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ftbank와 제휴, 일본 대기업 공략
2005년 1월 일본법인 설립 후 첫해 누적 매출이 1억 엔을 넘어섰다.
설립 첫해의 실적치고는 대단한 성과였다. 하지만 매출의 80% 이상이 온라인게임으로부터 발생했고,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대형 고객들은 Nexon, NCSoft 등 일본에 진출한 한국계 온라인 게임사들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온라인게임 시장은 블루오션을 거쳐 레드오션으로 넘어간 지 오래되었고, 온라인게임이 주 고객인 다운로드 서비스는 상향 평준화된 인터넷 서비스 덕분에 속도 등 품질보다는 가격이 거의 유일한 경쟁요소가 되었다. 따라서 한국보다 인터넷 트렌드가 한발 늦은 일본에서도 조만간 온라인게임을 대상으로 하는 다운로드 서비스의 시장 가격이 떨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고, 일본의 로컬 서비스업체보다 원가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는 대안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한국계 온라인 게임사 외에 다른 업종의 일본 기업으로부터
계약을 따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온라인 비즈니스 자체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아서 온라인게임 외에 동영상 등 대규모 트래픽이 발생하는 온라인 사이트가 많지 않았다. 두 번째는 우리보다 앞선 경쟁사들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CDN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J-Stream, IIJ, Accelia, AII 등 주로 동영상에 특화된 강력한 로컬 사업자들이 있었고, 2003년에 설립된 Akamai Japan과 당시 Global CDN 2위 사업자였던 Speedera의 리셀러인 BroadmediaCDN (회사명은 ClubiT Corporation이었고, Softbank Broadmedia Corporation의 100% 자회사였다) 등이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자국 기업을 선호했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영미권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에 대해서는 그래도 호감이 있는 편이었다. 더구나 업계의 톱클래스 기업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일본 국내 기업도 아니고 영미권 국가가 아닌 한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었기 때문에 고객을 만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특히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입찰을 할 때에는 일본 국내 기업인 J-Stream, IIJ, Accelia와 Akamai Japan 등 메이저 업체에만 입찰의뢰서를 보내는 것이 관행이었다.
몇 안 되는 한국계 온라인 게임사만 바라보는 것은
회사의 성장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새로운 전략을 세웠는데, 일본의 통신 대기업과 합작투자를 통해 로컬 브랜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회선 계약을 체결했던 IRI의 모회사인 BBT가 제일 먼저 우리의 일본법인인 CDNetworks Japan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BBT의 이사회에서 우리에 대한 투자 안건이 부결되고 말았다. 그러나 BBT의 COO인 Nakamura 씨는 우리와의 전략적 제휴가 무산된 것을 아쉬워하며, 자신의 전 직장이었던 Softbank Broadmedia Corporation의 자회사이며 Speedera의 CDN 서비스를 재판매하고 있던 ClubiT Corporation의 사업본부장인 Toshihito Kubo(久保 利人)씨를 소개해 주었다.
Speedera Networks는 Ajit Gupta(CEO), Rich Day(Chief Architect, 3년 후 우리 미국법인의 일원이 된다), Eric Swildens(CTO) 3명이 1999년에 미국에서 설립한 CDN 전문기업으로 Akamai에 이어 Global CDN 2위 사업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으나, 2002년부터 Akamai로부터 특허 소송에 시달리다가 2005년 3월 Akamai에 합병되고 말았다.
소프트뱅크는 Softbank Broadmedia가 Akamai CDN을 재판매하고, 그 자회사인 ClubiT이 Speedera CDN을 재판매하고 있었는데, 이는 Global CDN 1, 2위 업체의 서비스를 동시에 재판매하여 고객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제휴사로부터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의 영업방식을 전개하고자 하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Akamai가 Speedera를 합병하여 Global CDN 전체 점유율의 80%를 차지하게 되자 이를 견제할 또 다른 파트너를 물색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이는 일본 현지 고객의 특성과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는 Akamai의 일방적인 영업방식 때문에 고객들의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Kubo 씨는 우리 회사가 미국의 CDN 기업에 비해 매출은 작지만 한국에서 운영하는 인프라와 트래픽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부채도 없이 탄탄한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고 매년 100%씩 성장하고 있는 유망기업이라는 점에 매우 호감을 표시했다.
