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성장을 위한 발판
2001년 2월, 고사무열 사장이 영입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김형석 이사(現 카테노이드 창업자)가 우리 회사에 합류하기로 했다. 고사장은 그가 데이콤 경영계획본부에 근무하던 때에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그의 능력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 후 모바일 벤처기업 ‘넷플’에서 영업본부장을 맡고 있던 그를 스카우트했던 것이다. 드디어 나에게 보스가 생겼다.
그러나 3월 초에 첫 출근을 한 김형석 이사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으니 몸만 오면 된다던 사장님의 달콤한 유혹과 달리 아직 유료고객은커녕 기술적인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결정은 본인이 했으니 후회해봐야 소용없었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나는 이미 업종별 타겟리스트를 만들어서 이메일 DM을 보내고 전화도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성과는 초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번째 타겟이었던 성인방송국은 공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업체들이 줄 서있었고 그다음 타겟인 중소규모 쇼핑몰은 방문자가 적어서 트래픽도 적고 돈벌이도 시원찮은 상황이었다. 새로운 타겟시장이 필요했다.
2001년 3월 어느 날 아침, 출근해서 조간신문 기사를 뒤지던 나는 눈에 확 띄는 기사를 발견한다. 『온라인게임 5社 공동서버 운영』
자리에 돌아와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당시 잘 나가는 온라인게임 5개사가 게임파일 다운로드를 위해 공동으로 다운로드센터를 만들기로 하고 KT와 PSINet에 노드를 구축했다는 것이었다.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온라인게임은 그래픽 없이 텍스트만 있는 머드게임(MUD game)이 주였기 때문에 트래픽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고, '96년 4월에 넥슨이 우리나라 최초의 2D 그래픽 기반의 MMORPG 게임 ‘바람의 나라’를 출시했지만 아직 초고속인터넷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PC방에서만 그래픽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통신업계 3위였던 하나로통신이 ADSL(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종류)을 경쟁사인 KT를 겨냥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월 3만원으로 가격을 내리면서 통신사 간의 ADSL 유치 경쟁이 벌어져 초고속인터넷이 급속히 확산되었고, 인터넷 환경이 좋아지면서 온라인 게임회사들이 2D 그래픽 게임을 대거 출시하기 시작했다.
그래픽 게임은 설치파일 용량이 커서 CD에 저장해서 길거리 등에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배포하는 알바생 비용을 포함하여 CD 한 장을 배포하는 원가가 1천원이었다. 무료로 배포되는 CD를 받은 10명 중 한명꼴로 실제로 게임을 했으니, 한 명의 게임 유저에게 설치파일을 배포하는 비용이 1만원인 셈이었다. 당연히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됨에 따라 온라인 다운로드가 대안으로 떠올랐고, 아직 수입원이 부족했던 게임회사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동으로 다운로드 서버를 운영하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당장 기술팀으로 뛰어가 우리가 게임파일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는지 물어보았고, 민연기 이사는
“FTP로 전송하면 되고 인프라만 충분하다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없다.”
라고 말했다.
드디어 새로운 시장을 찾은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이제 막 입사한 김형석 이사에게 보고했고, 우리는 이 시장을 잡으면 월 매출 1억도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에 들뜨게 되었다.
그때 기술팀 이윤근 차장이 온라인게임 5사 (가칭 ‘온라인게임개발사협의회’) 중 하나인 게임팝의 조현태 사장이 자신의 1년 후배라고 말했다. 나는 이윤근 차장과 함께 바로 그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에게서 협의회의 공동운영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5개사는 각 사의 담당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만장일치로 의사결정을 하는데, 만장일치제도는 형식적인 것이고 사실상 회장사인 넥슨의 A실장이 안건과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나머지 회사들은 보통 그의 의견을 따른다는 것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넥슨 A실장에게 어떻게 접촉할 수 있을까를 논의하고 있었는데, 관리팀 조OO 차장이 다가와서 넥슨 자회사인 엠플레이의 임원 B가 자신과 친한 친구이고, B와 A실장이 동갑내기 친구라며, 원한다면 B 임원과의 미팅을 주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장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B 임원과의 면담에서 그는 엠플레이가 KT와 PSINet에 각각 1Gbps 전용회선을 각 2천5백만원, 총 5천만원에 1년간 계약을 했는데, 사실 자신은 결정권한이 없고 A실장이 결정하면 자신은 실행과 운영만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엠플레이의 회선 계약은 당시 우리가 IDC로부터 공급받던 회선의 평균단가보다 약간 비쌌지만 계약기간이 1년밖에 안되니 투자하는 셈 치고 이 회선을 우리가 떠안기로 했다. 즉, 5개사가 우리와 CDN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는 동시에 우리가 엠플레이와 회선 재임차 계약을 해서 KT와 PSINet의 회선과 상면을 우리가 사용하면 5개사가 우리를 선택하는 데 따르는 부담을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이렇게 제안 방향을 정하고 드디어 A실장을 만났다.
듣던 대로 A실장은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5개사 공동운영에 관한 실질적인 의사결정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업체 선정에 관한 건은 자신이 결정할 수 없고 5개사 담당자의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며 발을 뺐다. 결국 5개사 담당자들과 각개격파를 할 수밖에 없었다.
5개사 담당자들과 한 명씩 미팅을 한 결과, IDC에서의 고정비용과 서버 운영에 대한 부담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CDN 서비스는 IDC와 달리 종량제로 쓴 만큼만 청구하고 운영에 대한 부담이 줄며 이미 계약한 회선도 인수해 주겠다는 제안에 호의적인 관심을 보였다. 다만, 5개사가 만장일치로 결정을 하므로 5명이 모두 동의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동의하면 자기도 동의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두번째로 일대일 미팅을 할 때 나는 “내가 다른 분들을 만나보니 모두 제안에 관심을 보이더라. 타사 담당자들이 동의한다면 당신도 동의하겠는가?”라고 각 담당자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4명 모두
“다른 사람들이 동의한다면 나도 동의하겠다.”
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넥슨 A실장을 만나 "넥슨만 동의한다면 다들 우리 제안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으나, 그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그 자리에서 나머지 4명에게 전화를 걸어서 정말 동의한다고 했는지 물어봤고, 다행히도 그들은 모두 그렇다고 답변해 주었다.
A실장은 처음엔 망설였지만 다음달에 열린 5개사 미팅에서 나머지 4명이 모두 씨디네트웍스의 제안이 괜찮은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되었고, 본인도 우리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우리와 CDN 계약을 하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다만, 단가만큼은 네고를 더 하자고 의견이 모아진 모양이었다.
2001년 3월부터 시작한 온라인게임 5개사를 수주하기 위한 노력은 5개월 동안 수많은 미팅과 전략회의 끝에 8월 중순에 5개사를 대표하여 엠플레이와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비록 네고를 통해 단가는 많이 낮아졌지만 약정 3.5 Gbps, 1년간 월 약정금액 4천5백만원으로 창사 이래 가장 큰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다음달인 2001년 9월부터 그토록 꿈에 그리던 월 매출 1억을 달성하게 되었다.
이 뿐 아니라 당시 온라인게임 업계는 이 5개사가 기술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온라인게임 업계에서 가장 먼저 CDN을 도입함에 따라 다른 업체들도 대부분 이를 따라 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단기간에 대부분의 온라인게임 업체들을 유치함으로써 온라인게임 시장을 석권하며 기록적인 매출 성장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엄청난 트래픽을 확보하여 ‘규모의 경제 효과’에 의한 원가 경쟁력을 통한 도약의 디딤돌을 만들게 되었다.
-- 8편에서 계속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