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생활의 시작은 선택과 선택의 연속

by 정효진


오지 않을 것 같은 2023년이 벌써 허리를 꺾었다. 7월이라니.. 곧 방학을 맞이하고 우리는 일본으로 날아갈 것이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정신없겠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빨리 처리해야 할 집안살림들을 뒤로하고 카페에 나와 끄적이고 있는 걸 보니 정신이 없는 게 맞나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정신 차리기를 거부하는 것 같기도.


일본행을 결정하며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아이들 학교였다. 일본인학교를 보내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나만의 편견 가득한 시선 때문이었다. 아직도 일본에 막연한 편견을 거두지 못한 나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아이들 학교문제만은 내 뜻대로 하고 싶었다. 남편도 나의 마음을 아는지라 우리는 온마음을 다해 국제학교를 알아봤다. 남편 연구소와 연계된 인가받은 국제학교에 간신히 인터뷰를 할 수 있었지만 형편없는 영어실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때의 좌절감이란....(잠깐이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낀 것 같다.) 나름 괜찮은 평을 받은 국제학교들은 모두 대기상태이거나, 원만한 영어실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로컬학교를 포기한 이상 인가받은 학교만을 고집하는 것은 무리 었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한참을 고민하다 일단 한인교회에서 운영하는 작은 국제학교에 입학시키기로 했다. 우리의 계획은 일단 이곳에서 아이들 영어실력을 끌어올린 후(학생수가 적어 소속감과, 영어를 모두 챙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들었다.) 내년에 우리가 원하는 국제학교에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제2, 제3의 국제학교 리스트들을 한쪽에 고이 대기시켜 놓은 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약 6개월간은 일본에 살며 영어와 물아일체가 되는 시간들을 보내야 한다. 남편에게 한 일본친구가 웃으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고 한다.

"일본에 와서 영어공부를 한다고?"

우리는 이럴 줄 알았는가?


질풍노도의 시기 같았던 학교탐방기를 끝내니 아주 작은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머리에 꽃을 달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지금은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 주변의 집들을 알아보고 있다. 남편의 추천이었던 외국인숙소는(박사 연구원들만 입주가능) 좋은 인맥을 만들 수 있고 보완이 철저해 안심은 되었지만 무엇보다 학교랑 도보권이 아니라 제외시켰다. 하지만 일본의 집들을 보며 지울 수 없는 생각 하나. 난 왜 일본의 집들을 보면 평양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가? 아마 한국의 최신식 고층아파트에 익숙해진 나의 눈이 일본 스타일의 집을 '평양집'이라고 프레임을 짜는 것 같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인데 일본은 우리나라다 훨씬 크기 때문에(한국과 비슷한 크기인 줄 알았더란다. 이런 무식함) 단독주택이나 빌라사이즈의 집들이 많은 게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지진 때문 에라도 말이다. 변기랑 세면대가 분리되어 있고 집크기든 가전제품이든 뭐든 한국보다 작은 것도 재미있다. 차도 대부분 미니사이즈다. 우리나라 모닝보다 작은 차도 수두룩하다. 난 뭐든 큰 게 좋은데 말이다.

여보 다음엔 웬만해선 우리나라보다 큰 미국이나 캐나다는 어때?라고 일본에 발도 담그지 않았는데 질문이 튀어나온다. 우리의 일본 적응기는 이렇게 서서히 시동이 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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