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다.>

Dusvlf

by Dusvlf


감정의 기원이 어딘지 알면 분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슬퍼하지 않는다.

그러니 적어도 감정은 그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내게. 너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 그리고 그 의미도 모르겠지. 그렇게 어린 너에게, 이것이 너의 인생에서 어떠한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라. 어린 초등학교 5학년인 너는 어느 겨울날 어머니에게 하나의 제안을 받지. 그것은 독후감을 쓰라는 간단한 요청이었고, 너는 그걸 써야 할 본인만의 이유도 아니라서 그냥 넘기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너는 어릴 때부터 네가 하고 싶으면 하고, 남이 시켜서는 하지 않는 그 본질을 타고났다.


그런 요청이 온 이후 계속되는 부모의 강요에 너는 질문했지. 그 강요 속 본질, 즉 너만의 해야 하는 이유를 캐묻는 너의 습성을 또다시 발동해서 알아낸다. 그 이유는 어린 네가 받아들이기에는 터무니없는 요구였지. 그것은 네가 독후감을 쓰기만 하면 최우수상을 거저 준다는 사실이었고, 그 사실 덕에 반감이 생겼다. 맞다. 어린 너는 무형의 파편화된 감정 속에서 어디선가는 도덕적으로 어긋나고 있다는 그 균열을 감지했다. 하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찌하다고 말할 수 없는 정신적 한계 속에 있었다.


너는 이제 반항한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그르다는 판단과 함께, 너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한 부모라는 존재에 실망을 느낀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그렇게 너는 너에게 ‘시발놈’과 함께 ‘꼴에 사춘기가 와서 정신이 나갔냐’는 질타를 듣고 분노하며, 제출 마감 기한에 쫓겨서 자칭 너의 글을 급조해 나가고 있는 부모 뒷모습을 보면서 왜곡된 감정을 느낀다. 그때 이후로 너의 심리적 거리는 급속도로 멀어진다.


너는 이제 학교를 대표해서 지역에서 상을 받으러 간다. 연단 위를 올라간다. 네가 쓰지도 않은 글을, 네가 우렁찬 아우성으로 읽어 내려간다. 그리고 밑에 2등, 3등의 또래들이 너를 쳐다본다. 너는 그들을 보면서 환멸을 느낀다. 너는 인생 최대의 수치라고 느낀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진다.


내년이 오고 설날에 외가에 친척 어른들이 나를 거실 한가운데 놔두고 너를 나무란다. “어떻게 부모에게 반항할 수 있는가?, 모두가 네가 엇나가고 있다는 걸 안다. 조심해라”라는 당부는 너를 혼란스럽게 한다. 속으로 분노한다.


이후로 너는 결심을 한다. 어른은 믿을만하지 않다는 사실, ‘도덕적으로 옳은 인간이 돼야겠다.’는 사실과 함께,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나를 만들자’라는 다짐, 또한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얻어야겠다는 다짐. 너는 이제 책을 찾고, 읽기 시작하며 정신을 다듬는다. 부모와 단절한다. 대화는 하지 않는다. 대부분 무시한다. 성격이 거칠어지고 날카로워진다.


그 이후의 시간들은, 이미 위에서 내가 다 써 내려간 것처럼 흘러간다. 너는 더 날카로워졌고, 더 혼자였고, 더 버텼다. 고등학교에 와서 공부로 실패하고, 다시 방법을 바꾸고, 다시 공부한다. 고3이 되고 집 안에는 주식 차트와 한숨이 남는다. 그리고 너는 결국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질문을 꺼내어 확인하게 된다.


“아버지, 주식으로 돈 다 날리고 내가 고3 생활 힘들어할 때, 그때는 내 생각 안 했어요?”


이 질문은 네가 그토록 확인받고 싶었던, 너의 인생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솔직히 그때는 너 생각 안 했다. 그냥 우리 잘 되기만 바빴지. 하지만 혼자 잘 커 줘서 고맙다. 미안하다.”

너는 이 말을 끝으로 “그럼 더는 내 인생에 간섭하지 마요.”라고 외쳤다. 속으로는 알지만,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후에 아버지가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한다. 아버지가 말한다. “여기는 내가 어릴 적에 살았던 동네였다. 항상 걸어서 1시간마다 오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며 돌아올 때는 혼자 걸어왔다. 그리고 저녁밥으로 국밥 냄새를 맡으며 왔다. 오늘은 그 국밥이 먹고 싶네. 아들”이라고 한다.


“우리 아들이랑 밥을 언제 먹어 봤더라?”라고 하니 너는 한 번도 없다고 답했다. 아버지는 정적 후 “그럼 자주 먹자”며 말씀하신다.


그제야 너는 알았다. 부모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너는 그 말속에서 아버지의 가난했던, 과거사를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국밥 냄새를 맡으며 왔다’는 그 문장 하나가, 그냥 이야기 같지 않았다. 그 냄새를 맡으며 걸어왔던 길, 버스를 기다렸던 시간, 혼자 돌아왔던 저녁의 무게. 그걸 상상하는 순간이, 내겐 처음으로 아버지를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후에 너는 차에서 내리고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다리 밑에서 가장 서럽게 울었다.


그 생각을 다시 하는 지금의 나는 아직도 슬프다. 또한 기쁘다. 너는 분명 그러한 부모에게서 실망했다. 그리고 배척하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너는 후에도 다른 걸 먹을 수도 있지만, 아버지 와만큼은 국밥만을 먹기로 한다. 이제 나에게 그 국밥은 화해의 상징이 되었고 앞으로의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나에게 이 과거는 결국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아픈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가 내밀어 주는 화해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고, 그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 나 자신이여, 너는 너의 경향성대로, 누군가를 인정하며 화해하게 될 것이다. 어린 분노를 잠식시키고, 더욱 따뜻한 사람이 되어 있는, 지금의 내가 건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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