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맞은 치명적인 위기
그가 CDN(Content Delivery Network)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검색솔루션으로 유명했던 잉크토미(Inktomi)의 캐시솔루션인 Traffic Server 총판영업을 맡고 있던 잉크토미코리아(Inktomi Korea) 이종경 차장이 미국의 CDN 시장에 관해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MIT의 응용수학과 교수인 Thomson Leighton 박사와 그 제자들은 World Wide Web의 창시자인 Tim Berners-Lee의 요청으로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연구하였는데, 네트웍과 네트웍이 서로 연결된 인터넷(Inter-net)의 특성상 네트웍 간의 연결구간에서 발생하는 고질적인 병목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네트웍의 주요 거점들에 데이터를 미리 복사해 놓고 사용자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전송한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하였다. 그들은 이 아이디어로 MIT가 매년 독특한 아이템을 하나씩 선정하여 5만 불의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창업 프로그램에 선정되었으며, Thomson과 그 제자들이 이 자금으로 1998년에 설립된 회사가 Akamai Technology이다. 이들은 최초로 CDN(Content Delivery Network)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고안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CDN솔루션을 직접 만들었다. (출처: The Akamai Story – Theory to Practice (http://mitworld.mit.edu/video/199)
IT에 대한 붐이 광풍처럼 불던 1999년에 Akamai가 제안한 CDN 기술을 Paramount, ESPN, Apple, Microsoft 등 빅로고 기업들이 채택하고 그 효과를 인정하자,
그 해 나스닥에 상장한 Akamai 주식은 상장 후 첫 거래일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 시작해서 그해 말 $300을 넘어섰고
( 1999년 12월 31일 $327.625), Akamai와 CDN이라는 이름은 인터넷 신기술의 아이콘으로 부각되었다. 이에 고무되어 99년 한 해 동안에만 수십 개의 CDN 기업이 미국에서 탄생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Akamai와 달리 시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던 상용 캐시 서버를 구매하여 CDN 인프라를 구축하였다. 그중에서 잠시나마 비교적 이름을 알렸던 회사들이 Mirror Image, Adero, Digital Island 등이었다. 그리고 이 세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했던 캐시서버가 Inktomi의 ‘Traffic Server’라는 제품이었다.
창업 준비 단계에서 CDN 사업을 인프라 사업으로 정의했던 우리는 모든 통신사들이 그러하듯 자체 솔루션이 없어도 좋은 상용 솔루션을 도입해서 잘 운영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미국의 많은 CDN 기업들이 잉크토미의 캐시솔루션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솔루션에 대해서는 거의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분석을 해보니 미국에서는 CDN을 적용하는 이유가 웹사이트의 이미지 로딩 속도를 개선하는 목적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웹사이트의 이미지 로딩 속도에는 불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넓은 땅에서 데이터를 서부에서 동부로 전송하기 위해서는 수십 개의 라우터를 거쳐야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단지 몇 대의 라우터만 거치면 되었고, 90년대 말부터 한국에서는 이미지 파일을 대용량 데이터로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동영상 스트리밍의 버퍼링이 가장 큰 이슈였다. 그때 잉크토미코리아의 이종경 차장은 자사의 캐시솔루션인 Traffic Server로 동영상을 처리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장담했고, 얼마간의 테스트 후에 하드웨어인 SUN Server와 Inktomi Traffic Server를 구매하였다.
2000년에 우리의 1순위 목표시장이 성인방송국이었는데,
라이브 방송 중에 시청자들의 실시간 댓글에 성인 VJ가 반응하는 것이 당시 최신 트렌드였다. 우리는 메이저 성인방송국들을 상대로 무료 시범서비스를 제공하면 필드테스트와 함께 최적화 작업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동영상 서비스 테스트 결과는 심각했다.
성인방송국이 자신들의 기술로 서비스하는 것보다 우리의 CDN 서비스를 적용했을 때 버퍼링과 딜레이(시간 차이) 현상이 더 심했던 것이다. 라이브 방송 현장과 PC로 동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의 차이가 30초 이상 발생해서 실시간 댓글에 VJ가 너무 늦게 반응하자 시청자들이 짜증을 냈던 것이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의 WMT(Windows Media Technology) 솔루션 자체가 10~15초 가량의 딜레이가 있긴 했지만 성인방송국에서는 라이브로 촬영하는 원소스를 그대로 미디어 서버로 보내는데 반해, 우리는 CDN의 특성상 원소스 --> 고객 측 미디어서버 --> CDN Ingress Server --> CDN Egress Server의 순으로 전달하다 보니 시간을 단축하기는커녕 오히려 2배가량의 딜레이가 발생했던 것이다.
회사를 창업하자마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첫번째이자 치명적인 위기였다.
값비싼 서버를 12대 사느라 5억이나 쓴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잉크토미의 캐시솔루션만 있으면 기술적인 솔루션은 다 해결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믿었던 솔루션이 솔루션이 아니었던 것이다. 통신 3사의 투자를 받으면서 희망에 부풀어 구름 위에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맞닥뜨린 현실은 잔인했던 것이다.
고사무열 사장은 잉크토미코리아의 사장과 이종경 차장을 불러서 항의를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미국에서 잉크토미 캐시솔루션을 사용하고 있다는 CDN 기업들을 방문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그 솔루션을 도입해서 쓰고 있으니,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테고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2001년 초 CTO와 운영팀장 등이 미국 CDN 3사 (Adero, Mirror-Image, Digital Island)를 방문하러 미국으로 떠났다.
회사의 첫 번째 해외출장이었다. 그러나 방문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들 모두 잉크토미의 캐시솔루션에 불만이 많았던 것이다. 동영상이 아니라 이미지 캐싱 목적으로도 도저히 못쓰겠다며, 왜 이런 솔루션을 벤치마킹하러 먼 곳까지 왔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미국 방문단이 복귀한 후 우울하지만 더는 회피할 수 없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잉크토미 캐시솔루션으로는 답이 없으니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그 무렵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정OO 대리가 우리도 성인방송국처럼 WMT를 솔루션으로 사용하면 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성인방송국에서 서비스 운영을 해왔던 그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랬다. 답은 간단했다.
미국의 CDN 사업자들이 캐시서버를 사용했다고 해서
반드시 따라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어쨋든 동영상을 끊기지 않게 빠르게 전송하면 되는 것 아닌가?
미국과 한국의 인터넷 환경이 다르고 CDN이 목표로 하는 시장도 다르니 CDN에 대한 개념도 다르게 접근하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서비스제안서와 홈페이지의 CDN 정의를 수정했다. 원래는 “여러 ISP에 전략적으로 설치된 Cache Server를 통해 콘텐츠를 배포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을
"콘텐츠를 인터넷의 여러 지점에 미리 카피해놓고,
사용자로부터 가까운 지점에서 배달하는 서비스"
로 바꾼 것이다. 새롭게 바꾼 CDN 정의는 현재 우리뿐 아니라 대부분의 CDN 사업자들과 대학 교과서에서 사용하는 개념이 되었다.
-- 5편에서 계속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4편 - 처음 맞은 치명적인 위기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