그는 합작회사 설립을 제안해왔다.
ClubiT이 51%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영업, 마케팅, 기술 담당자와 임원 3명을 파견하여 실질적으로 경영을 주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51%의 지분과 경영권은 우리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ClubiT 경영진도 합작회사의 경영권 확보에 집착했고, 결국 합작법인 설립 모델은 경영권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협상 자체가 물 건너가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Akamai를 견제할 새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본투자 없이 양사의 인프라를 결합하는 방식의 공동사업을 제안했다.
즉, Softbank는 IDC와 ISP를 계열사로 소유하고 있으므로 IDC 상면과 네트웍 회선을, 우리는 하드웨어와 CDN솔루션 및 운영기술을 제공하고 양사의 영업팀이 각자 영업을 하되 계약별로 누가 먼저 수주하느냐에 따라서 수익배분비율을 달리 하는 형태의 파트너십을 제안했던 것이다.
ClubiT의 협상대표인 Kubo 씨와 우리 측 협상대표인 나와 유승을 대표는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만나 협상을 진행했고, 그렇게 2개월에 걸친 치열한 협상 끝에 2006년 1월 MOU를 체결하고 3월에 공동사업 계약을 체결하였다.
해외기업과의 첫 파트너십 계약이었다.
그것도 10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Softbank와의 제휴였다.
이는 곧 인터넷 비즈니스를 하는 Softbank 계열사들을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Softbank의 브랜드와 영업력을 앞세워 일본의 대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2006년 초 3천만 엔을 밑돌던 월 매출은 공동사업 계약을 체결하고 ClubiT이 계약을 수주하기 시작한 하반기부터 4천만 엔을 훌쩍 넘어섰다. 공동사업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ClubiT이 수주한 고객이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파트너십 체결 자체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영업에 자신감을 가져온 것이 원인이었다. 결국 법인 설립 2년 차인 2006년 한 해 동안 누적으로 4억 2천만 엔의 실적을 달성했다. 이는 당시 환율로 45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었고, 한국 본사가 설립 3년 차에 달성했던 28억의 2배에 달하는 놀라운 실적이었다. 더구나 본사보다 훨씬 적은 조직과 인력으로 이루어낸 것이었기에 더욱 값진 것이었다.
ClubiT과의 공동사업이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CDNetworks의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들의 브랜드로 영업하기를 원했던 그들을 위해 별도의 모니터링 사이트와 통계 사이트를 Whitelabling으로 제공하기 위해 본사 연구소 직원들이 많은 노력을 들였고, 고객과의 직접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는 그들의 정책 때문에 장애가 발생해도 고객과 직접 연락하지 못하고 ClubiT의 운영직원을 통해야만 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웠으며, 양사의 영업사원들이 같은 고객에 컨택을 할 때에는 파트너를 배려한다는 명분 때문에 우리 측에서 제안을 포기하는 바람에 우리 영업사원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대기업과의 파트너십은
단순히 재판매를 통한 매출 확대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공동사업을 위해서는 그들을 리드할 수 있는 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과 체계화된 문서 및 고도화된 업무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점을 배우게 되었고,
이는 일본법인뿐 아니라 본사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ClubiT과의 공동사업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 후 Singapore Telecom, Telecom Italia 등 해외의 거대 통신사와의 파트너십 협상에 당당히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에서의 성공이 우리 회사가 해외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Global CDNetworks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17편에서 계속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6편 - Softbank와 제휴, 일본 대기업 공략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