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우리는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동영상이야말로 CDN 서비스가 가장 필요한 콘텐츠라고 여겨 왔다.
그 이유는 동영상은 많은 트래픽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품질에 가장 민감한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90년대가 지나고 21세기가 되었음에도 인터넷 사용자들이 느끼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의 품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작은 화면에 기껏해야 Bit Rate 300 kbps 정도의 저화질, 그리고 볼 만하면 끊어지고 버퍼링을 반복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성인콘텐츠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시장이 확대되지 않았다.
창업 초기에 계획했던 잉크토미 캐시솔루션을 이용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우리는 Windows Server 2000 기반의 WMT(Windows Media Technology) 기술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었다. 그러나 WMT 기술은 이미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던 기술이어서 ‘Multi-Node 기반의 서비스’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성인방송국이나 인터넷방송국 같은 콘텐츠 제공사업자(Content Provider)가 직접 구축해서 운영하는 것과 차별성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기술팀은 차별화된 솔루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미디어 솔루션을 운영해본 경험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인터넷 방송시스템 구축 SI기업 출신의 이OO 과장을 채용하게 되었다. 그가 다니던 회사는 미국의 Burst.com (www.burst.com)이라는 벤처기업이 개발한 미디어 솔루션(Burstware)의 총판을 하면서 시스템 구축과 컨설팅을 해주던 기업이었다.
당시 사용자들이 동영상을 재생할 때 가장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 재생버튼을 누른 후 일정 시간 동안 버퍼링 하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는데, 이 회사는 재생버튼을 누르자마자 재생이 시작되는 Fast Start와 Fast Streaming 기술에 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분명 차별화된 미디어 솔루션이었던 것이다. (Fast Start, Fast Streaming이라는 표현은 MS가 윈도미디어 9 시리즈를 출시할 때 사용하면서 일반화된 용어이고, 이에 대한 특허를 보유한 Burst.com은 이를 각각 Bursting, Rapid-Casting이라고 불렀다. www.burst.com)
그러나 이 솔루션을 개발한 벤처기업은 우리가 테스트를 진행하는 와중에 사실상 회사가 없어지고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소스만이라도 우리에게 팔 수 없겠느냐며 CEO에게 연락을 했으나, 얼마 후부터는 아예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후에 CEO와 CTO가 특허 덕분에 윈도미디어 9 시리즈를 출시한 MS로부터 엄청난 로열티를 챙겼다는 소문이 들렸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솔루션들을 검토하기 시작했지만 만족스러운 솔루션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2001년 9월 이윤근 팀장은 우연히 신문에서 한국의 벤처기업이 MPEG-4 규격의 고화질 동영상 솔루션을 개발했다는 기사를 발견한다. 인터넷 방송국 출신의 정OO 대리가 전화로 문의한 결과, Fast Start와 Fast Streaming 등 우리가 찾던 차별화된 기능들을 제공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윤근 팀장은 마케팅팀의 이형구 팀장과 함께 씨비디오(Seevideo)라는 동영상 솔루션을 갖고 이제 막 설립된 디디오넷(www.dideonet.com)을 찾아갔다. 면담 결과 이 솔루션은 일반적인 콘텐츠 사업자(Content Provider)를 위해 개발되었기 때문에 CDN 서비스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미러링, 로그 생성, 모니터링 시스템 등을 추가적으로 개발해야 했지만 우리가 찾던 기능들을 대부분 갖고 있었다. 디디오넷 연구소장 강성일 이사는 씨디네트웍스의 개발팀에서 협조를 해준다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능들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CDN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개발을 5개월에 걸쳐 완료하고, 2002년 2월
‘네피션트 익스프레스(Nefficient Express)’라는 이름으로 국내 최초로 1Mbps DVD급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를 출시
하였다. 그 동안 하드웨어 또는 소프트웨어 형태의 고화질 동영상 관련 제품들은 나왔지만, 서비스 형태로는 아마도 세계 최초가 아니었을까 한다.
‘네피션트 익스프레스’가 출시되기 전 수능입시교육 1위 기업인 메가스터디에 VOD 동영상 서비스를 제안했었는데, 우리뿐 아니라 필라민트, 웹데이터뱅크와 함께 3사가 경합을 펼치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영업정책 상 높은 가격으로 제안을 한데 반해 경쟁사들은 백지견적서를 제출하며 무조건 씨디네트웍스의 절반 가격에 제공하겠다며 공세를 취해왔다. 그런데 그때 메가스터디 개발팀장이
“씨디네트웍스가 업계 1위라지만, 서비스의 차별성을 느낄 수가 없는데
왜 가격만 높은 거냐?”
