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결단, Global PI Project
2008년 11월 ‘Global One Organization’라는 이름으로 4개의 지역별 법인 조직을 하나의 Functional 조직으로 개편한 대규모 조직개편 이후 나는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해서는 통합 프로세스와 글로벌 관리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IT Project Team’을 만들기로 했다.
사장님과 김형석 부사장님, 임용기 상무님 등 당시 주요 경영진에게 IT Project Team의 설립 목적을 설명하고 설립을 승인받았으나, 이 팀이 구체적으로 뭘 할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예산과 자원을 쓰게 될 것인지 당시에는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몰랐었다.
단지 ‘글로벌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통합 프로세스 및 선진 관리시스템 도입’이라는 미션만 정했을 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이제부터 정해나가야 했다.
팀은 만들었지만 이번에도 팀원은 나 혼자였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어떤 경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을 데려와야 할지도 몰랐다. 할 일을 정해 나가면서 내부 채용을 하던지 외부채용을 하리라 생각했고, 우선은 큰 예산이 필요할 것 같아서 예산 확보가 쉬운 CFO 직속으로 만들었다.
뭘 해야 할지 머릿속에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국/일본/중국/미국 등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진 4개 법인의 Function이 유기적으로 프로세스를 공유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프로세스 혁신(BPR, 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과 함께 대기업들이 사용하는 전사적 자원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을 도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BPR과 ERP는 전혀 새로운 분야이고, 당시 회사의 누구도 우리 회사가 이런 것들을 도입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의 전 직장이었던 데이콤에서 함께 일했었고 현재는 IBM에서 SAP 컨설턴트로 일하는 선배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나는 선배에게 ‘Global One Organization’ 프로젝트와 조직 개편의 취지, 우리 비즈니스의 특성 및 내가 생각하는 프로세스와 지원시스템에 대한 비전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선배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BPR과 ERP가 필요한 것은 맞다고 동의했으나, 대기업도 하기 힘든 2개의 큰 프로젝트를 작은 조직에서 단기간에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특히 한국법인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4개 법인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한꺼번에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각 법인별로 최소한 1년씩 4년 정도를 계획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조언에도 불구하고 BPR과 ERP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기에 나는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고, 이런 나를 위해 선배는 데이콤 출신으로 우리 회사와 같은 중소규모 기업을 담당하는 IBM의 동료를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아직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나를 위해 선배는 셋이서 작은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우리 회사의 현황과 비전에 맞추어 Process 및 System의 아키텍처를 그려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며칠간 두 분은 나를 위해 오후 늦은 시간부터 밤 시간을 할애해 주었고,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무엇이 부족하고 어떤 것들을 도입하고 개선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하나로 통합된 조직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변화관리 시간이 너무 늘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법인별로 순차적으로 진행하기보다는 힘들지만 4개 법인을 동시에 진행하는 Big Bang 방식으로 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무렵 영업팀장인 윤주현 차장으로부터 우리 회사의 고객인 웅진씽크빅의 웅진그룹 IT를 총괄하는 이재진 상무를 소개받았다. 웅진그룹은 출판, 정수기 등 제조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력기업인 웅진코웨이의 정수기 렌탈 사업은 서비스업으로서 매월 요금을 청구하는 당사의 사업모델과 유사한 면이 있었다. 이재진 상무는 웅진그룹의 경영관리시스템 및 운영 현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고, 이는 개념을 통해 이해했던 IBM 선배들과의 워크숍과는 다르게 눈으로 보고 들으면서 그동안 내 머릿속에서 어렴풋하게 이해했던 것들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정했고, 어떻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하고 나면 경영진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고, 예산 규모에 따라서 이사회의 승인도 필요할 것이다. 대략적인 방법론과 프로젝트의 규모 및 예산을 산출하기 위해 업체들로부터 가제안을 받기로 했다. IBM, 웅진홀딩스 외에 중소규모 SAP 프로젝트 전문기업으로 알려진 BNE, BSG와도 미팅을 하고 가제안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업체들의 가제안을 취합해본 결과 프로젝트 기간은 1년 6개월~2년, 예산은 30억~40억 가량이 필요한 것으로 수렴되었다. 회사 규모에 비해 만만치 않은 기간과 금액이었다. 경영진을 설득하는 것도 이사회의 동의를 받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글로벌 조직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NASDAQ에도 상장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운영뿐 아니라 투명한 재무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추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인 경영진 설득에 앞서 ERP 도입이라는 방향성에 동감해 주셨던 김형석 부사장님께 운을 띄어 보았다. 취지를 설명하고 프로젝트 예산으로 얼마 정도면 동의하실 수 있을지 여쭈었더니, “5천만원, 최대 1억 정도”라고 하셨다. 회사 창립 이래 서버 투자 외에 우리 회사에서 1억 이상 투자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내가 “최소 30억은 있어야 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부사장님은 깜짝 놀라시면서 그 정도 금액은 사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도 승인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처음부터 무리하게 시작하지 말고 전략적으로 설득을 해나가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당시 CFO이면서 내 직속상관이었던 임용기 상무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2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첫번째는 회사의 모든 조직장들이 직접 혁신과제를 도출하는 것이다.
