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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동아빠 구재학 May 21. 2022

벤처 창업에서 글로벌 기업까지 5

CDN 업계 1위 등극


'90년대 말 ‘묻지마 투자’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벤처 또는 IT라는 얘기만 들으면 개인투자자는 물론이고 기관들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자하겠다고 돈을 싸들고 오던 시절이 있었다. IT기업들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였고, 1999년 말 세기의 밀레니엄이 바뀌는 시점에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는 마치 롤러코스터가 꼭대기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듯이 끝없는 나락이 시작되었다. 2000년 2분기가 되자 투자시장은 빙하기 얼음보다 더 차갑게 얼어버렸고, 이런 시기에 창업을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버블이 꺼지고 닷컴이 몰락하던 바로 그때
 고사무열 사장과 4명의 추종자들은 무모하게도 한국에 CDN 시장을 열겠다며
씨디네트웍스를 설립했다.


7억이라는 종잣돈을 운 좋게 마련했지만, CDN 사업은 인프라 사업이기 때문에 회사가 자생능력을 갖출 때까지는 계속해서 투자자금이 필요했다. 고사무열 사장의 인맥과 절박함, 그리고 직원 모두의 노력의 결실로 메이저 통신 3사로부터 13억의 투자자금을 유치하여 첫 번째 큰 산을 넘었지만, 아직 우리는 고객은커녕 서비스를 론칭할 기술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2~3년간 편안히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을 쌓아놨지만 그러려고 회사를 만든 건 아니었다. 그동안 통신 3사의 투자 유치에 올인했지만 이제부터는 기술과 고객 확보에 주력해야 할 때였다.


그 무렵 비록 전 세계적으로 투자시장이 얼어붙었지만, 잠시 몸을 움츠렸던 벤처캐피털들도 다시 투자처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IT 최신 트렌드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건너오는데 약 1년 정도의 시차가 있었는데, '99년에 미국에서 IT 신기술 중 하나로 부상했던 CDN에 대한 관심이 한국의 투자시장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삼성벤처투자가 국내 CDN 업계에 40억을 투자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소문은 사실이었고 얼마 후 삼성벤처투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40억을 분산 투자하지 않고 가장 우수한 CDN 기업 1개사를 선정하여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40억이라는 엄청난 금액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도 국내 CDN 사업자 3개사 중에서 누구도 상용서비스를 개시하지 못하고 아직 시장에 리더가 없는 상황에서 삼성벤처투자가 1위 기업을 선정해서 40억을 투자한다는 소문이 시장에 퍼졌으니 CDN 3사 모두 사활을 걸고 매달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투자를 받는 기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이자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기술과 고객 확보에 주력하고자 했던 것을 잠시 보류하고 20명이 채 안 되는 전 직원이 다시 투자 유치에 올인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부터 연일 삼성벤처투자의 동태 파악과 각종 시장예측, 기술비교, 사업계획 자료 등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더욱이 기술 확보도 안된 상태에서 타사 대비 우리 기술의 우수성을 내세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3사 모두 수많은 자료를 제출하고 실사를 받을 때, 이미 호스팅 사업으로 업력이 있었던 웹데이터뱅크는 검증된 운영기술과 IDC에 위치한 NOC(Network Operation Center)와 호스팅 상면을 자랑했고, 필라민트네트웍스는 고객이 없어 아직 운영되지도 않는 NOC의 인테리어에 무려 1억을 들여서 그럴듯하게 꾸며놓았다는 얘기들이 전해졌다. 우리는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통신 3사의 동시 출자를 통해 망 중립성을 확보했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기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3사에 대한 실사가 모두 끝났지만 삼성벤처투자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우리에게 망 중립성 아이디어에 호감을 가졌던 한 투자심사관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웹데이터뱅크는 이미 호스팅 서비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력이 가장 앞서 있는 것 같고, 필라민트네트웍스는 주로 삼성SDS와 삼성종합연구소 출신들이어서 삼성벤처투자와 같은 계열사 출신이라는 점과 인력들의 스펙, 즉 학력과 경력이 좋기 때문에 마케팅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고, 씨디네트웍스는 통신 3사로부터 투자를 받아서 네트웍을 저렴하게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각각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3사 모두 아직 유료고객이 없기 때문에 고객의 평가를 통한 시장 전망이 어렵다


는 이유로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다가 그들이 투자를 포기하면 한국에서 CDN은 꽃이 피기도 전에 시장에서 비웃음과 함께 사라질 수도 있었다.


우리는 고심 끝에 IT 경험이 없는 삼성벤처투자가 기술력을 평가하지는 못할 테고 직원들의 학력과 경력으로 투자 결정을 하지는 않을 테니 고객을 가장 먼저 확보하는 사업자에게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때 영업을 맡고 있던 내가 낸 아이디어가 ‘CDN 서비스 예약신청서’였다.


그동안 만나왔던 잠재고객들로 하여금 ‘CDN 서비스가 꼭 필요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씨디네트웍스가 상용서비스를 출시하면 당장 쓰겠다.’는 예약신청을 서면으로 받아서 제출하자는 것이었다. 계약서가 아니므로 법적인 구속력이 없으니 고객을 잘 설득하면 그 정도는 받아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영업팀장이었던 나는 이제 막 채용한 신입사원과 함께 성인방송국을 포함한 인터넷방송국과 작은 쇼핑몰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계약서가 아니니 법적 구속력은 없는데, 이 신청서 한 장이 저희를 살려줄 수 있습니다."라며 호소했다.

다행히 우리보다 조금 더 앞선 스타트업으로서 동병상련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잠재고객들이 호응을 해주어서 15개사로부터 예약신청서를 받아낼 수 있었다.


나는 삼성벤처투자의 투자심사관들에게 “인터넷의 병목현상 때문에 힘들어하는 잠재고객들이 한국에서도 CDN 서비스가 나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으며, 특히 우리 회사의 기술력을 인정하여 가장 먼저 서비스를 도입하고자 예약신청을 했다.”라며 어렵게 모은 예약신청서 15장을 자랑스럽게 제출했다.


예약신청서가 효과를 발휘한 건지, 그렇게 전 직원이 합심하여 노력한 결과 2001년 2월 드디어 씨디네트웍스가 투자 대상 기업으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고, 모든 직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동안의 노고를 서로 치하해 주었다.


삼성벤처투자로부터의 40억 유치는 당시 우리 회사의 규모를 고려할 때 큰 금액이라는 점에서 의미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막 태동하는 CDN 시장에서 삼성이 신중한 검토 끝에 씨디네트웍스를 1위로 선정했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었다.

이로써 우리는 비록 유료고객은 없었지만 이후 영업현장에서 “업계 1위”라는 수식어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닐 수 있었고, 경쟁사 대비 높은 가격 전략을 취할 수 있었다.


-- 6편에서 계속


벤처 창업에서 글로벌 기업까지 - Intro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2편 - 창립 멤버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4편 - 처음 맞은 치명적인 위기

5편 - CDN 업계 1위 등극

6편 - 창업 후 첫번째 계약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9편 - 총성 없는 가격 전쟁

10편 - Next Market은 어디인가?   

외전1 - 첫 해외출장 에피소드

11편 - CDN 3사 통일 & 後3社 시대 개막

12편 - 현해탄을 건너온 승전보, 글로벌사업의 시작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5편 - 꿈은 이루어진다, 코스닥 상장

16편 - Softbank와 제휴, 일본 대기업 공략

외전2 - 오오미야 사택 에피소드

17편 - 글로벌 도약을 위한 프로세스 재정의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

21편 - 처음이자 마지막 Layoff

에필로그 - 내가 이 글을 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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