라며 우리 영업대표를 질책했다. 특별할인 및 갖은 노력을 한 끝에 어쨋든 경쟁사를 물리치고 계약을 수주했지만, "차별성이 없다"는 고객의 비난은 분명 맞는 말이었고 소위 CDN 업계 1위 업체로써 창피한 일이었다.
하지만 ‘네피션트 익스프레스’가 출시된 후로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 영업대표가 자신 있게 메가스터디에 고화질 서비스로 추가제안을 했고, 불과 2달 만에 고객으로부터 경쟁사와의 차별성을 인정받으며 첫번째 계약보다 50% 높은 가격에 추가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메가스터디는 ‘쌩쌩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를 자사 사이트에 추가하였는데, 수강생들로부터 저화질 동영상에서는 보이지 않던 칠판 글씨가 잘 보인다며 호평을 받게 되었다.
이러닝(eLearning) 업계 1위인 메가스터디가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를 선보이자 이러닝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네피션트 익스프레스’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밀려드는 서비스 요청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그 무렵 우리에게 ‘씨비디오’ 솔루션을 제공한 디디오넷은 이런 상황을 보며 씁쓸해했다. 자신들이 이러닝, 온라인영화 등 동영상CP에게 팔려고 만든 솔루션을 씨디네트웍스가 얼마 안 되는 라이선스 비용만 지불하고는, 자신들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디디오넷 강OO 사장은 우리 회사를 방문해서
“씨디네트웍스가 디디오넷 덕분에 큰 수익을 보았으니,
네피션트 익스프레스 계약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나누어 달라”
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는 고민 끝에 강사장의 요구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이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적은 금액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규모가 커질 것이고 디디오넷에 한번 휘둘리게 되면 나중에는 감당하기 힘들게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자 강사장은 씨디네트웍스에 더 이상 씨비디오 라이선스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하며, 라이선스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을 하였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고객들을 직접 찾아가서 씨디네트웍스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더 싼값에 제공하겠다고 제안하고 다녔다.
이에 고사무열 사장은 개발팀 이윤근 팀장에게 "미디어 TFT를 만들어서 디디오넷의 대안을 찾아라"고 지시했고, 이윤근 팀장은 장삼룡 과장과 함께 작은 방에 틀어박혀 Microsoft의 Corona(Windows Media 9 Series의 프로젝트 코드명), Real Networks의 Helix, Apple의 QuickTime 등 유명 벤더들이 차세대 동영상 플랫폼으로 개발중인 솔루션들을 분석하고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Microsoft Korea가 검찰과 함께 온라인기업을 대상으로 라이선스 불법 사용 여부를 조사하고 시작했는데, 우리는 이미 동영상 플랫폼을 Windows Server 기반으로 결정했었지만 리눅스서버를 사용하는 ‘네피션트 익스프레스’를 출시하면서 Windows Server의 정식 라이선스를 구매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성인방송국에 제공한 시범서비스를 위해 설치했던 Windows Server가 너무 많았고, MS Korea는 이 사실을 알고 우리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MS는 우리를 협박함과 동시에 당근을 제시했다.
당시 MS는 고화질 동영상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DivX 기반 솔루션의 확산을 막기 위해 Windows Server 2003 기반의 차세대 동영상 플랫폼인 Corona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온라인영화, 이러닝 등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발했던 한국에서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해줄 업체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MS와 파트너쉽을 맺고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 베타버전을 적용하여 우리 고객들에게 테스트서비스를 제공해 주면 서버 라이선스 비용을 대폭 깍아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우리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MS로부터 과징금을 받을 경우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MS와 Gold Partnership 계약을 체결하면서 미디어TFT를 해체하고 WMT 9 Series 베타버전 SDK를 받아서 CDN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상품의 이름을 ‘네피션트 익스트림(Nefficient eXtream)’으로 정하고 2002년 11월 1일 MS Korea의 후원을 받아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네피션트 익스트림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세미나를 통해 고객들에게 우리의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의 주력 상품을 ‘네피션트 익스프레스’에서 윈도미디어 9 시리즈 기반의 ‘네피션트 익스트림’으로 바꾸기로 했음을 알렸다.
