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브런치는 내가 위로받고싶을 때 오는것 같다. 뭉뚱그려서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무칠때 어쩔수 없이 노트북을 연다. 어떻게든 표현은 해야겠을까. 언어로서 직면하고 차분해지고 싶은걸까
그냥 글을 쓰는 도중에 뭔가 하고있음으로서 풀리는 느낌이 드는것이 가장 큰것 같다. 쓰다가도 생각이 더 몰입되면 멈추고 아무것도 못한다. 그래도 누워서 생각만 하는 것보다는 낫다. 뭔가 하고는 있는것 같아서. 이럴때는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와 전화로 대화하고 싶다. 속 편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토로하는 것은 나도 괴로우니까. 그래도 참기 힘들어서 오늘도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밥이든 노래든 꽂히면 그것만 한다. 작년엔 집 근처 육회덮밥이 싸고 빨리 나와서 매일 먹었고, 요즘엔 서브웨이 에그마요만 먹는다. 밥을 고르는건 너무 귀찮고, 적당한 가격에 가깝고 빨리 해치울수 있는 것이 제일 낫다. 노래는 꽂히면 그 노래만 반복재생한다. 밥이랑 다른 줄 알았다. 밥은 꼭 필요한거고 노래는 선택적인거니까. 근데 오히려 같다. 나에게 밥은 귀찮지만 채워야하는 열량이라 더욱 내키지 않는 숙제이지만, 노래는 내가 먼저 찾는데. 근데 노래도 비슷할수도 있겠다. 없으면 너무 허전하고 외롭고 나를 들여다봐야하니까 괴로워서 다른 자극을 찾는거지. 어쨋든 둘은 꽤 비슷하다. 둘다 꽂히면 한동안 그것만 먹는다. 선택은 괴롭다. 새로운 선택은 정말이지 괴롭다. 안정감이 좋다. 이게 둘의 근본인것 같다. 지금도 한 노래만 듣고있다. 안듣는건 너무 괴로워서.
왜 괴롭냐면, 우연히 재작년을 떠올려버렸다. 앞의 내용들과 다르게 타이핑 하는것이 상당히 괴롭다. 이미 지피티랑 실컷 떠들다 와서 그런가. 나는 2학년, 재작년에 중앙동아리의 부회장을 맡았다. 내가 좋아하는 춤을 추는 동아리였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멋있고 닮고싶은 사람들도 많았다. 이 문장을 적으니 왜 자동으로 시야가 흐려지는지 모르겠다. 1학년땐 춤추고 그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그렇게 힘껏 즐겁게 활동하다보니 부회장을 임명받았다. 고민하는척했지만 정말 기뻤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오비들이 보기에, 70명이 넘는 커다란 중앙동아리를 나에게 맡길만큼 내가 믿음직스러웠다는 뜻이니까. (맡겨놓고 많이 걱정했다는건 후에 들었다.) 지훈이와, 정원언니와, 수아와 임원진 일을 시작했다. 일년 내내 밤새서 고민하고, 회의하고, 사람으로부터 괴로워하고, 싸우고, 화내고, 울고 난리도 아니었다. 하루도 마음놓을날이 없었고, 나는 그 뒤로 카톡 알림 혐오 증상이 생겼다. 정말 초조하고 체력적으로 부담이었지만 여전히 즐거웠다. 서로 하소연도 많이하고 히스테리도 부렸지만 속으론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다. 다같이 너무 괴로워 제대로 말하진 못했지만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단 한순간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부회장을 맡겠다고 한건 후회하지 않을것이라고. 그들과 함께 내가 사랑하는 공동체를 위해 오로지 노력할수 있는 삶임에 기뻤다. 그만큼 그 안의 구성원들과, 동아리 활동을 사랑했다. 사람들과 함께 안무를 맞추고 노래에 맞춰 몰입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니까. 매일매일 닥쳐오는 변수에 마음졸이고 생전 처음가져보는 책임감을 떠안고 고민할것들이 너무 많았지만, 와중에 오랫동안 만나온 남자친구와도 헤어졌지만, 견딜만 했다. 우리가 있어서. 우리의 마음이 같아서. 생각은 다르고 말투도 다르지만 우리가 동아리를 잘 이끌고 동아리원들이 다른걱정없이 행복하게 춤출수 있게 일년 잘 운영해보겠다는 마음만은 너무나 같았으니까. 정말 나만큼이나, 나보다 더 동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아리를 운영할수 있어서 기뻤다. 이건 오늘 처음 인지했다. 방금 적으면서.
