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에 동그라미

끈기

by 반짝이는 엘리

달력에 동그라미


저녁 9시 알람이 어김없이 울린다. 누가 들을세라 황급히 꺼버렸다.

"엄마 안나가?"

"너 때문에 못나가잖아"

괜히 아이 핑계를 대며 엉덩이가 무겁다.

살이 무섭게 찌는데 헬스는 하기 싫고 세상엔 맛있는 게 참 많아 식단 조절도 잘 못하겠다. 결국 생각해낸 것이 바로 줄넘기이다.

줄넘기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합친 것과 같은 운동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짧은 시간에 칼로리 소모가 큰 전신 운동이라 꾸준히하면 다이어트에 이보다 간편하고 효과적인 운동이 없다고.

줄넘기를 하기로 결심하고 장소를 물색했다. 집 앞 놀이터는 폭신한 우레탄 바닥이라 뛸 때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덜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로등도 있고 간간히 경비 아저씨도 돌아다니셔서 무섭지도 않았다. 하루 할 일을 다 끝낸 저녁 9시면 오가는 사람도 없어서 창피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줄넘기를 한 날엔 달력에 하루 하루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지난달 달력에 표시한 성적이 들쑥 날쑥했다. 삼일 동그라미 이틀 쉬고, 이틀 동그라미 삼일 쉬고 작심 삼일을 반복했다. 그러다 지난주엔 통으로 빈칸이었다.

꾸준히 매일 매일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그렇듯 내 의지가 문제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기만 하면 되지만 그게 그렇게나 귀찮을 수가 없었다.


"아들, 엄마랑 같이 운동가자. 너도 운동 좀 해야돼"

"나 태권도하고왔거든"

아들은 7살때부터 집 앞 태권도를 다녔다. 태권도 학원에서는 줄넘기도 배운다.

요즘 아이들은 줄넘기도 학원에서 배운다. 별걸 다 학원에서 배운다 싶었지만 요즘 줄넘기는 내가 아는 뛰기만 하는 줄넘기가 아니다. 최신 음악에 맞춰 여러 동작을 넣은 음악 줄넘기부터 묘기 수준의 줄넘기 동작도 배웠다.

"그럼 엄마 줄넘기 알려줘. 복싱 선수처럼 한발 한발로 뛰는 줄넘기 할 줄알아?

"번갈아 뛰기? 당연하지 잘봐"

아들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통통 뛰며 제법 줄넘기를 잘했다. 줄넘기방학특강과 태권도 학원에서 갈고닦은 실력이었다. 번갈아 뛰기, 2단 쌩쌩이, 엇걸어 뛰기를 하며 따라 해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하는 건데?"

"줄을 앞으로 넘기고 한 발씩 뛰어"

"으잉?"

아들이 당연한 소리를 진지하게 말했다. 머리로는 알지만 무거운 내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다른 요령이 있는 줄 알았더니 허무하게도 그냥 하는거란다.


아들이 태권도 학원을 다니기 전 처음 줄넘기를 할 때는 내가 가르쳐줬었다. 한 개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던 아이가 꾸준히 줄넘기를 한 결과 이젠 반대로 아이에게 배우는 상황이 되었다.

운동이든지 뭐든지 요령보다는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어제 못했더라도 오늘, 내일 꾸준히 하면 되지 않을까


심장박동 소리가 느껴지며 숨이 가빠왔다.

밤공기를 가르는 줄이 휘리릭 돌아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하다보니 처음 계획한 500회에서 800개까지 늘었다.

이번 달 달력엔 동그라미가 가득 채워지길. 채워진 동그라미만큼 나의 부족한 끈기도 채워지길 바라며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행계획 짜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