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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맥박, 영혼의 춤

나는 왜 음악을 듣는가?

나의 하루는 약을 먹는 것으로 시작된다. 13년 전 간이식 수술을 한 이후 지금까지 아침 6시면 모닝콜 소리에 깨어나 물 한 겁에 약(면역억제제)을 먹는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의식이다. 하루의 첫 의식을 행하고 나면 나만의 공간인 서재로 올라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다. 어느 때는 바흐를 듣고, 어느 때는 모차르트를 듣고, 어느 때는 쇼팽이나 멘델스존을 듣고, 어느 때는 엔야(Enya)를 비롯해 여러 음악가의 선율을 듣는다. 음악이 흐르면 하늘이 열리고 온몸의 감각이 깨어난다. 꼭 마음의 세안을 한 듯 청량감이 밀려온다. 참~ 좋다.      

나에게 전화하면 전화벨 소리 대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이 흐른다. 나에게 전화하는 분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이다.      

나의 신혼생활은 장롱 한 짝과 책상이 전부인 단칸살림으로 시작됐다. 그 후 방이 두 개인 집으로 이사하자 제일 먼저 장만한 것이 인켈 오디오 세트였다. 지금은 누구든 24시간 듣고 싶은 음악을 맘껏 선택해 들을 수 있지만 30-40년 전에는 그러지 않았기에, 가난한 신학대학원생 시절이었음에도 거금 70만 원을 빚내 오디오 세트를 장만하는 대형 사고를 쳤다. 지금 돌아보면 음악을 듣는 것이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했었나 보다. ㅎㅎ     



나는 왜 음악을 듣는가? 단순하다. 음악을 듣지 않으면 사는 맛이 없기에 듣는다. 음악이 없으면 삶이 너무 황량하기에 듣는다. 음악이 없는 삶은 창문 없는 집에서 사는 것 같기에 듣는다. 한 마디로 살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음악은 나에게 평화요 쉼이요 치유요 호흡이요 행복이다. 음악은 나에게 선물이다. 그것도 인생 최고의 선물. 그러니 어찌 듣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음악을 들으며 음악이 뭘까 조용히 생각해본다. 

지금 나에게 음악은 우주의 맥박이고 우리 영혼의 춤인 듯하다. 우주 전체에 음악이 흐르는 듯하고, 내 영혼에도 음악이 흐르는 듯하며, 내 마음과 우주의 마음이 만날 때 터져 나오는 기쁨의 환호성이 곧 음악인 듯하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세대가 달라도 음악 앞에선 하나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인 듯하고, 전쟁 중이거나 슬픔 중에라도 한 가닥 음악이 흐르면 그 순간 그 영혼이 위로와 안식을 얻는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음악이 우주의 맥박, 우주의 호흡이라서일까? 나이가 들면서 모든 장르의 음악이 좋아지고, 모든 장르의 음악을 경계 없이 듣게 된다. 재즈도 좋고, 힙합도 좋고, 탱고도 좋고, 뉴에이지도 좋고, 바흐도 좋고, 조용필도 좋다. 오늘 아침엔 바흐를 들었다. 살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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