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닥다닥 붙어 있는 기억과
고요하게 시작하는 아침.>

Dusvlf

by Dusvlf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기억과

고요하게 시작하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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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생각이 많아서 지나가고 있는 밤을 흘려보내려고, 그렇게 잠을 청하기로, 새벽에 부둣가로 나아갔다. 이때 즈음이면, 아무도 없고 고요하고, 작은 배를 끌어올리는 노란 크레인에, 노란 조명, 그 밑에서 간단하게 담배를 피우고 조용히 산책을 다녀올 모양이었다.


‘어디 보자... 무슨 음악을 들을까’ 그렇게 고민하며 휴대폰을 뒤적뒤적, 불을 붙이지도 않고 꼬물꼬물 씹어 보는 와중에, 지금 들으면 내가 밤중 고생해서 나온 이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한, 아주 아름다운 곡을 선정하느라, 애를 많이 쓰고 있었다.


무엇을 들을까... 쇼팽? 베토벤? 슈베르트? 그렇지만 이거는 너무 아름답고 이건 너무 격렬하고, 이건 너무 우울하니까... 그래도 쇼팽이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렇게 밤을 꾸밀 재주가 있으니까. 조용히 들으며, 전주가 시작되는 와중, 뒤에서 들려오는 가곡 하나.


나는 그 가곡에 너무나도 놀래서 처음에는 이어폰에서 나오는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고, 나는 계속 주위를 휘적휘적거리면서 돌아보았다. “아 이 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그렇게 보다, 어느 할머니가 뒷짐을 지면서 홀래홀래 노래를 틀어놓으시고 산책을 나가시는 거다. 나는 지금 새벽 4시 30분인 지금 이 시간에, 역시 어르신은 일찍 나온다는 것에 증거도 찾은 겸, 그리고 그 음악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할머니에게 여쭈어보았다.


“저기 할머니, 혹시 들으시는 노래가 어떻게 되나요?”


할머니는 그냥 단순한 가곡이라, 그냥 팝송이라 했다. 보아하니 들리는 노래는 1960년대 미국의 음악이었고, 사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면서, 그렇게 물어보고 끝내려고 하니까, 할머니가 나에게 같이 걷자고 하신다. 나는 순간 어이가 없으면서, 이 흉흉한 동네에서, 아무나 보이는 사람이랑 같이 그냥 산책하자고, 자기 손자 하라고 따라오라는 것에서 왠지 모를 신선함을 느꼈다. 나는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가 될 기대로 따라갔다.


할머니가 건넨 말은 지금 이 시간에 왜 나와 있냐고 했다.


“그냥... 잠이 오지 않고, 복잡하고, 답답해서요.”


“몇 살이고 총각은?”


“저는 21살입니다.”


“21살... 원래 그 나이 때는... 나도 그 나이 때는 이유 없이 슬퍼지고, 답답하고, 복잡했으요. 내가 75살 먹고살아보니께는, 그냥 인생이 훌쩍 지나가 버리는 것 같네. 그쪽도 초등학교 1학년 때가 엊그젠데 벌써 훌훌 가버렸지?”


“네. 정말 그러네요.”


“나도 어릴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지나가네. 호호”


“할머니는 왜 이 시간에 나와있으세요?”


“나 같은 노인은 이 시간 때라도 좀 움직이고 살아야 뭐가 된다. 나중 가면 힘도 못쓰요~”


“그러겠네요.”


내가 말을 하지는 않더라도 나보고 어느 대학교를 다니냐 던 지, 자기 아들은 95학번이라면서,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자기가 6월에 불란서 여행을 다녀왔다는 둥, 그리고 아들이 두바이에서 일하다가 자기가 아들 보러 두바이에 자주 갔다는 이야기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에 속에서, 어쩌면 이렇게 처음 보는 손자뻘 되는 사람에게 막힘없이 이야기를 술술 할 수 있을까 생각도 하면서, 랜덤 할머니에게 잘못 잡혀 스몰 토킹을 하고 있는 나였다.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


#2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나는 다시 음악을 듣고 있다. 근데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그 나이 때도 막 답답하고, 씁쓸하다니. 지금 나도 그런데. 그리고 나도 정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은데.


