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면 외국에서 몇 달은 살다 온 줄 알겠네"
남편의 장난스런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살폈다.
해외 여행을 갔다 집에 오면 이상하게 비빔밥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한식파냐? 그것도 아니다. 평소에는 밥보다는 면을 면보다는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다.
밑반찬 몇 개에 고추장을 넣고 된장찌개 국물 좀 넣고 계란프라이 노른자를 톡 터뜨려 싹싹 비벼준다. 맛있게 잘 비벼진 밥을 숟가락 듬뿍 떠서 한 입에 먹으면 해외 여행에서 먹은 여러 향신료들과 비행기를 타고 온 피곤함이 싹 가신다.
"한입 줄까? 그럴 줄 알고 밥을 좀 많이 비볐지"
군침흘리며 기회를 엿보던 남편도 어느새 한마음이 되어 비빔밥 먹방에 동참했다. 소박하지만 정감있는 맛을 나눠 먹을 때 진짜 집에 온 기분이 든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흔한 것들을 함께 한 순간이 더 기억에 나고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 아이들은 급식이 있지만 나때만 해도 여고시절 점심, 저녁 도시락을 두 개씩 싸 가지고 다녔다. 매일 반찬을 해주시는 엄마의 노고도 모른 체 매번 비슷 비슷한 반찬이 지겨울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어디선가 커다란 양푼이 등장했다.
"비빔밥 해 먹을사람!"
누구의 가방에서 나왔는지 고추장을 꺼내고 참기름도 나왔다. 친구들과 도시락 속 밥과 반찬들을 우르르 한데 넣고 숟가락으로 열심히 비비며 까르르 웃었다. 그날따라 간조절을 잘 못한 친구네 계란말이도 달짝지근한 맛이 입맛 돋우는 짝꿍네 진미채도 도시락 반찬에 빠질 수 없는 우리집 오뎅볶음도 어느 하나 뺄 것이 없다. 여러 집의 맛들이 섞여 최고의 비빔밥으로 탄생했다. 마지막에 참기름 한바퀴 싸악 두르면 고소함이 온 교실에 퍼졌다. 반찬을 뺏어먹거나 따로 먹는 일 없이 모두들 숟가락이 한곳에 모여 나눠 먹었다. 밥을 넣지 않은 친구들조차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한입만을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숟가락 부딪히면서 함께 먹은 맛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추억의 맛이다.
다섯가지 나물을 정갈하게 담아 비벼먹는 비빔밥도 좋지만 번거로울 것 없이 고추장에 참기름만 있다면 맛있는 비빔밥이 된다. 있는 반찬 무엇이라도 상관없이 넣어 비벼 먹는 비빔밥. 여러 반찬을 넣어도 그 맛이 조화롭게 섞이면서 맛깔난 비빔밥이 된다. 그 비빔밥의 맛의 비결은 함께 나눠 먹는 사람들이다.
주위의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모여 새로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평범한 것들이 모여 특별함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흔한 반찬들이 모여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 내듯이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행복을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