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유리알 유희'는 굉장히 읽기 어려운 책이다. 나도 고등학교인지 대학교인지 그 시절에 폼 잡고 싶어 한번 읽어보았던 기억이 있다. 무슨 내용인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독서가가 유리알 유희의 주제를 한마디로 정의해 주었다.
"너 지금 즐겁니?"
유리알 유희의 유희가 말 그대로 플레이를 뜻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인생을 재밌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라는 것.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이 즐겁고 행복한가? 잘 모르겠다. 행복하고 잘 살아보려 열심히 노력은 하고 있다. 확실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을 다시 해보았다.
"그러면 너는 무엇을 할 때 즐겁고 행복하니?"
크헉. 폐부를 찔린 것처럼 뜨끔했다.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오래전부터 고민해 오던 명제였는데 이 나이 먹도록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는 느낌과 창피함 때문이었을까...
일본에 와서 나 자신을 많이 되돌아보게 된다. 자꾸 까먹지만 자꾸 상기시킨다. 이제 인생 중반도 넘기는 이 시기에 나는 이대로 내 인생을 확정 지을 것인가? 솔직히 내 인생 재미없지 않았니? 이제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잖아? 그러면 두려움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과감히 벗고 하나씩 해야 하지 않을까? 내 인생을 온전히 살려면 남눈치는 이제 그만 보고 나의 삶을 살아보자. 미친년처럼 보일까 봐 변하지 않는 인생에 계속 머무르길 원하니?
사람은 정말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마인드가 변하기까지 3년이 걸렸고 하나의 소소한 행동을 하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 지금은 결과도 형편없는 이런저런 도전과 실행들을 하고 있지만 이것 또한 매일매일 예전의 나와의 갈등을 겪으며 실행 중이다.
그래서 요즈음 드는 생각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옳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지치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결과가 엉망이더라도 과정의 즐거움과 경험은 온전히 나에게 흡수된다. 뼈가 되고 살이 되어 미래의 나에게 자양분이 될 것이다. 블로그를 3년이 넘게 하고 있다. 어메이징한 결과물은 없지만 온전히 쓰는 즐거움으로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나는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써야 하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블로그든 브런치든 매일 쓰고 있다. 설거지는 쌓여있고 머리는 산발이고 빨래는 세탁기에서 잠들어있지만 나는 오늘도 쓴다. 아직 안갯속 미래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쌓아 내가 원하는 미래를 유희하며 살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