할머니 집에 찾아간 게 생각이 난다. 그냥 무작정 아무 이유 없이 찾아가겠다고 전화한 뒤, 학교에서 나와서 그대로 부산진까지 갔다. 그러고는 이래저래 둘러보는데, 할머니 집까지 내 발로 찾아간 건 처음이었다. 역에서 내려 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에 가려면 조금 걸어야 했다.


아 이 골목, 시장은 내가 어릴 때 엄청 많이 다녔던 곳이네. 마트에서 동생이랑 술래잡기도 하고, 저 시장에서 할머니가 검은 봉투에 싼 걸 들어주면 스크류바를 사주시던 것도 생각나고. 또 올라가니까, 초등학교가 보였는데, 저곳은 나의 어머니가 다녔던 학교이고... 친척 아이들이랑 정글 짐에 올라서서 술래잡기를 하고 시소도 타고, 운동장에서 그냥 뛰고, 경찰과 도둑도 하고. 그건 전화기로 무전기인 양 연락하면서 도둑들 잡으러 다녔지. 무릎이 까지고, 피가 나도 해질 때까지 놀다가 집으로 터덜터덜 무겁게 올라가도, 마음만큼은 재밌었는데. 막 엄청 붉었는데. 또 여럿 돌아보면, 오른쪽에 길목이 정겹게 놓여있는데, 저 골목은...


어느 어릴 때 나는 동생이랑 할머니 집에 2주 동안 같이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엄마 아빠 둘이서 해외여행을 간다고 우리를 할머니 집에 맡겨두고 간 것이었다. 또 지금 와서 이야기 들어보면, 나를 주말마다 할머니에게 맡기고 할머니가 나를 놀아주며, 그렇게 집에 돌아오는 게 일상이었던 어린 날이었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 티브이 보면서, 그 당시에는 마땅한 게임기도 없고, 책도 한 권 없고. 그래서 나랑 동생이랑 서로 간지럽히면서 깔깔대고 울기도 하고, 그리고 무작정 할머니 집에서 이래저래 뒹굴면서 집의 옥상에도 올라가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여러 연장들도 보고. 어린 시절 나는 친구가 없었네. 동생뿐.


어느 날은 할머니가 시장 간다고 어디 가셨는데, 나와 동생이 그걸 또 할머니를 찾으러 간다고 동생이랑 손을 꼭 잡고서는, 알지도 못하는 골목을 할머니 짐꾼 역할 한 나름의 기억을 가지고 쫄래쫄래 내려가서는,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동생은 점점 울기 시작하고, 나도 덩달아 울고 싶지만, 동생이 무서워할까 봐 눈물을 닦아주고 손을 더 꼭 잡고, 동생을 달래고, 멋진 형인 척... 그렇게 먼 곳을 바라만 보았다. 할머니 어디예요? 도대체 분명 이쪽 길이 맞는 것 같은데, 어딜까요...


그러자 할머니가 이래저래 배회하는 우리를 보고선 “아야 왜 그 딴 대 나와있어 똥 강아지들” 라면서 말해주니까 내가 아무 말 않고, “할머니 보고 싶어서 찾아왔어요”라는 그런 말도 부끄러워서 못하겠고 그냥 동생이랑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은 봉지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할머니가 내어주자, 안도와 기쁨으로 베어 먹으면서, 올라가는 길에 있는 할미 떡볶이를 사가지고 올라갔다. 따뜻하고 무거운, 떡볶이.


그 골목은 그런 일이 있었던 골목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 골목이 너무 작아 보였다. 어릴 때는 엄청나게 거대한 광장인 줄 알았으나, 지금은 아주 좁은 골목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여기가 가장 넓은 길인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내가 커진 건지, 골목이 작아진 건지, 그렇다면, 세상은 내게 아직 넓은 광장인데, 이것도 언젠가는 작아질 건지. 뭐 그런 생각을 했다.


