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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의 나

by 정효진

어제 오후부터 문뜩문뜩 '쓰면 재미있겠다' 싶은 글감들이 떠올랐다. 글감이 떠오르면 바로 쓰면 좋지만 그럴 수 없다. 오후 시간에 나는 아이들 그림자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아~~ 이런 스토리로 글을 쓰면 재밌겠다.' 하고 나도 모르게 생각이 둥둥 떠다닌다.

아이들이 생각 틈 사이로 치고 들어온다.


"엄마~ 책 다 읽었어~ 빨리 확인해 줘~"

"엄마~ 같이 라면 끓여 먹자~"

"엄마~ 근데 옷이 안 보여~"

"엄마~엄마~엄마~"


'엄마 좀 그만 불러라 이것들아. 이러다 엄마소리만 쓰게 생겼다!'

하루종일 시달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순간 미안함에 정신이 번쩍 들 때도 있지만 또 항상 그렇지도 않다.


오늘 오전은 완벽했다. 아이들과 남편도 일찌감치 학교로, 회사로 보내고 나만의 시간이 평소보다 일찍 주어졌다. 이제 난 자유를 얻었으니 열심히 어제의 글감을 써보리라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냥 돌아오기 아쉬워 편의점에 들러 비바람 속에 라떼를 한 잔 샀다. 우산이 뒤집어졌다. 우산을 썼지만 젖은 몸으로 집에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잠시 쉬자며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유튜브에 빠져있다가 위대한 다짐과 함께 핸드폰을 치워버렸다. 그 뒤로도 몇 번을 들었다 놓았다 정신 사납게 굴다가 드디어 노트북을 열었다. 오픈과 동시에 나타나는 네이버 기사의 화려한 유혹에 또 한번 깔끔하게 당해주고, 아까 마신 라떼는 잊은 듯 믹스 커피를 마시고, 창문 환기까지 끝내고 머리를 몇 번 긁적이고 나서야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평소보다 일찍 주어진 시간은 다시 제로베이스가 되어버렸다.


쓰지 못할 시간엔 그렇게 그리워하면서도, 아직도 막상 쓰려면 열심히 미루기 바쁜 현실이다.


영문도 모른 채 엄마의 찢어진 눈초리를 견뎌야 했던 아이들과 오늘은 젤리 한 무더기를 원 없이 먹어야겠다. 아이들은 또 영문을 모른 채 엄마의 환한 미소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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