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후 첫번째 계약
회사를 설립한지 반년 만에 파란만장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전편까지 소개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 말고도 하루하루 롤러코스터를 타듯 가슴을 졸였다가 쓸어내리게 만드는 일들이 넘쳐났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직원들은 늘어갔고 기술도 점차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다. 투자 받은 자금도 넉넉했기 때문에 직원들 월급 밀릴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나와 모든 직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회사가 설립된 지 열 달이 다 되도록 유료고객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CDN이라는 사업을 머나먼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이라는 소문만 듣고 창업을 한 터라 참조할만한 것도 물어볼 곳도 없는 상태에서 서비스의 개념 정의부터 상품체계, 과금방식 설계는 물론이고 홈페이지와 통계사이트 기획, 제안서, 견적서, 계약서 등 영업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혼자 만들고, 투자 유치를 위한 자료들을 만드느라 바빴기에 정작 영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팀장으로써 유료서비스로 돈을 받는 고객을 유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매우 심했다.
본격적으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나는 영업팀의 유일한 팀원이었던 이상훈과 함께 업종별 타겟리스트를 만들고, 갖은 수를 써서 담당부서의 연락처를 수집해 이메일DM을 보내는 한편 일일이 전화를 걸어 CDN에 대해 설명하곤 했다.
하지만 누구도 CDN이 뭔지 몰랐을 뿐 아니라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DM은 스팸이 되었고, 전화로 설명을 들어줄 만큼 인내심이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인지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전화를 돌리고 DM을 보내도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 CDN의 개념과 ‘씨디네트웍스’라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 광고도 하고 PR도 시작했다. 아직 인터넷뉴스가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전자신문, 디지털신문 등 IT일간지가 꾸준히 팔리던 시절이었는데, 다행히 두 신문사의 기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덕분에 CDN과 그 업체들에 관한 기사가 조금씩 실리곤 했고, 덕분에 타겟고객에게 전화를 하면 “CDN? 들어본 것 같다. 한번 설명 좀 들어보자.”며 방문을 허락하는 고객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2000년 후반부터 시범서비스를 제공해왔던 성인방송국이 트래픽도 많고 당시 인터넷기업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돈을 버는 업종이었지만, 경쟁사들도 우리처럼 공짜로 시범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달려들었고, 동영상에 있어서는 그들이 우리보다 운영기술이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에 유료계약을 따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경찰청의 교통감시카메라에 잡히는 주요 간선도로의 교통상황을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해주는 사업을 준비하던 보보텍이라는 인터넷방송국이 우리 서비스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 회사는 도대체 무엇으로 수익을 얻으려는 것일까 의아했지만, 어쨌든 관심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서비스를 소개했더니 팀장이나 본부장은 시큰둥한데 담당자인 홍OO씨는 자기가 찾던 바로 그 서비스라며 너무 좋아했다. 그 후로 시범서비스를 적용하고 방문하는 횟수가 잦아지더니, 어느 날
“이제 테스트는 충분히 했으니 계약을 해도 될 것 같다.”
라며 자기가 곧 내부품의를 올려서 승인을 받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난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믿기지가 않았다. 드디어 첫 계약을 수주하는 순간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홍OO씨와 뜨거운 악수를 나누고 강변 테크노마트 10층의 보보텍 사무실을 나와 벅찬 가슴으로 1층으로 내려왔다. 바깥 공기를 마시며 심호흡을 하고는 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목이 맨 채 떨리는 소리로
“사장님, 드디어 유료계약을 따냇습니다.”
라고 말했다. “뭐라고?” 사장님도 믿기지 않는지 이렇게 물으셨고, 나는 “보보텍이 우리랑 유료계약을 하겠답니다.”라고 말했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사장님과 전 직원이 “우와~~~” 하면서 함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고, 나도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에 함께 동행했던 기술팀 신민식 차장과 포옹을 했다.
하지만, 보보텍 홍성우씨의 약속은 금방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에 보보텍의 투자 유치가 실패하면서 직원들마저 해고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대신 아직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나처럼 책을 좋아하고 인터넷 비즈니스의 활성화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예스24(Yes24)로부터 좋은 소식을 얻게 되었다.
쇼핑몰은 이미지파일이 많아서 대표적인 타겟마켓으로 꼽고 있었으나, 당시 우리의 규모나 기술력으로 볼 때 규모가 큰 쇼핑몰은 무리였기 때문에 작은 규모의 특화된 쇼핑몰을 겨냥해서 열심히 DM을 보내고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처음으로 예스24의 서비스운영팀장으로부터 방문해도 좋다는 답변을 얻은 것이다.
예스24도 당시에는 아직 규모가 크지 않아서 사무실은 지하 창고 옆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었다. 미팅에는 기획이사인 최OO 이사도 자리를 함께 했다. 아직 인지도가 없어서 트래픽이 많지는 않았지만 웹페이지 로딩속도 개선에 대한 니즈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예스24가 ‘98년에 ‘WebFox’라는 이름으로 처음 사이트를 열었고 그 후 ‘Yes24’로 이름을 바꾼 것을 알고 있었는데, 작은 기업들이 다 그렇듯이 아무도 몰라줄 때 처음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며 이용해 왔다는 애용자를 만나면 반가워하는 심리를 알기에,
“Yes24가 WebFox였던 시절부터 사이트를 자주 이용해 왔습니다.”
라고 운을 띄웠다. 그런데 마침 최OO 이사는 본인이 그 당시부터 몸담고 있던 창업멤버였다면서 창업 당시 사이트 이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존재를 알아주다니 고맙다며 너무 좋아하는 것이다. 나도 상대방이 고마워하고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미팅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미팅을 주선했던 서비스운영팀장으로부터 최OO 이사의 승인이 떨어졌다면서 내일 계약서 들고 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2001년 3월 13일, 약정트래픽 30Mbps, 1년간 약정금액 월 120만원.
Yes24와의 첫번째 계약은 그렇게 체결되었다.
-- 7편에서 계속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6편 - 창업 후 첫번째 계약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