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싫어하는 사람이 일본에 산다는 건.

by 정효진

그렇다. 이제는 우리가 일본에 갈 차례였다.

모든것이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것은 두려움 투성이이다. 특히나 그 원인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더더욱. 설상가상으로 그곳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라 일본이다.


남편은 한국 사기업의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다가 박사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일본정부소속 연구소로 들어갔다. 물론 망설임이 컸지만 교수님이 제안한 5년후 한국에 완공될 특수연구소에 관한 정보를 믿음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벌써 1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떠나기전 악몽도 꾸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남편은 지금은 꽤나 안정을 찾은 느낌이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한국에서 겪었던 악몽같은 조직생활이 전혀 없는 그곳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듯 했다. 한 가지 문제점을 제외하고 말이다. 바로 외로움이다.


나는 처음부터 반대했었다. 왜 해외를 가냐고. 그것도 왜 일본을 가냐고. 하지만 근거없고 맹목적인 부르짖음인걸 알고 있었다. 굴지의 대기업은 적지않은 나이로 실패하고 중견기업은 한번 된통 당했으니 쳐다보기도 싫었을 것이다. 영국의 진로도 모색했지만 실패했다. 일본도 본인이 원한것이 아니라 교수의 도움이 컸으니 남편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처자식은 먹어살려야하기에 다른나라에 혼자 덩그러니 나가야 하는 설움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뼈속까지 이기적인게 인간이라고 하던가. 나는 남편의 외로움보다 나와 아이들의 미래가 더 두려웠다. 남편의 힘듦과 나와 아이들의 힘듦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3년만 꾹 참고 돌아왔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떠나질 않았었다.


그렇게 일년반 정도의 두집 살림은 어영부영 빠르게 지나갔다. 앞으로 최소 3년은 더 일본에 있어야하는 남편의 외로움과 제정상의 문제로 더이상 우리의 미래를 직면하지 않을수 없었다. 일년반동안 내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면 되었지만 그것또한 실패했다. 이제는 우리가 일본에 갈 차례였다.


그동안 방학을 이용해 두어번 일본을 다녀왔더랬다. 일본은 경제대국이고 시민들도 친절하고 치안도 매우 좋다는 남편의 침 튀기는 칭찬에도 일본을 바라보는 나의 눈길은 아직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20년전에 멈춰버린 듯한 낡은 거리의 모습들도 낯선 일본어를 보는 것도, 더욱이 그곳에서 지내야하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발걸음을 떼어본다. 그리고 되뇌어본다.

'이제 당분간 우리의 보금자리는 일본이야. 부정회로는 원없이 돌렸으니 이제 그곳에서의 긍정적인 미래와 행복한 생활을 그려보자. 일본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오늘의 근심걱정을 돌아보며 깔깔 웃을 정도로 아쉬움이 없는 발걸음을 남기자. 우리 가족은 멋진 추억 한 조각을 남기게 될거야.'


앞으로 펼쳐질 좌충우돌 우리 가족의 일본생활. 아이들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성장의 자양분이 되기를. 자.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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