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6일 <1편> * amour 뒤에 s붙어야하는데 글자
제한 때문에 안됨 .ㅋ
아침 조조 영화로 4000원에 아리랑 시네센터에서 혼자 <대도시의 사랑법> 영화를 보았다.
17살 때 읽었던 책이 5년 후 영화가 되어 돌아왔다.
17살의 나는 교실에 앉아있었다. 좋아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신청했었기에 매번 그 수업을 기대하고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분은 다른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누구나 그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싶어했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 선생님께서는 직접 준비하신 자료로 국어 문법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 자료는 보통의 밋밋하고 지루한 학습지가 아니었다. 어떤 학생이 봐도 이 선생님께서 많은 고민을 해서 만들었다는 것이 느껴졌고 실질적으로 학습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다. 학교 수업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조차 그분의 수업만큼은 몇없던 내가 등교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 그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최근에 '대도시의 사랑법'이란 책을 읽었다고 이야기 해주셨다. 뭐라고 이야기하셨는지는 5년 전 찰나의 이야기었던 지라 자세히 기억이 안난다.
'대도시의 사랑법...' 노트에 적었다.
얼마안되어 직접 책을 구매해 읽었다. 하루 이틀만에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는 일, 그리고 그 첫문장을 읽어내려가는 일에 온전히 설레임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 물론 그 선생님은 내 존재를 모르실 거다. 말을 나눠본 적이 거의 없다. 그냥 조용히 수업을 들었고, 친한 친구도 그 선생님을 좋아해서 그 친구가 선생님께 말을 걸 때 두 세 발자국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다였다. 그 책의 첫 페이지를 읽어내려간 지 얼마안되어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읽고 왜인지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선생님과 친해지는 일은 누구나 원하는 일일테지만 난 그걸 어려워했고 본능적으로 무서워했다. 그런데 좋아하는 선생님이 좋아하는 책을 나도 읽었다는 사실이 모종의 공감대를 형성한 기분이 들었달까.
몇 년이 지난 후 기사에서 <대도시의 사랑법> 이 영화화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에서 다시 이 책을 찾아 펼폈고, 맨 첫 페이지에는 고1때 책의 첫 페이지에 내가 쓴 나의 이름과 학생번호가 쓰여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내가 그 때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이 떠올랐다.
어제 도서관에서 역시나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나오는 길에, 중간고사와 과제 그리고 퀴즈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면서 버스에 탔다. 아무 것도 집중할 것이 없는 버스 안에서는 돈 걱정, 진로 걱정, 가족 걱정, 강아지 걱정, 건강 걱정, 시간 걱정 ... 등등 걱정으로 이름붙일만한 모든 것들이 머릿 속에 떠오르곤 한다. 버스 안은 온전히 걱정에만 집중하는 걱정 공간 같다. 걱정은 의미없다는 사실을 많은 자기계발서를 통해, 고전을 통해 읽었음에도, 순간 순간 '아, 이래서 걱정을 하면 안되구나'하고 깨달아 책에 필기까지 해두었음에도 걱정은 내가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것이라서 내가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받아드렸다.
그러던 중, 생각을 딴데로 돌리기 위해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하지만 만원이나 주고 영화를 보기에는.. 내 하루 생활비의 절반이라 망설여졌다. 감사하게도 아리랑시네센터의 조조할인 영화 티켓은 4천원밖에 하지 않아 바로 예매했다. 그리고 집가는 내내 다른 승객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혼자 미소를 지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