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서정, 홋카이도

국외여행, 일본

by jiya

다이아몬드 더스트(diamond dust), 얼음결정이 햇볕을 반사하면서 보석처럼 빛나는 현상이다.


홋카이도에서 다이아몬드 더스트를 보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마다 돌려보는 드라마가 있는데, 그 드라마에서 다이아몬드 더스트를 본 이후로 쭉 오랜 소원이 되어 있었다.


언젠가 가야지- 라는 생각만 했을 뿐인데, 여행은 언제나 즉흥적이라고, 예정에 없던 휴가가 생겨 급하게 다녀오게 되었다. 예정에 없어서일까. 홋카이도에 도착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마치 홋카이도에서 나를 거부하는 듯 비행기부터 숙소, 일행까지 무엇 하나 쉽게 해결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자, 그곳엔 하얀 두 팔을 뻗어 온 힘을 다해 나를 꼭 안아주는 홋카이도가 있었다. 홋카이도에서는 내내 운이 좋았다. 급하게 들어간 가게들은 맛집이었고, 기대하지 않고 있던 삿포로 눈축제의 마지막 날이 겹쳐 일루미네이션을 보며 축제를 즐기기도 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홋카이도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절로 생각나는 새하얀 눈 천국이었다. 지역을 옮길 때마다 열차와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풍경이 보일 때마다 하얀 감성이 피어났다. 홋카이도는 눈의 하중을 피하기 위해 지붕이 세모난 단독주택이 많았는데, 그 때문인지 작은 장난감 겨울 왕국 같기도 했다.

눈이 많이 쌓여있어 추울 법도 한데, 날씨는 많이 춥지 않았다. 하얀 풍경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보다 더 따뜻한 사람들도 있었다. 삿포로 시내까지 한 시간 여 걸리는 열차에 지루해하는 소녀에게,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작은 과자를 주며 위로해 주는 모습도 보았다. 타인의 선의인데, 내가 다 행복해졌다. 하지만 따뜻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홋카이도는 관광객에게 그리 친절한 동네는 아니었다. 교환학생 시절 홋카이도 출신의 아이누족 교수님께 강의를 들었던 경험이 있는데, 그 경험까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홋카이도 사람들은 비교적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같았다.(물론 개인적인 경험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버킷리스트로 삼았던 장소는 비에이라는 지역이었다. 삿포로 시내에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인데, 넓은 밭에 눈이 부실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인 곳이다. 버스투어를 신청해서 하루를 온전히 쏟았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결국 다이아몬드 더스트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후회되지 않을 많큼 낭만적인 지역이었다.

사실, 비에이까지 도착하는 2시간의 여정 자체가 모두 비에이였다. 도심을 벗어나 외곽지역으로 나서자 드문드문 보이는 집을 제외하고는 온통 눈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홋카이도는 유럽과 위도가 비슷해 자작나무가 많았는데, 하얀 자작나무보다 더 하얀 눈이 쌓여있어 자작나무가 노랗게 보일 지경이었다. 보이는 나무마다 몽글몽글 목화솜처럼 눈이 붙어있었고, 어떤 나무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허리를 수그리고 있었다. 눈은 대부분 사람 키보다 쌓여 있었고, 눈 위에 눈이 쌓여 눈으로 된 지층을 보는 것 같았다.


때로 사슴 발자국을 보기도 했다. 홋카이도는 인구수보다 사슴 개체수가 많아, 사람 발자국은 없어도 사슴 발자국은 여기저기 있었다. 평소라면 차멀미를 해서 잠을 자는데, 반짝이는 눈으로 2시간 내내 창문 틀에 꼭 붙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했다. 그저 눈밖에 없는데, 나도 모르게 살짝 울컥했다. 아름다웠다.

홋카이도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아침에 햇볕이 쨍쨍해서 눈이 녹다가도, 금새 눈보라가 치고 지하철이 지연되곤 했다. 삿포로 인근 지역인 오타루를 구경했던 날은, 저녁에 눈폭풍이 몰아쳐 목도리를 잃어버리고 ‘눈’사람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홋카이도의 눈은 수분이 없어서, 금새 녹아 없어졌다.

겨울,서정,홋카이도. 돌고 돌아 겨울이 올 때마다, 그리운 사람처럼 머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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