전사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모든 조직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하는데, 준비단계부터 자신들이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도출하면서 참여하면 실제 프로젝트 단계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고, 또한 나의 독단적인 의견이 아니라 한국 본사의 모든 조직장들이 프로세스 개선과 선진 시스템 도입을 절실히 원한다고 하면 경영진 및 이사회를 설득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처음부터 30억 승인을 요청하는 대신 단계별로 예산을 승인받는 것이다.
30억은 어렵지만 연단위로 절반씩 나누어서 승인을 받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다.
첫번째 아이디어에 따라 한국 본사의 전 팀장들로 구성된 ‘IT 혁신 프로젝트 TFT’를 출범시켰다. 마케팅 등 일부 부서를 제외하고 Sales, Operation, Backend, Billing, Finance, HR 등 한국 본사의 거의 모든 부서의 팀장 14명을 TFT 멤버로 참여시키고, ‘Working Time의 20%를 무조건 TFT에 할당’하고 ‘對고객 이슈 외에는 CEO의 호출보다도 우선한다’는 등의 Ground Rule도 만들었다.
비록 시작은 다소 강압적(?)인 면이 없지 않았지만, 모두들 취지에 동의했고 무엇보다도 본인들이 평소에 불편한 점이 많았기에 문제점을 도출하고 혁신과제와 솔루션을 도출하는 것은 순조로웠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총 94개의 개선 항목을 도출했고, 나는 이를 토대로 경영진을 설득하기 위한 ‘IT 혁신 프로젝트 추진 방안’ 보고서를 작성했다.
두번째 아이디어인 단계별 예산 승인 요청이 보고서에 담았다. 우선은 30억 대신 19억을 요청했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사장님이 쉽게 승인을 해주셨고, 얼마 후 열린 이사회도 금액이 너무 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경영진을 믿고 동의해 주었다. 이로써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와 그것을 할 수 있는 예산’까지 마련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할 차례다. 그래서 팀원도 채용하고, 가제안에 참여했던 업체들로부터 2회에 걸친 정식 제안 및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TFT 멤버들의 평가에 의해 웅진홀딩스를 수행 사업자로 선정하였다.
수행업체를 선정한 후에 ‘IT 혁신 프로젝트 TFT’는 해산하고, 그 대신 프로젝트에 참여할 ‘PI 프로젝트 조직’을 구성하기로 하였고 4개 법인으로부터 총 44명의 PI Project 멤버 명단을 취합했다.
2009년 3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전 법인의 직원들에게 프로젝트의 취지와 산출물, 그리고 프로젝트를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를 알리는 것이었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일선 직원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시스템 구축 이후에 그들이 제대로 사용해야만 조기에 안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4개 국어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하고 직접 출장을 다니면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였다.
프로젝트의 범위는 4개 법인에 걸쳐 재무회계, 관리회계, 원가관리, 자산관리, 구매, 인사관리 등 관리 영역뿐 아니라 영업관리, 개통, 빌링 등 고객 서비스 영역, 그리고 업무포털, 메일, 업무용 메신저 등 IT 영역까지 광범위했다. 이러한 영역에서 기존 프로세스를 개선하거나 새로 만드는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을 먼저 하고, 이를 새로운 시스템에 반영하는 것이었다.
BPR 기간에 40명이 넘는 4개 법인의 PI멤버들이 한국 본사 사무실에 모여서 각 그룹별로 토론과 학습을 하면서 프로세스를 정의해 나갔으며,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최수정 차장은 20명이 넘는 해외법인 직원들을 챙기고 하루하루 산출물을 정리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도록 열심히 일해야만 했다. 그야말로 피가 나고 이가 갈리는 PI 프로젝트였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 그리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2009년 10월 한국에서 사내 업무포털인 MINT, 영업자동화 시스템인 SFA 및 SAP-ERP 시스템과 Billing시스템을 오픈한데 이어 2010년 1분기에 일본과 중국의 시스템이 오픈하면서 한중일 3국의 프로젝트가 일단락되었다.
한편, 미국법인은 프로젝트가 한창이던 2009년 중반에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Panther Express를 M&A함에 따라 Panther의 CDN 운영 플랫폼과 우리의 기존 Legacy를 통합하는 PMI(Post-Merger Integration) 프로젝트를 선행한 후에 이를 ERP 시스템에 반영하기 하기로 했다. 따라서, 한중일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직후인 2010년 3월부터 미국법인 프로젝트를 착수하였으며 컨설턴트와 개발자들이 미국에 상주하면서 6개월 만에 프로젝트를 완료하였다.
이로써 2009년 3월에 시작한 Global PI Project는 20개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2010년 8월에 대장정을 마무리하였다.
비록 시스템 오픈 초기에 미흡한 점들이 많이 발견되었으나, 전 직원들의 협조 덕분에 6개월여의 안정화 기간을 거친 후에 2011년부터는 4개 국가에 걸쳐 있는 Global One Organization의 모든 업무를 연결하는 중추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 21편에서 계속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