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맛을 맛봄
찬 겨울을 지나 돌아오는 봄맛은 매 해 아는 맛이지만 항상 어렴풋하기만 하다
지나치게 봄을 편애하는 나에게 봄맛은 어렴풋한 만큼 설레임의 맛이기도 했다
2025.05.09 비가 오는 금요일.
여름을 앞두고 내리는 비 치고는 꽤나 을씨년스러운 아침이다
얇은 봄 옷에 내려앉은 비에 젖은 한기 때문인지 따스한 커피 한 모금이 땡긴다
낭만적 클리셰인 비와 커피 사이, 가슴에서는 폐수처럼 거무튀튀한 감정이 불현듯 솟아오른다
통증과도 닮은 쓴 맛이 입안을 맴돌며 따스한 커피의 맛이 탄 맛으로 다가온다
쓴 입안을 혀로 훑으며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치넨 미키토. 한밤중의 마리오네트 오마쥬]
"이 비가 그때 내렸더라면!"
지금 내리는 이 비에 시우(時雨)의 안타까움을 담아본다
"봄맛과 시우(時雨)"
벚꽃의 흐드러짐과 냉이의 향긋한 봄맛이 한창일 때 의성과 안동은 화마에 휩싸였었다
그때의 안타까운 맘은 뉴스를 접할 때뿐... 먼 이웃 동네의 일로만 치부하였다
약간의 성금을 기부했다는 마음은 일말의 안타까운 양심조차 성급히 거둬들이며 평온한 일상을 지나게 했다
불에 타버린 검은 산등성이와 뜨거운 고열에 누렇게 말라버린 소나무를 지난 주 안동 가는 길목에서 마주했다
잊고 지냈던 의성, 안동 산불의 흔적이었다.
국도를 따라 까맣게 그을린 가로수에서, 불에 탄 농가를 지키던 이름 모를 나무둥치에서, 동네 뒷 산 나즈막한 텃밭에서, 그리고 그곳에서 화마의 상처를 치유하느라 분주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당연한 봄의 맛인 연분홍 꽃들과 초록한 새싹들이 오히려 생경함으로 다가오는 그곳엔 아물지 못한 봄의 쓴 맛과 상처만이 남아 있었다.
쓴맛과 탄맛의 건조한 그곳에도 지금 이 비가 내리겠지!
오늘 이 비가 그때의 시우(時雨)였다면 지금 그곳의 봄맛은 어떠했을까?
벚꽃과 냉이의 봄맛으로 이곳의 쓴 맛을 눙치기에는 마음이 불편한 오늘이다
지나치게 봄을 편애하는 나에게 올 봄의 맛은 어렴풋한 만큼 설레임의 맛이 아닌 깊이 각인된 두번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맛이었다
올해 당신의 봄에는 무슨 맛이 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