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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불만

by 정효진

잊을만하면 콜록대는 딸아이의 기침이 쇠줄처럼 끊길 기미가 없어 노파심에 아침부터 병원을 갔다. 열도 없고, 콧물도 없고, 기침도 심하지 않고... 갈지 말지 열한 번 고민하다 결정한 병원행이었다. 남편 차를 타고 8분 거리의 병원에 도착해 무사히 접수까지 마쳤다. 일본은 고등학생까지 치과를 포함한 모든 병원비가 무료이다. 그래서 병원 가는 발걸음이 참 가볍다. 가벼우면 안 되는데 말이다.


평소 걱정을 싸들고 사는 편인 남편을 한 팔을 휘둘러 보내고 우리는 기약 없는 대기를 시작했다. 일본 병원도 예약이 필수이지만 다행히 예약하지 않은 환자도 받아주었다. 최소 대기시간이 1시간이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한 시간이 대수랴. 언어가 통하지 않아 손짓발짓 연기가 일상화된 이곳에서 퇴짜 맞지 않고 소파에 앉아있을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그렇게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딱 한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의사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친절한 간호사, 친절한 의사, 친절한 약사까지, 병원에서 집에 오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어떤 불이익이나 마음의 불편함을 겪지 않았다. 실제 생활 속에서 겪는 일본인들은 정말 친절하고 배려가 깊었다. 깊은 속까지야 어떨지 알 순 없지만 나 같은 이방인들에게는 살기 좋은 나라 상위권을 다투는 순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관심조차 없던 나조차 인정하는 일본의 아니 일본인의 장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눠먹고, 마트에서 잔뜩 먹을 것을 사서 돌아오는 순간에도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눈치 없기로 소문난 남편의 카톡 폭탄에 순간 짜증이 폭발해 버렸다. 그저 아이의 안부와 마트의 쇼핑가격에 놀라 한마디 했을 뿐인 남편은 억울함에 코뿔소가 되어버렸고 상황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버렸다.


집에 와서 장을 본 모든 것들을 내팽개치고 샤부작 샤부작 소풍놀이하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모든 것의 평화로움 속에서 왜 그리 짜증이 났을까?'

첫째는 남편의 눈치 없는 시시콜콜 카톡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래 남편의 그런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테니 좀 더 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욕구불만??!!!


오해마시라.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그런 욕구불만은 소 닭 보듯 한지 오래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2주 넘게 꾸준히 글을 써오다 이틀가까이 못쓰게 되니 나도 모르게 마음의 불편함과 불안함이 있었던 것 같다. 써야 되는데, 이쯤 되면 쓸 시간이 지났는데, 너 안 하고 뭐 하니?

마치 자동습관이 세팅된 뇌가 나에게 엉덩이를 쿡쿡 찔러가며 불편함을 유발하는 것처럼. 오전이 지나 점심이 지나 저녁이 가까워지려 하니 점점 불안감이 커져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불똥이 튀었던 것은 아닐까.


아직도 정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해가 꽁무니를 감추기 전에 뭐가 마려운 것마냥 게눈 감추듯 막글을 쓰고, 밤이 되기도전에 이렇게 정신산만한 글을 또 끄적이고 있는 걸 보니 글쓰기가 영향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확실한 건 여러 추리를 넘나들며 쓰고 있는 이 순간에는 이상한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습관이 아니라 중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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