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Market은 어디인가?
2001년에 온라인게임 시장을 석권하고(7편), 2002년에는 HD급 고화질 동영상 시장을 선점한(8편) 이래, 2003년까지 온라인게임, 이러닝, 쇼핑몰, 포털 등 당시 CDN 서비스가 필요한 온라인 업종에서
우리가 영업할 수 있는 상위 기업들은 대부분 우리의 고객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영업할 수 있는 상위 기업’이란 모든 IT 수요를 그룹 내부적으로 조달하는 대기업 계열사와 우리보다 인프라 규모가 월등히 큰 기업들을 제외한 상위 기업들을 말한다.
CDN 업계의 선도기업으로써 대부분의 상위 기업들을 고객으로 유치했지만, 경쟁사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1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 고객의 Needs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 회사의 독보적인 VIP 고객은 엠플레이, 즉 넥슨을 포함한 게임 4개사 연합이었다. (원래 5개사였으나, 게임팝은 2002년부터 5개사 연합을 탈퇴해서 독자적으로 우리와 계약을 맺었다. 엠플레이는 넥슨의 자회사로 인프라 운영을 담당한다.) 2003년 12월 우리 회사의 월 매출이 약 9억 원이었는데, 그중에서 엠플레이로부터 발생하는 금액이 2억 원이 넘었으니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셈이었다.
엠플레이의 CDN 계약에 대한 실질적인 의사결정자는 모회사인 넥슨의 강OO 실장이었다. 그는 우리와의 계약뿐 아니라 넥슨의 초기 멤버로서 회사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실력자였다.
그런 실력자가 2003년 봄부터 일본으로 출장을 자주 가더니, 그 해 가을에는 아예 주재원으로 장기 파견을 가게 된 것이다.
넥슨은 2000년부터 일본 사업을 시작했었는데, 3년이 다 되도록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일본은 '90년대 말에 NTT가 NTT Docomo라는 브랜드로 텍스트 위주의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를 출시한 이래 텍스트 기반의 모바일 인터넷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하게 되었고, 반대급부로 온라인 인터넷 시장이 발달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일본은 인터넷의 불모지라고까지 불렸다. 그런데 넥슨에서 사실상 이인자로 불리던 강영태 실장이 일본에 상주하기로 한 것을 보고 나는 일본의 온라인 인터넷 시장에 뭔가 변화가 있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2003년 11월, 나는 ‘일본 온라인 비즈니스 시장 조사’라는 명목으로 일본 도쿄로 가서 Nexon Japan과 GameOn(e삼성이 일본에 설립한 온라인게임 퍼블리싱 회사), 그리고 일본 2위의 기간통신사업자인 KDDI를 방문해서 일본의 온라인 비즈니스 현황과 IDC의 가격 수준 등에 대해 시장조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요 목적은 강영태 실장을 만나서 넥슨이 왜 일본 사업을 강화하기로 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 회사에서 공식적인 첫 해외출장이었다. 나의 첫 좌충우돌 출장기는 별도의 외전으로 전하고자 한다)
도쿄에서 만난 강실장은 일본의 인터넷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 주인공은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이었다. 일본의 온라인 포털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Yahoo Japan의 창업주인 손정의 사장은 브로드밴드 사업을 위해 Yahoo! BB를 설립하고 2001년 6월 일본 최초의 ADSL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리고 요금을 경쟁사인 NTT의 ISDN서비스 대비 8분의 1 수준으로 책정했다. 그동안 회선을 공급하는 NTT의 비협조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지 못했지만 2003년 무렵부터 가입자 확보를 위해 길거리에서 ADSL 모뎀을 찌라시 뿌리듯이 무료로 뿌리고 있었다. 덕분에 2003년 여름부터 ADSL 가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가입자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ADSL의 빠른 속도를 즐길만한 온라인 사이트가 없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NTT Docomo라는 텍스트 기반의 모바일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 사이트는 Yahoo Japan, eXcite 등 몇몇 포털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온라인에서 아무것도 할 게 없는 ADSL 유저들이 온라인게임으로 몰려들었다.
