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svlf
내가 부끄럽다. 내게 꿈속은 언제나 현실을 반영해 만든 환상의 세계였다. 그 속은 끔찍한 빈민가, 언덕과 바다, 내가 가보고 싶은 모험을 이루는 장소였으며, 내가 가장 아팠던 순간의 재현, 내게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나는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아니면 과거를 재현하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를 왜곡할까. 어제는 내가 그 사람에게 반지를 줬다. 그러고는 꿈속의 그 사람이 나 말고는 없다고 했다. 헤어지더라도, 나밖에 없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행복하게 껴안았다.
하지만 나는 깨어나 어둠 속에서 울었다. 현실이 아니니까. 그전에는 꿈을 꾸면 재밌는 꿈이라면서 웃으며 일어나기도 했지만, 끔찍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재조합해 나오면, 소리 지르며, 욕하며 깼다. 하지만 이번에는 행복한 꿈을 꾸고는, 울며 깼다.
오늘은 정말 많이 운거 같다. 해가 지면서 하늘이 조금 더 진한 파란색으로 바뀌고, 빨강과 파랑의 경계를 바라보며, 선선한 바람과 함께 나는 울어버렸다. 숨은 잘 쉬어지지 않았으며,나는 미친 듯이 울어버렸다. 담배는 그 자리에서 1시간 동안 앉아서 폈다. 모두가 나를 다 쳐다본다. 한 번씩 스쳐 지나가며 나를 살핀다.
그래 나는 운다. 나는 정말 잘하고 싶은데, 어째서 내 인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정말 나는 중요한 상황에서 신뢰를 잃어버리는 거 같다. 신뢰라는 것은 쌓이기 힘들고, 잃어버리는 건 한순간이다. 정말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은데, 그게 안된다. 날 왜 싫어하는지 알겠다. 안일하게 생각하고, 계획 없고, 말만 번지르르하는 사람이니까. 물론 이룬 것도 있겠지만, 사실상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냥 오늘은 정말 힘들다.
이런 생각을 했다. 좋은 사람은 성실하고 올바른 사람인데, 나는 그러지 못한다. 나는 열심히는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잘하지 못하고, 사실 무엇을 크게 노력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자존감이 실은 제일 낮은 사람인데, 높은 척하는 사람이다. 주변에서의 좋은 말은 나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어떻게 보면 다 그렇다. 사실 나는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에요.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에요. 나는 똑똑한 사람이에요. 나는 여유 있는 사람이에요. 나는 독특한 사람이에요. 다 거짓말이다. 거짓말로 인생을 만들어내서 살아온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앞에서 하는 말, 뒤에서는 또 다르고. 중요할 때는 변명하고, 과장하고, 꾸며내고, 말만 번지르르. 그렇게 내 인생을, 내 삶을 사실 대단하게 포장하는 사람. 그게 나다. 척을 하는 사람. 있어 보이게끔 하는 사람. 그게 나다. 이런 정신병 같은 삶을 나는 만들어온 것이다. 사실 별생각 없이 살았는데, 생각하면서 살아온 척, 쉬운 문제를 괜히 어렵게 돌아가며 해결하는 사람. 그 속에는 거짓과 변명 합리화로 뭉쳐진 인간. 그게 나다. 내가 남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나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어떤 사람을 보면 이러저러한 사람으로 단정하고, 판단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도 또한 이러저러하다고 단정하고 판단하는 것일까?
나를 감추는 것과는 다른 거 같다. 나는 나를 재구성하고 있다. 내 입맛에 맞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실상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자존심 다 버리고, 매달려 봤으며, 자존심 다 버리고,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해 본 적 없었다.
그 사람이 지하철에서 내가 웃는 걸 바라보고, 눈물을 훔치는 건 무엇을 의미했을까. 왜 그 사람은 나랑 시간을 더 보냈을까. 나는 정말 할 줄 아는 게 뭘까? 제일 잘하는 건, 쉬운 걸 어렵게 생각하고 어려운 걸 쉽게 하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나 스스로 말한다. "이게 사실 본질이야."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어려운 것들 아닌가? 나는 어려운 것을 대충 해놓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사실 그것이 본질이라고 합리화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내가 순전히 내 힘으로 이룬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나는 왜 그렇게 말하고 싶을까.
그래, 나는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광고하고 다니고 싶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내가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였을까? 나는 나를 설명할 수단을 찾아다니는 것일까?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나는 왜 이루지 못할 것들을 꿈꿔오는 걸까. 사실 일어나면, 아무것도 없는 현실에, 내가 원하는 설명 방식과,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포장지로 꿈을 메우는 것일까?
나는 꿈으로 고통받는 것 같다. 내 꿈은 포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내가 아픈 그 순간을 어디보다 잘 나타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꿈을 메꾸기 위해, 나는 오늘도 자기합리화를 한다. 음악을 듣고서는 그때의 순간으로 빠져든다. 현실을 도피하고, 나는 또 꿈으로 들어간다. 그 음악을 들으며, 그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꿈속에서 음악을 재생했을 때, 내가 원하는 순간으로 음악과 함께 이동하는 능력을 가졌다. 그렇게 나는 내가 아팠던 순간으로 이동했다. 또 나는 내가 즐거웠던 순간으로 이동했다. 모두 너무 눈물이 났다.
