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읽고

by 지원

자꾸 내 휴대폰속 작은 세상에서 이방인이 언급되었다. 평소 적적함을 많이 느끼는 것인지, 유튜브 영상을 습관처럼 틀어놓곤 하는데. 철학 영상을 종종 시청해서인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라는 책이 언급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 책을 굉장히 사랑하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가 진심으로 푹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부럽고, 어딘가 나의 결핍을 체감하게 되는 것도 같다.


학교 도서관에서 이방인을 이북으로 대여했다. 사실 오늘은 끝내야할 일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나의 오래된 직관은 이것을 읽어야한다고 말했다. 나는 끌릴 때 그일을 행하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찾게되지 않고, 나는 그렇게 그것을 경험할 기회를 잃게 되는것을 여러번 반복해왔다. 많은 일을 미루고, 아이패드로 이방인을 펼쳤다. 오늘은 뭔가 특별한 날이었다. 며칠전에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법학과의 헌법통치구조론이라는 수업을 신청했고, 아침잠이 많은 내가 9시 반에 일어나 수업을 수강하고 왔다. 또한 내가 누군가와 약속(타인에게 느끼는 책임감)이 없다면 카페에 가서(공간 변경 필요)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인 것을 알기에, 무작정 학교 커뮤니티에서 모르는 사람과 약속을 하여 평소 작업하기에 좋다고 느꼈던 카페에 왔다. 별거없는 통성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할일을 시작했다. 나의 초조함은 과제를 해야한다고 나를 부추겼지만, 나는 나를 알기에 이북을 펼쳤다. 아이패드로 화면을 넘기며 책을 읽는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인것 같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감명받고 사랑하는 이 책에서 뭔가를 느껴야만 할것 같은 의무감에 휩싸였다. 페이지 몇장을 읽지 않았음에도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고민했고, 그 고민이 이어지지 않고 종종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나는 진정으로 궁금하다기보단, 많은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것, 나는 과연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뛰어넘는 나만의 감상을 가질수 있을까에 대한 시험을 짤막하게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꾸만 나의 밖에 있는 것들을 더욱 의식하고, 밖에 있는 것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나를 자각하게 되는 것같다. 괴롭지만 즐거운 것들이다.


사실 알고리즘에서 말해주는 이방인에 대해 많은 힌트를 갖고 독서를 시작하니, 조금 아쉬웠다. 원래의 나였으면 나만의 감정을 갖고 해석할수 있었을텐데, 아 이런 뜻이라고 했었지, 라는 생각으로 이 단락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이 책에 흥미를 갖게 한 이유이니까 뭐.


1인칭 시점의 이 주인공은 참 이상한 사람이다. 중반까지도 카뮈가 실존주의 철학자라는 것을 잊고, 사이코패스에 대한 생애를 덤덤하게 나열하면서, 사실 모든 인간이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은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분명 주인공인 뫼르소는 자신의 세상에 대한 감상이나 구체적인 감정을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선 그가 감정을 가진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후반부까지도 정말 뫼르소가 그런 사람인걸까, 작가가 그렇게 연출한 것일까 아예 알수 없었다. 사형이 확정되고 사형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었을때 비로소, 그가 감정을 가진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상황에 놓인 그의 감정 역시도 어딘가 이질적이었다. 물론 죽기전에 사람은 모두 고통을 느끼면서도 체념하고, 한 줄기 희망을 가지려다가도 편안해지기 위해 포기할것 같지만, 뫼르소의 생각은 정말 이상했다. 특히 자신이 60세가 되어 죽을 날을 생각하는 것을 상상하며 현재를 위안 삼는 것은, 나를 살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모든 사형수가 그처럼 체념할까. 어떠한 과정이든 자신의 사고력을 총동원하여 체념하기에 힘쓸까.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은 수명이 다 되어서도 아니고, 천재지변을 만나서도 아니고, 자신이 인정하기 힘든 '인간들이 만든 구조'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는데도. 아니면 알고 있어서?


뫼르소는 단 한번도 진정으로 고민하고 행동한적이 없다. 책의 초반부부터 형광펜을 긋기 시작했는데, 그것들은 전부 뫼르소가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그렇게 하였다.'라는 내용이다. 그는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부정할 것도 딱히 없어서 그렇게 지내왔고, 30세까지는 그럭저럭 지낸것 같지만 어느날 이웃에 사는 매춘부의 포주의 접근에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그러지 않았고, 그가 미워하는 여성에게 저지른 일에 대해 옹호했고, 그 여성의 오빠를 죽였다. 사실 그 아랍인 무리와 대립하게 된것 까지는 진심으로 이해했다. 원래 인연이라는 것이 어찌보면 운명적으로(정말 특별한 인연), 아주 우연적으로(알수 없음) 발생하는 것이고, 그렇게 정이 생기고 같은 마음을 나누는것 까지도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아랍인에게 딱히 원한을 갖고 있지 않았던 그가 어떻게 '총기를 겨눠 머리를 명중하는 것'이라는 적극적인 행위를 할수 있는가.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지금까지 뫼르소는 조금 불편하지만 타인의 호의와 접근은 받아들여왔고, 회사 사장님의 발령 제안은 너무 귀찮기에 거절했다. 그에게 파리로 발령가는 것보다 총기로 사람을 쏘는 것이 덜 적극적인 행위였을까? 이렇게 언어로 정리해보니 그러했을 수도 있겠다. 마침 그에게는 주머니에 총이 있었고, 아까까지 대립하던 관계였고, 오히려 그 상황에서 상대가 먼저 칼을 겨누었는데도 내가 총구를 들이밀지 않는 것이 더 관성과 먼 일이 될수도 있겠다.. 라고 적어 보았지만 너무 말도 안되는 해석인것 같다.


읽으면서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많은 소설들이 그러하지만, 주변 환경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과하게 구체적이고, 그것에 대한 감상도 어딘가 특이하다. 뫼르소는 주변에 시각, 청각적인 것들에 아주 예민한 사람 같았고, 그것들을 타인의 말이나 상황적인 것보다 크게 받아들이며, 그것에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 같았다. 사람의 에너지는 항상 정해져 있기에, 그가 감각적인 것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나머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거나 스스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많이 무뎌져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을 본 모두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런 특징을 조금 부러워 하는 사람이다. 뫼르소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감각하였다. 또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으며, 그저 부정할 이유가 없기에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마지막은 전혀 부럽지 않다.)


그의 불우했던 유년기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혹은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 불행에서 벗어나기위해 다른 것들에 집중하는 뫼르소를 부각해서 연출했을 뿐, 그도 같은 인간이었을까

모든 인간은 사형수라는 말을 전할수 있는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서?

이제 막 1독을 마친 터라 도저히 알기 힘들다. 이따가 이방인에 대한 해석 영상을 찾아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일이든 몇년 후든 나의 해석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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