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기독교신인문학상 "가작 수상"

제얼굴이 신문에 났어요

by 더 나아가

시 공모전 탈락과 동화 공모전 미채택이라는

쓰라린 소식을 연달아 접하며, 스스로 '일회말 투아웃'이라 명명했던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브런치 작가 도전을 하기에 앞서

"그저 도전하는 데 의의를 두자"며 애써 마음을 내려놓고 있던 저는, 지난 2월 중순 마감이었던 기독교 신인 문학상 수필 부문에 두 편의 습작을 보냈습니다.

(그것도 갑자기 뭔가에 홀린 듯 마감일 바로 전날 )

​하나는 쓰면서도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쳐야 했던 아버님과의 합가 생활 중 짠내 나는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일상의 은혜를 담아낸 감사 일기, **<소금 라테 이야기>**였습니다.

​결과 발표를 일주일 앞두고 걸려 온 낯선 번호의 부재중 전화 두 통. 제가 응모했던 공모전 문인협회에서 온 전화였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연륜 있는 목소리는 제 인생의 첫 '홈런'을 선언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씨, 응모하신 수필이 가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고, 해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두 작품 중 어떤 작품이 선정되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15년간 홀 시아버지를 모시며 살아내던 그때를 눈물로 써 내려간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선정작은 뜻밖에도 <소금 라테 이야기>라고 하시더군요. 이번 공모전에서 당선작이 나오지 않아 특별히 가작으로 선정했다는 말씀과 함께, 평소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써온 티가 난다는 과분한 칭찬도 덧붙여 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서재에 읽지 못한 채 쌓여있는 책들과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 지 일 년도 안되어 서툰 제 모습이 떠올라 조금 찔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틈나는 대로 적어 내려간 묵상 노트와 수많은 설교 노트,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쓴 습작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글의 단단한 근육이 되어주었나 봅니다.


​가장 먼저 남편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프로필 사진을 내야 한다는 말에 남편은

"지난번에 찍은 거 있잖아. 몇 년 지났어도 지금이랑 별 차이 없으니 그냥 그거 내"라고 툭 내뱉었습니다. '새로 찍어야지'라는 말을 기대한 제가 잘못이었죠.

역시나 '츤데레 플러스 짠돌이'다운 답변을 들은 뒤 사진 파일을 찾아보았지만, 어디로 옮겨놓았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에이, 잘됐다. 이참에 다시 찍어야지!'

​쾌재를 부르며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 내 사진 가지고 있어? 아무리 찾아도 없네. 없으면 다시 찍어야겠지?" 하며 능청스레 너스레를 떨어보았습니다.

​그런데 3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카톡이 울렸습니다. 제 프로필 사진을 떡하니 보내온 남편이었습니다.

본인의 휴대폰에 제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허탈함 대신 흐뭇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 사진을 찍었을 당시, "이거 너 아닌 것 같아"라는 장난기 어린 말로 예쁘다는 칭찬을 툴툴거리며 대신했던 남편이었는데 말입니다.

​비록 당선작이라는 명예는 얻지 못했지만, 제게 주어지는 이 상은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제 글이 단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기를 기도했는데, 이미 누군가의 마음을 붙잡았다는 사실이 눈물 나게 감사할 뿐입니다.

​인생의 쓴맛 뒤에 찾아온 소금 라테처럼, 이 기쁨을 잘 간직하며 다시 펜을 들어보려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곧 출간될 문예지를 통해 들려드릴게요.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리고요~~

이야기 속 등장하시는 저의 교장교감 선생님, 그리고 소금라테를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만들어 주시는

나무아래 모모 사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흑흑흑~~~


수상소감으로 이런 거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