경하고, 바다를 구경하니 마음이 여유로웠다. 그 밖에 말린 건어물이나 약재를 파는 상점들도 있었고 아담한 카페들도 많이 있어서 골목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좀 더 걷다 보면 노란색으로 칠해진 성 자비에르 성당이 나오는데, 아담하지만, 성당 앞에 '깔사다'라고 부르는 보도 블록이 있어 여기도 유럽에 온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성당에서 조금 벗어나서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천후고묘라는 도교사원이 있다. 동서양의 종교마저 섞인 아주 이색적인 동네라고 느껴진다. 오래된 중국풍 건물이고 사당은 매우 작았다. 참고로 이 '천후'는 특히 대만에서 많이 도교신으로 모시는 바다의 여신 마조를 뜻한다고 한다.
이곳 콜로안은 옛 포르투갈 건물들을 많이 보존하고 있어서 그런지 파란색, 노란색의 건물들이 많다.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돌아다니다가 결국 아까 들른 로드 스트로우 베이커리에서 운영하는 카페를 들어갔다.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에그타르트를 주문했는데, 에그타르트는 아까 먹었던 맛이라 맛있었고 커피는 평범했다. 아침에 멍 때리면서 예쁜 풍경보고 커피를 마시는 건 정말 오랜만의 여유였다.
다시 타이파 쪽에 올라와서 어제 못 본 호텔을 좀 더 구경하기로 하였다. 이곳 타이파의 카지노 호텔들은 너무 광대해서 다 보는 데만도 하루가 걸린다고 한다. 시간상 다 볼 수는 없어서 오늘은 파리지앙 호텔만 갔다. 이곳도 상당히 넓기는 하다만, 어제 갔던 베네치안 만은 못한 것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카지노는 크고, 상점가도 굉장히 잘되어있었다. 어제 베네치안은 천장이 인공 하늘이더니만, 여긴 흡사 바티칸을 만들어놓았다. 자본주의의 극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에 동행을 구하다가 마침 일정이 맞는 분에게 연락이 닿아서 반도 쪽은 동행과 같이 돌아다니기로 하였다. 시청사 건물 앞의 세나두 광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동행이 오기까지 시간이 있어 마침 유명한 '웡치케이'라는 곳에 들어가서 완탕면을 먹었다. 첫날에 먹었던 '막만키' 완탕면보다는 면이 덜 까슬거리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면의 식감은 비슷하고 완탕은 역시나 속이 새우로 꽉 차있어서 정말 맛있었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많은지라 모르는 사람들과 원형 테이블에 합석을 했다.
동행을 기다릴 겸 주변 카페에 들어가서 여유롭게 커피를 한잔 했다. 가보니 특이하게도 가죽공방을 겸하고 있어서 이것저것 소품들을 팔고 있었는데, 열쇠고리조차도 3,4만 원씩 해서 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원래 가죽공방으로 만든 제품이라 비싼 건지, 아니면 마카오의 물가가 비싼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1시간을 넘게 기다려서 동행을 만났다. 나보다 2살(쯤) 많은 누님이었다. 본인 나이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아서 여전히 모른다. 여하튼 여행을 좋아하고 붙임성이 좋은 분인지라 오자마자 거의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일단 마카오 반도 쪽은 볼만한 곳이 대개는 세나두 광장 인근이라 조금 더 걸어서 '몬테 요새'에 올라갔다.
몬테 요새는 이전에 포르투갈령일 때 도시를 방어하던 곳으로 이름 그대로 요새인지라 지대가 높은 곳에 있다. 그래서 요새를 올라가면 마카오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데, 어쩐지 홍콩하고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홍콩에 비해서 높은 건물들의 밀도가 그다지 빽빽하지는 않다. 홍콩에 비해서 산지보다 평지가 더 많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고, 실제로 보기에도 그래 보였다.
사방이 터져있는 요새의 한쪽에는 세인트폴 대성당의 유적이 보이는데, 전소되어 앞부분만 남아있고 그럼에도 남아있는 부분이 웅장하여 그 어느 곳보다 문전성시다. 요새에서 내려가보니 사람들이 많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성당을 자세히 보니 그 안에 세워진 성인들의 조각이 굉장히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성당이 온전히 남아있더라면 정말 아름다웠을 것 같은데,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같이 다니는 누님이 한 번도 카지노를 안 가봤다고 하여 반도 쪽에 있는 샌즈 마카오를 가보았다. 나는 이미 2번이나 호텔카지노를 가본지라 별 감흥은 없었다만, 베네치안이나 파리지앙만큼 볼만하지는 않았다. 누님한테 꼭 베네치안을 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기왕 온 것 룰렛이나 2번쯤 돌렸는데 역시나… 나는 도박을 하면 안 된다.
샌즈마카오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피셔맨즈워프라는 곳이 있는데, 테마파크라고 한다. 사실 생각보다 일부러 들릴만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데, 사진 찍기에 좋게 파크 안에 떡하니 콜로세움 미니어처가 있다. 콜로세움을 지나서 안쪽 아케이드로 들어가면 여러 나라의 음식점이 있는데, 오래 돌아다녔기에 아케이드 벤치에서 쉬면서 동행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오래 사귄 친구와도 이런저런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여행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사람들과도 속을 터놓기가 좋을 때가 많다.
저녁때가 되어 피셔맨즈워프에 나와서 기왕지사 마카오에 온터라 동행과 'Vic's restaurant'라는 포르투갈 음식점을 갔는데, 해안가를 끼고 있어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홍콩과 같이 건물들로 반짝이지는 않지만, 바다 너머서 은은하게 비치는 다리와 건물들의 조경이 너무나도 예뻤다. 뭘 먹어도 일단 뷰로 80점 이상은 먹고 들어갈 것 같았으나 이곳에서 포르투갈 음식을 먹는 호사까지 누릴 수 있었다. 사실 요리 이름은 다 생각이 안 난다만, 생선찜에 얇게 썰어 튀긴 감자를 올린 요리가 먼저 나왔다. 생선에 간은 아주 잘 배어있으나 약간 짭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으로는 문어 필라프 같은 요리가 나왔는데, 약간 죽과 같은 점도에 문어와 야채가 들어있어서 정말 딱 보이는 그대로의 맛이 났다. 맛없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구태여 다시 먹고 싶은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동행과 헤어지고 마카오 외항으로 가서 홍콩으로 가는 페리표를 샀다. 밤 9시가 넘어서 표도 많이 없는 데다가, 10시까지 기다려야 했으며, 침사추이까지 가는 표는 끊겨서 홍콩섬인 셩완까지 가는 것 밖에 없었으며, super class 밖에 없어서 표 값을 자그마치 415 달러나 내버린 영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거의 7만 원…) 그래도 언제 이런 배를 타보겠나 싶어서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가자고 생각했다. 막상 타보니 의자가 조금 더 편하고 샌드위치를 준다는 것 말고는 크게 이점이 없었다. 피할 수 있다면 슈퍼클래스는 안타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그렇게 셩완까지 와서 지친 몸으로 다시 첫날 홍콩에서 묵었던 침사추이 YMCA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