#3


돌아와, 왜 나는 그렇게 슬피 속으로 울부짖으면서, 밤을 그냥 받아들이고 잠을 못 자는지 이유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이 철학이라는 공부는 나를 지름길로 데려다줄까, 아니면 나를 더욱 헤매게 하는 걸까를 고민하기도 하고,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생각해 보니까 참 외로웠네. 그리고 난 내 동생이 가장 좋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잘 들어주고, 동생은 나를 우러러보고 따라주고. 나는 그런 동생 챙겨주는 것도 좋고. 대학 와서 친구도 좋은 친구지만, 이래저래 맞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고. 내 농담에도 잘 웃어주기도 하는 동생아 너는 정말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내 가족. 어릴 때는 놀아달라고 징징대는 게 그렇게 귀찮았는데, 화도 내고. 지금은 내가 놀아 달라고 징징거리네. 어릴 때는 무슨 가위바위보가 재밌다면서 1시간 동안 가위바위보를 하고는 참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고 웃기고, 끝말잇기도 진짜 너무 좋아했네.


동생아. 어린 초등학교 때 나는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학교 끝나면 아이들끼리 놀이터에 모여서 놀고, 같이 뛰어놀기도 하면서 그러고 싶었다. 그 당시에는 집이 시골구석이라, 학교 끝나고 방과 후에서 공부하면서 시간 때우다가,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가, 태권도 갔다가, 그 태권도 차가 데려다주는 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서. 그래서 학교 마치고 아이들끼리 우르르 어딜 놀러 간 기억이 없다. 혼자 그렇게 다녔다. 태권도 차에서 너랑 같이 집에 올 때만큼, 그게 너무 좋았다. 동생이랑 놀면서 갈 수 있으니까.


동생은 운이 좋게, 어릴 때 이사 온 여기 강서구 이 동네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잘 지내고 놀러 다니는 것에서 내가 못 가졌던 걸 동생이 가지니까 괜스레 뿌듯했다. 그리고 나도 새로 전학 와서 친구랑 재미있게 놀았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면서, 이제는 더 이상 시간 때울 학원이나, 방과 후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 놀고,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그 친구는 점점 질 나쁜 쪽으로 빠지고, 나는 질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학교에서 이상한 애 취급이나 받고.


그렇게 추석이나 설날에 할머니 집에 다들 친척들이 모이면 역시나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나는 친척들에게도 외면당해서. 부모 속 썩이는 못된 막 나가는 자식이라면서 그런 눈초리로 내가 말을 해도 아무도 안 들어주고, 불편하다는 기색 다 보이면서. 이제는 내가 오히려 얼굴 보면 피하는데.


#4


초등학교 때, 할머니가 차려주는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는 위층에 혼자 앉아 있었다. 밑에서 소리가 들린다. “그니껜 애가 고기만 날름 집어먹고, 그러는 게, 잘못되지 않았냐!"라며 할아버지가 운을 떼니까 할머니가 우리 손자 애새끼가 좋아하는 건데 그냥 내버려 두라며 이런저런 욱신 각신이 벌어지며, 갑자기 와장창창. 듣건대, 할아버지가 밥상을 뒤엎었나 보다 싶었다. 생각하기로는, 나 때문에 싸우는 건가, 내가 내려가서 미안하다고 하면 되나, 너무 무섭다. 아니 당연한 건가. 하다 보니까, 밑에서는 엄마나, 다른 친척들이 익숙한 일인 듯 할아버지를 진정시키고 할머니는 욕을 하시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시고.


중학생이 되자, 할아버지가 병원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나도 따라갔다. 가시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고 아버지는 묵묵하게 어머니 곁에 있었다. 나는 그냥 별생각 없었다. 할아버지의 작은 골동품, 그리고 금시계, 라디오 테이프가 있는 어두운 방만 생각나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엄마가 우는 걸 그냥 봤다. 소녀같이 웅크려서 앉아 우는 어머니. 내가 가서 달래 봤지만,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치며 멀리 가라고 했다. 그때는 서운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게 더 큰 것 같았다.


작년 겨울에, 나의 사랑에 관한 진지한 고찰과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과, 내가 뭘 잘못한 건지에 대해, 그리고 당신이 어린 나에게 준 상처에 대해 새벽에 이야기 한 적 있다.


나는 사랑도 이루지 못했고, 그리고 내게는 친구도 없다.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니까, 어머니가 한 말씀은 네가 이상하고 네가 말을 더럽게 하는 거 아니냐, 그런 걸 나한테 왜 물어보냐고 말해주니, 나는 너무 슬펐다.


