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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될까. 나는 왜, 자꾸만 돌아가고 싶어지는 걸까. 내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에 올 때, 나는 달라져서 돌아오는 것일까. 최근 들어서 향수병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 예전에 어린 심정에는, 벗어나서 다른 곳에 대한 체험을 지향했더라면, 이제는 다시금 우리를 오래된 기억 속으로 향하게 만드는 향수병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사고방식,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닌, 새로운 방식. 생각은 언제나 바뀌기 때문에.
철학과에 20살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스피노자를 무척 좋아했다. 그 친구의 생각은 어린 시절 나와 굉장히 닮아있었다. 원인과 조건이 갖추어지면, 그 결과는 확실한 것. 조건과 구조, 수학적 체계에 맞추면, 그것은 확실한 결과를 낸다는 것, 그것을 합리적이라 말하는 것. 나는 이것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과거에 내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조건과 구조, 체계와 논리는 언제나 확실한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르네상스에서 근대로의 과학 혁명 프로그램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발전이라는 확실한 믿음은 사실, 인류가 오래도록 품어온 ‘가설적 실험 상황’을 현실에 투사한 오해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반성했다. 그렇기에 나는 미래는 불확실하며, 보다 겪었던 확실한 과거들로, 나의 이야기를 구성했다. 과거의 일들은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일관적이며, 구조적이고, 지금의 나를 필연적으로 구성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같은 일을 겪어온 과거조차도, 매 순간마다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나의 해석속 직조와 창조가 그것을 이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조건과 구조는 그 사태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가능성의 바다를 구성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오직, 끊임없이 공명하는 이 세계의 작동 원리인 것이다. 나는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우주 혹은 그 원리가 사실은 이 모든 사건 일반 속에 내재하는 말 그대로, 가능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힘’이라는 개념은 매우 그리스적이지만, 나는 이 세계를 공명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가능성’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부터 이 공명이라는 개념을 철학에 담론으로 내세우려 했을까. 요동치는 파도와 같은 개념들, 끊임없이 변화하는 순간들. 내게 불교 철학에서 연기설은 특정한 심상을 떠오르게 했다. 그것은 바로 먼지와 같이 언제든 형태가 정해지고, 해체되는 이미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공명의 이미지는 다르다. 그것은 바로 파도치고, 요동치는 존재의 역동적 변화의 상을 떠오르게 한다. 먼지처럼 정해지고, 해체되는 이미지는 수동적 성향에 가깝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불교의 연기설은 내게 무언의 거부 반응을 일으킨 게 아닐까. 바로 수동적 성향이라는, "정해진" 운명에 좌우되는 존재의 양상 말이다.
때문에 나는 우리 존재의 가능성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우리 삶에서 모든 것은 다 가능성의 영역이다. 이 말은 우리의 능동적 행위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우주를 관장하는 힘은, 그 가능성을 가능하게 하는 "힘" 뿐이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을 단정하는 것이 아닌, 바다가 파도치게 만드는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인 간섭 즉, “힘”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삶에서 완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 삶에서 영원한 이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국 다시 돌고 돌아 고향을 찾아서 오게 되는 것도, 세계에서 영원한 완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내가 고향을 벗어나려 발버둥 쳤던 모든 순간들이, 결국에는 다시 그 고향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만든다는, 어떤 고요한 체험으로 나를 이끌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