당시 일본의 게임 산업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오락실 게임으로 익숙한 아케이드 게임, X-Bos, PS2 등 게임기를 이용한 콘솔게임 등이 대부분이었고, 온라인게임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덕분에 한국의 온라인게임회사들이 좁은 시장을 비집고 고군분투하며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ADSL 가입자 증가와 함께 온라인게임 사용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90년대 말 한국도 이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월 10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으로 KT가 거의 독점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ADSL을 하나로통신이 '99년 4월부터 3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영업을 시작한 이래 ADSL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 결과 온라인 비즈니스가 급성장했었다. 그리고 똑같은 상황이 일본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2004년 하반기부터는 일본에서도 온라인 비즈니스가 활발해질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온라인 비즈니스 활성화의 도화선이 온라인게임일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대규모 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CDN 사업자가 필요할 것이고, 당시 시장조사 결과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로컬 CDN 사업자가 없는 상태였으므로 우리가 서두른다면 시장을 선점하여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 CDN 시장을 선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미 일본에 진출한 한국계 온라인게임회사들도 있으니 초기 고객 확보도 어렵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 IDC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일본 2위 기간통신사업자인 KDDI를 방문한 나는 우리 회사와 CDN 비즈니스에 대해서 소개를 했는데, 그들은 CDN이라는 용어를 처음 듣는다고 했다. 내가 방문한 용건이 KDDI의 IDC와 Network 현황 및 가격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도쿄 내에 위치한 IDC의 Full Rack과 1 Gbps Port의 가격을 얼마까지 줄 수 있는지 묻자, 그들은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찾아와서 1G Port의 견적서를 달라고 하는 사람을 처음 본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그 정도 규모를 거론할 수 있는 회사는 당시 일본 포털 서비스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던 Yahoo Japan 뿐일 거라고 했다. 그다음부터 우리 회사와 CDN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어보며, 우리가 한국에서 수십Gbps의 트래픽을 처리하고 있다고 하자, 그 규모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는 그 정도 규모의 견적은 임원인 사업본부장의 컨펌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다. 1시간가량 지나서 정식 견적서는 아니고 우선 구두 컨펌을 받았다며, 외국에서 직접 방문해 준 점을 고려하여 1G Port의 표준가격 2,500만 엔을 특별히 할인해서 1,250만 엔까지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업팀장은 그 정도의 할인율을 승인받은 것은 자기도 처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특별히 할인해준 1,250만 엔은 당시의 환율로 환산하면 약 1억 2천만 원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일본의 IDC 요금이 비쌀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금액을 듣고 나서 나는 깜짝 놀라서 기가 질리고 말았다. 사업기회가 있다고 해도 역시 일본에서 사업하기가 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미팅이 끝나고 통역을 맡아준 KDDI의 한국인 직원과 식사를 했는데, 그로부터 일본은 한국과 달리 수많은 ISP 사업자가 있기 때문에 KDDI처럼 거대 통신회사가 아닌 중소규모 회사를 찾아보면 답이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듣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귀국 직후 당시 사업본부장이었던 김형석 이사와 고사무열 사장에게 일본 시장조사 결과를 보고하면서,
"한국에서 보이지 않는 신시장의 돌파구를 일본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분위기를 접하고 흥분해 있던 나와 달리 두 분은 내 얘기가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먼 일본보다 한국에서 눈앞에 당면한 과제와 이슈들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김형석 이사는 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음에도 신중한 입장이었던 반면에, 사장님은 나에게
‘헛된 꿈 꾸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
는 충고까지 하셨다. 당시 우리는 독자적인 플랫폼과 기술력도 없었을 뿐 아니라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장애 때문에 영업팀 업무의 많은 부분이 고객에게 사과하러 다니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을 빗대어 사장님은 “좁은 한국땅에서 서비스하고 고객 지원하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해외사업을 벌일 수 있겠느냐?”라고 하셨다.
두 분의 반응을 접한 나는 기운이 빠져버리는 느낌이었다. 정말로 내가 너무 비현실적인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의 인터넷 시장 변화는 분명히 우리에게 기회였고, 그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 아까웠다.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였다.
그때부터 나는 일본에 진출할 방안을 고민했고, 수시로 김형석 이사에게 나의 설익은 아이디어를 말씀드렸다. 그렇게 몇 개월간 꾸준히 노력한 결과 2004년 3월 무렵부터 김형석 이사도 내 의견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가 내 의견에 공감한 이유는 내가 꾸준히 설득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점점 어려워지는 영업 환경이 한몫을 했다. 이미 인터넷 비즈니스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었고, KT, 데이콤 등 기간통신사업자뿐 아니라 효성, GS 등 대기업 계열사들도 CDN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우리 고객들에게 끊임없이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ISP 3사의 IDC 가격 담합 때문에 네트웍 원가를 낮추기도 어려워져 한국에서 우리가 얼마나 더 사업을 할 수 있을까라는 위기의식까지 갖게 되었기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의견에 동의하기 시작한 김형석 이사와 달리, 사장님은 여전히 생각을 바꾸지 않으셨다. 한국에 집착하지 말고 전선을 넓혀야 한다는 내 생각과 달리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안정적인 서비스 기반과 기술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사장님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함을 느꼈고,
"영업팀장답게 영업을 통해 사장님을 설득할 충격적인 이벤트를 만들어야겠다"
고 생각했다. 그 결과는 별도의 장을 통해서 전하고자 한다.
-- 11편에서 계속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10편 - Next Market은 어디인가?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