지훈이는 겉으론 덜 티났을수 있지만 정말 커다란 책임감을 갖고, 모든 문제를 제대로 잘 해결하겠다고 회장으로서 정말 잘해줬고, 나에게 정말 의지가 되어줬다. 정원언니는 한살 언니라고 우리한테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우리보다 한발 더 앞서서 생각할줄 알았다. 수아는 항상 싸우는 우리 중간에서 우리가 조금더 수아를 보고 차분히 대화하게 해줬고, 모든 서류를 척척 잘 처리했다. 아무리 내가 괴로워해도 옆에서 잔잔하게 위로해줬고, 지훈이와 정원언니에게도 그랬을것이다. 말은 이렇게 밖에 못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좋은 임원진이었다. 나는 오비들이 나에게 느끼게 해준, 동아리가 나에게 준 행복을, 들어올 신입들,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똑같이 느끼게 해줘야한다는 책임감에 동아리를 잘 유지하고자 정말 노력했다. 어떻게 해야 오비들처럼 선택하고 동아리원들을 행복하게 해줄수 있는 것인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항상 전 부회장 언니와 상의하고, 임원진 애들 힘들거 다 아니까 내가 가장 일을 많이 하려했다. 주관을 많이 버렸다. 정말 많이 배웠다. 우리는 항상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다른 생각이어도, 오늘도 다시 모이고, 내일도 같이 회의할거였다. 우리가 이렇게 움직일수 있게 한것은, 모두 동아리의 사람들이다. 춤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그냥 우리가 경험한 행복을 준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느낀다. 우리가 임원진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친해질리가 없을만큼 다른 사람들이었다고. 난 지금 뭘 떠들고 있는 걸까. 글같지도 않은걸 적고 있다. 도저히 발행은 못할것 같다. 내가 하고싶은 말이 뭘까.
확실한건, 그때 나는 부족했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나는 그때 자아가 없었고, 동아리원들 눈치만 봤고, 오비들이 시키는 대로 했고, 임원진에게도 그걸 강요했고, 나에 대해선 고민하지도 않았다. 너무 부족한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랬기에 더 순수하게 그들을 위해 일할수 있었겠다 싶긴 하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움직일수 있을까. 그래서 그때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 잘할수 있었을텐데도 맞지만, 그건 의미없는 생각이고,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까.
지금 나는 뭐가 그렇게 슬플까. 뭐가 그리 속상할까. 이런 단어가 아니다. 이런 표현이 아닌것 같다. 그리움도 아니다. 나는 그들을 그리워하는 것도, 그때의 나를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때처럼 순수하게 자아없이 불타는 감정과 함께 몰입할수 있는 수단이 없을거라는 것에 아쉬운건가. 맞긴하다. 이제 나의 삶에 HMD는 없을 것이다. 그런 곳은 다시는 없을것 같다. 단언할 순 없지. 사람들을 사랑하는 내가 그대로라면 그런 곳은 어디엔가 또 있을테니까. 그래도 나는 자아가 있을테고 너무 계산적인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그래도 지금이 더 마음에 든다. 조금은 아니지만. 내가 선택했다. 생각하기로.
그냥 가슴이 답답하고 시렵고 불편하다. 마음이 아프면 정말 가슴이 아프더라. 나는 지금 왜이러는 건데. 그냥 새벽에 감성좀 타고 싶은거야? 왜 고생을 사서하는거야.
그냥.. 그냥 그 문장이 너무 슬펐다. 우리는 너무 달랐지만 같은 마음이었기에 버틸수 있었다고. 그뿐이 아니라 너무너무 행복했다고, 아 그래서 아름다워보이는구나. 그래서 더 찬란하게 느껴지는거구나 그때가.
별 생각없던 1학년들이 헤헤거리고 춤추면서 술도 먹고 놀다가 너무 잘 논 나머지 동아리에 헌신하는 운명에 놓였다, 우리는 넷다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것보다 더 큰 마음으로 더 고생고생했다. 살면서 사람때문에 그렇게 더 고생해볼수 있을까. 있을거 같긴하네. 살면서 앞으로 이런말좀 안해야겠다.
지훈이는 소심하지만 고민이 많아 선택이 항상 합리적이었고 이유가 있었다. 정원언니는 무대포고 말도 거칠지만 짬바있는 생각으로 우리의 고민의 시간을 조금 줄여주었다. 수아도 조심스러운 아이지만 어떨땐 너무나 결단력있고 가장 리더같았다. 나는 뭐 어땟을까 잘 모르겠지만 동아리를 사랑하고 계속 사랑하고 싶어서 잘해보겠다는 마음은 제일 컸다. 이렇게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매일 기쁜마음으로 한사람 자취방에 모여 머리싸매고 하나하나 뜯어서 고민하고 규칙을 고치고 선택을 고민하고 정말 좋았다. 사실 나만 기쁜마음으로 모였을수도 있고, 이것도 다 지금이니까 좋았다고하지 사실 그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딱 죽고싶었다. 그래도. 그래도.
적어놓고 쭉 보니 더 아름다웠다. 찬란하다. 그냥 인정하고 괴로워해야겠다. 내 삶에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인연들. 소중한 경험과 시간들. 너무너무 소중한 내 것들. 그들을 너무너무 사랑했다. 그날 하루하루가 아쉬울 정도로, 임원진을 물려주는 날엔 정말 후련하고 기뻤지만. 사랑했던만큼 괴로워했으니까.
그냥 좀 미화하고 받아들이고 괴로워하는게 그나마 덜 괴로울것 같다. 나의 쳄디. 나의 오비들. 나의 연습들. 더 힘든 새벽연습들. 나의 공연들. 나의 임원진들. 나의 고민들. 나의 눈물. 나의 괴로움. 나의 행복. 내가 퍼다 날랐던 사랑과 헌신. 내가 좋아하는 것들 투성이다. 내가 바라던 대학생활 그 자체, 아니 그보다 훨씬 아름답고 찬란했다. 이걸 말하기가 그리 어려웠다.
그냥 발행해야겠다 너무 자랑하고싶다.
보고싶다 24년도의 쳄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