세미나까지 개최했음에도 불구하고 솔루션 출시 후 1년이 지난 Seevideo에 비해 WMT9은 아직 베타버전이었기 때문에 안정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디디오넷은 계약 연장을 거부하며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고, 막대한 라이선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WMT9을 쓸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MS가 빨리 솔루션을 안정화해주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영업팀은 불과 얼마 전에 DivX 코덱의 우수함을 선전하며 ‘네피션트 익스프레스’를 제안했던 고객들에게 WMT9이 더 우수하다며 ‘네피션트 익스트림’으로 서비스를 바꾸도록 고객을 설득해야만 했는데, 서비스를 바꾸려면 Seevideo를 쓰기 위해 DigiBeta (Digital Betacam Format) 포맷으로 인코딩했던 콘텐츠를 모두 WMS 포맷으로 재인코딩해야 했기 때문에
고객들은 난색을 표하며 서비스 전환을 거부했다.
어떻게든 넘어야 할 산이었기에 우리는 2가지 조치를 취했다.
첫번째는 영업팀장과 영업대표들의 MBO에 ‘Seevideo 서비스 전환’ 항목을 추가하여 고객 전환을 목표로 정하였다.
두번째는 고객의 콘텐츠를 우리가 재인코딩 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당시 1시간짜리 영화 파일을 재인코딩 하는데 20시간 가량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무모하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미디어서비스 운영팀 모두가 인코딩에 매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영상 서비스의 최대 고객이었던 메가스터디는 서비스 전환을 거부했다.
우리는 메가스터디의 고객인 수강생들이 WMT9을 선택하게끔 해서 메가스터디를 움직이는 전략을 취하기로 했다. 그래서 온라인영화관 씨네웰컴으로부터 최신 영화의 판권을 구입해 WMT9으로 인코딩을 하고 메가스터디의 수강생들에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제공하는 한편, 강의 동영상 몇 개를 WMT9으로 인코딩해서 Seevideo 콘텐츠와 비교할 수 있는 체험 사이트를 만들어 제공했다.
그리고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다행히도 많은 수강생들이
‘칠판글씨가 더 잘 보여요!’, ‘이제 PC가 다운되지 않네요!’
등의 답변을 했고, 좋은 반응에 고무된 메가스터디도 서비스 전환에 동의하였고 WMT9 기반 인터넷강의를 '쌩쌩플러스'라고 명명하고 기존 '쌩쌩서비스'와 차별화하였다.
힘들었지만 모두가 노력한 결과로 2003년 말까지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10여개의 고화질 동영상 고객을 상반기 내에 모두 완료하였다. 덕분에 이러닝 담당 영업사원이었던 이상훈 대리는 MBO를 180% 달성하고 과장으로 승진했지만, 너무 힘들었던지 나에게 온라인게임을 담당하게 해 달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다행히 2003년 3월 Windows Media 9 Series 정식버전이 출시 후부터 서비스가 많이 안정화되었고, ‘네피션트 익스트림’은 오랜 동안 우리의 주력 상품이 되었다.
비록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힘든 과정을 거쳐왔지만, 우리는 경쟁사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만족할 만한 솔루션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이러닝 고화질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다운로드 시장 선점을 통해 대규모 트래픽을 확보한 데 이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Cash Cow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경쟁사보다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디어 서비스에서의 리더쉽을 유지하며 시장을 리드해 나가게 되었다.
PS) 이 글의 소제목을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으로 붙인 이유는, CDN을 활용하여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을 HD급 고화질 서비스로 가능하게 한 것은 확실히 우리가 국내 최초인데, 다른 나라에서 DivX 기반으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 사례를 이전에 본 적이 없었고, MS도 새로운 WMT9 시리즈 시범서비스를 인터넷환경이 발달했고 온라인게임이 활성화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우리와 함께 진행했기 때문에 WMT9 기반 고화질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우리가 세계 최초로 성공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우리가 세계 최초라는 인증을 받은 건 아니었기에 "어쩌면"이라는 단서를 붙인 것이다.
이젠 인터넷으로 넷플릭스 영화를 보는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지만,
20년전에 그걸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것이 바로 우리다.
-- 9편에서 계속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