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도약을 위한 프로세스 재정의
2005년 2월 도쿄에 법인을 설립하고 우리 회사 최초의 주재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유승을 법인장과 나는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도쿄 북서쪽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의 오오미야역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출근하여 밤 10시 30분에 도쿄역을 출발하는 마지막 열차를 타고 퇴근하는 생활을 6개월 넘게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해외법인만 설립했지 해외에서 사업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문서 및 프로세스가 정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로세스는 있었지만 그것은 담당자의 PC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에만 저장되어 있었기에 그들이 없는 해외에서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당시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일본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것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본사의 조직과 사업체계를 카피캣해서 일본에 씨디네트웍스의 작은 복사본을 만드는 것이었다.
영업을 하려면 제안서, 브로셔는 물론 견적서, 계약서, 서비스 신청서, 요금청구서 등 최소한의 기본적인 문서가 필요하고, 잠재고객들에게 회사를 알리기 위한 홈페이지, 그리고 CDN(Content Delivery Network, 콘텐츠 전송 서비스)은 사용한 만큼 비용을 부담하는 종량제 서비스이므로 사용량 통계 시스템 등 최소한의 시스템도 필요했고, 고객 측 기술 담당자를 위한 User Guide 등 기술문서도 필요했다. 그 외에도 회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회계, 인사, 총무 등에 관한 규정과 프로세스도 필요했다.
2000년에 한국에서 씨디네트웍스를 창업할 때도 창업멤버 5명 중에서 나의 역할은 영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와 기술을 제외하고 영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기반 문서, 프로세스 및 홈페이지, 통계시스템 등을 직접 기획했었는데, 사업을 영위한 지 5년이나 지났고 해외사업을 할 정도로 조직이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프로세스와 시스템은 달라진 게 없었다. 당연히, 일본에서는 영업뿐 아니라 기술과 관리를 포함한 회사의 모든 문서, 프로세스 및 시스템 기획이 내 몫이었다. 물론 유승을 법인장과 함께 했지만, 이제 입사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유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번역과 일본 현지의 법령이나 규정에 맞게 로컬화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야말로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심정이었다.
나는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창업한 지 5년이나 지났고 코스닥 상장을 준비할 정도로 사업과 조직이 성장했는데, 어째서 본사를 카피캣하는 해외법인에서 또다시 '無에서 有를 창조'해야만 하는 것일까?
둘째, IT 서비스를 業으로 하는 회사인데, 어째서 서비스 장애의 원인은 주로 인재(人災), 즉 사람의 실수이고, 왜 매번 장애 대응은 그렇게도 서툴까?
셋째, 영업부터 기술지원까지 고객에게 질문하거나 응대하는 유형은 뻔할 텐데, 왜 그 결과는 담당자가 누구냐에 따라 크게 좌우될까? 즉, 일의 성과가 너무 담당자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게 아닐까? 그들이 아파서 쉬거나 그만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영업 및 관리 분야는 물론이고 기술을 모르는 내가 한국 본사의 Pre-sales, Post-sales 및 개발팀 직원들과 일일이 전화통화를 해가면서 기술안내문서까지 하나하나 만드느라 주말도 없이 매일 야근을 하면서 나의 건강은 점차 나빠져 갔고, 급기야 2005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는 앉았다가 일어설 때마다 심한 현기증으로 세상이 흔들리고 뒤집어지는 듯한 증상을 겪게 되었다. 나중에 한국에서 진단한 병명은 '기립성 저혈압'. 좋은 소식은 죽을병은 아니라는 것이었고 나쁜 소식은 치료 방법이 딱히 없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일본어로 제대로 소통을 할 수가 없었기에 일본에서 치료를 할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쉬거나 운동하는 것 외에 딱히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메스꺼움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 건강은 점점 악화되어갔다. 다행히, 그 무렵 일본법인의 조직은 사업, 기술, 관리의 3개 조직에 20명가량으로 증가했고 신민식 팀장 등 본사에서 파견된 한국인 직원들이 제 몫을 잘해주어 어느 정도 조직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건강을 잃으면 Next를 기약할 수가 없기에
아쉽지만 한국 본사로 복귀를 결정했다.
2005년 2월에 '국회의사당 앞 역' 근처의 3인용 렌털 오피스에서 일본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을 채우지 못한 그해 초겨울… 귀국 비행기에 오른 내 마음은 착잡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들을 구상해 보았다. 일본 사업을 하면서 들었던 3가지 의문은 늘 내 화두였고, 결론은 Business Process를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구의 PC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자동화되고 연결되고 전체로서 통합되어야 하며, 앞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 사업을 하더라도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고통 없이 바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특정 언어와 국가의 프랙티스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화되어야 한다.
귀국 직후, 나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새로운 팀을 만들었다. 'BPM팀', 즉 Business Process Manaement Team이었다. 비록 나 혼자 있는 1인팀이었지만, 준비기간을 거쳐서 회사의 모든 팀장들이 참여하는 사내 프로젝트를 발족했는데, 이름하여 'Business Process 재정의 프로젝트', 즉 PC와 담당자들의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회사의 모든 프로세스를 문서로 정리하고 재정의하는 프로젝트였다. 물론 문서로 정리하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고 향후 ERP 등 자동화된 통합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사전 프로젝트였다.
귀국 비행기에서 착잡했던 마음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 18편에서 계속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7편 - 글로벌 도약을 위한 프로세스 재정의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