화도 났지만, 내가 다시 침착하게 물었다 진심을 담아서. 지금 엄마가 내게 한말이 그게 얼마나 상처되는 줄 아냐고, 그리고 그 말 때문에 너무 지금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니까 어머니는 더욱 어이없어서, 그러게 평소에 잘하지 그랬냐며 자기에게도 말을 예쁘게 안 하는데, 사랑이고 자시고, 친구고 자시고 그게 되겠냐고 하니까, 나는 지금 이 대화에서 누가 말을 예쁘게 안 하는지 나는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당신한테 화낸 적도 없고, 그냥 이 기분 느껴서 슬프다고 말했는데, 기어이 못을 박으시네요. 엄마가 어떤 사람인데요. 화나면 소리 지르고, 자존심 부리면서, 남 뒷말이나 하면서 속 푸는 게 그렇... 게 그...


말하다가 나는 중간에 멈췄다. 상처 주기 싫었고, 말이 안 통할 거 같다는 느낌과 함께. 그 대신에 순간 이 말이 너무 떠올랐다.


엄마는 라면 먹는 게 싫어. 어릴 때 집에 돈이 없어서 일주일 동안 라면만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가 너무 생각나서.


#5


언젠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흘린 눈물은 떠나가서 슬픈 눈물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건 증오, 자신의 어릴 때 아픔. 그리고 이렇게 그냥 가버리는가에 대한 한탄이었다. 할아버지는 화나면 밥상을 엎고 물건을 던지고, 그럴 때마다 작은 외삼촌과 함께 껴안으면서 할아버지한테 맞고 모진 말도 들었다고 하는데. 이것 참. 기구한 운명이다.


이런, 작년의 여름에는 아버지를 이해했는데, 작년 겨울에는 어머니를 이해하네. 때로는 누군가를 말로 이해시키는 것보다, 그냥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게 더욱 훌륭하고 그릇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당신이 미워, 끝에는 눈물 하나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꼭 그렇지는 않겠네요. 그러나 당신의 증오 섞인 눈물보다는, 사랑의 눈물로. 끝을 메워줄게요. 이해하니까.


밤에 나온 이유는 아프거나, 사랑스러운 추억들을 다시 뒤져보려고, 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보니 길에서 만난 할머니의 인생이 훌쩍 가버린다는 말은, 다음과 같다. 나는 바로 어제와 같이 생각나는 옛 추억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어, 바로 어제 일처럼. 그러니 세월이 마치 어제의 초등학생에서, 오늘의 21살이 훌쩍 되어 버리니까.


공원 한 바퀴를 돌고, 다시 그 할머니를 만나니 내 성이 뭐냐고 해서, 최 씨입니다라고 했다. 그럼 Mr 최라고 부를게 호호.라고 하신다. 그러게요. 미스터 최. 5시 25분에 그 미스터 최는 전에는 전혀 볼 수 없던 아주 평평한 바다를 보았습니다. 마치 아무 일 없는 완전한 고요. 파도 한 번 없는 고요. 하늘은 검은색에서 보라색으로, 그리고 분홍색으로, 마침내 붉은 아침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와중 해가 항상 지는 것만 보았지 뜨는 건 본 적이 없고, 모두가 제자리에 일어나 분주할 때쯤, 한 어부가 줄을 매여 잡고 배를 띄우고 고요했던 물살을 가르기 시작합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이 풍경.

밤을 갈라내고,

스멀스멀 구름을 물들이는 빛에서.


험난 파도칠 줄 알았던

바다를 바라보게 합니다.


모난 구석이 있는 갯벌을

구석구석 보게 됩니다.


빛이 뜨기 시작하고 바다에 거울처럼

반사되는 구름과 하늘은,

어제와 같은 기억을

나와 같이 공중으로 띄우고!


나는 지난 일들의 나와 당신의 모든,

모난 구석이,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아련한 장식임을 되새기며,


그렇게 차분히 고요한 바다를 마주하고,

또 그 고요한 바다를 생동감 있게 만드는

어부가 바다를 가르듯이.


분주히 내 삶을 살아가렵니다.

조금씩 다시 움직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