정말 사랑받고 싶다. 이해받고 싶다. 무엇을 이해받고 싶을까. 나의 이 정신병인가. 나의 이 포장 능력인가. 무엇을 채우는 사람이니까. 애초에 나는 왜 열심히 할까. 왜 열심히 해서 사랑받을 생각을 할까. 그게 옳은 일이니까? 어려서부터 영웅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같은 영화를 계속 돌려봐서 그런가. 내 인생도 3시간짜리 영화 한 편으로 만들어내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내 순간을 영화적으로 압축하고, 재생산한다. 현실은 영화가 아닌데, 나는 영화처럼 살면 안 되는 것일까? 영원히 착각하고 사는 것은 결국 나를 그 무엇으로 둔갑해서 살아가는 것인데, 그런 삶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이 멋있는 것일까.
나의 삶에 내러티브를 직접 구현하는 것은 정말이지, 자기부정성을 다소 띠고 있다.
애초에 나는 왜 고통받을까. 감각이 무뎌졌으면 좋겠다. 예민하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면 될 건데, 생각을 계속하니까, 이 순간도 발목을 잡는 것 같다. 나는 정말 이것에 중독되어 있다.
다른 방법을 써볼까. 나는 신뢰받는 사람이고, 나는 좋은 사람이며, 욕설을 하지 않고, 자기 관리에 힘쓰며, 남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으며, 나는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며, 정직한 사람이다. 자기를 통제하며, 절제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말한다. 그렇게 살아보기로 생각한다. 재미없어 보인다.
나는 내 모습을 정말 버리고 싶지만, 버리기가 싫다. 이 싫은 모습이 매력적이라서, 더더욱 그렇다. 난 왜 이런 것에 끌릴까. 혼자 우뚝 서서 마치 자기가 다 만들어낸 세상 속에 사는 사람을 상상한다. 나는 정말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걸까. 지금 내 모습을 유지하며 또 달라질 수 있을까. 정말, 다르게. 그리고 고유하게.
왜 사람은 그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왜냐하면 그 사람만이 그 사람이기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생은 무한하지 않다. 사람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은 또 다른 선택을 강화하고, 결국 그 단절된 채널 속에 한 사람의 인생은 자리 잡아 막을 내린다. 나는 어떤 삶을 그려내고 싶을까.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이루어 내고 싶은 걸까? 나는 그렇게 막을 내리고 싶을까? 내가 만약 영생을 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것을 끝까지 선택해서라도 끝을 보고 싶다. 그리고 다른 채널을 선택하고 싶다. 이번 세기는 이렇게 쭉 살아보고, 다음 세기는 또 완전히 다르게 살아보고, 그렇게 사람들을 내 속에 다 넣고 싶다. 때로는 찌질하게 살아보고, 때로는 대담하게 살아가는 두 가지 다른 인생을 다 경험해 보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또한 사랑받을 수 있는가. 나는 불가능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내가 제일 사랑했던 사람에게 모진 말을 들어도, 다시 활짝 웃으며, 내가 한결같이 웃었던 그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은 눈물을 흘렸을까?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나는 무엇도 할 수 없지만, 나는 정말 바보이지만, 그렇게 또 웃을 수 있을까.
바보같이 내게는 생일 축하가 없지만, 내 동생에게는 정성스럽고 따뜻한 생일 축하 메시지가 올라와 있는 가족 단톡방에서, 나는 어쩌면 먼 길을 아주 오랫동안 쭈욱 가게 될 거라고 짐작했다. 난 정말 피곤하게 사는 것 같다. 내가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아주 많이. 복잡하게. 그러니까 너무 슬프다. 이 사슬을 끊어버리고 싶어도, 끊이지가 않는다.
지금은 또 삶의 목적을 상실해 버린 것 같다. 나는 왜 살아가는가? 잠시 동안은 하나의 목표와 이유인 즉, 나를 위해서 살기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서, 그 미래를 계속 꿈꿨는데, 나는 정말 그것도 또한 없어졌다. 또 살아가며 언젠가 그 목표를 만들 텐데, 그때는 또 뭘까. 지친다. 삶이.
왜 그 사람은 내게 이렇게 못되게 말하는 걸까. 그냥 그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냥 그게 너무 슬프다. 그렇게 나는 바보같이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나는 또 운다. 나는 정말 다른 꿈을 꾸고 싶다. 3일 동안 같은 꿈을 꿨다. 정말 행복해서 다시 꾸고 싶지 않다. 그냥 죽어버릴까. 영원히 꿈꾸지도, 깨어나지도. 죽는다는 게, 모두에게 잊힌다면, 죽는다는 게, 누군가에게 잊힌다는 의미라면, 나는 그걸 준비해야 할까.
아버지한테는 미안하지만, 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 이름이라도 바꾸고, 연락을 모조리 끊어내 버려서는 다시 시작하고 싶다. 어디든 가서 나는 이렇게 산 사람이에요 말할 필요 없이, 과거를 다 지우고, 새로운 사람으로 나타나고 싶다. 그러면 나는 죽고, 다른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니까.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다 지우고, 나는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까. 난 회피형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쁘지 않지 않을까. 전역하고 그 이후, 혹은 계속.
난 그렇다면 가졌던 꿈을 다 내려놓고 나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볼까. 나는 항상 수트를 입고 서류 가방을 든 채 사무실에서 많은 파일들을 다 처리하고는 밤늦게 퇴근하는 게 멋있어 보였다. 그 속에서 “정의”를 이루어내는 영웅을 상상했다. 힘들어도, 힘을 잃어도 다시 일어나며, 그런 모습들을 다 버리고, 나는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아니면 다시 돌아올까.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뭘까. 집중하고 다시 돌아와서, 나를 빨리 묻어버리고 싶다. 구덩이를 파고, 내 몸과 유품을 준비하고, 활활 탈 기름을 적시고, 내 추억과 과거를 태워서 그렇게.
나는 이 꿈에서 깨려면, 선로에 머리를 대고, 기차가 오기를 기다려, 빨리 꿈에서 깨야 한다.
이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