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멤버
1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사무열 과장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금방 친해지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고, 한번 맺은 인맥을 잘 관리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평생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
1999년 말이 되자 나도 다른 부서를 선택해서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었고, 고사무열 과장이 호스팅사업팀으로 가면서 나중에 불러주겠다는 말을 믿고 있었기에 그 밖에 다른 부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권리 행사의 날이 다가올 즈음 만난 그는 뜻밖에도 본인이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게 있으니 그게 어느 정도 완성될 때까지 부서를 옮기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는 말을 한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준다니 답답하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 과장이 오랜만에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가 나를 집으로 초대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날은 평소와 달리 초대받은 사람이 나 혼자뿐이었다.
집에 도착해보니 손님은 나 혼자뿐인데 마치 잔치라도 하듯 커다란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고,
웬일인지 내가 도착하자마자 요리들이 일사천리로 나오면서 너무나 빠른 속도로 식사가 진행되는 것이었다. 마치 든든히 먹여서 마음을 열어놓고 뭔가를 부탁하려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식사가 끝나자마자 밥상을 치우더니, 고사무열 과장이 종이와 펜을 가져오고 형수님도 그 곁에 앉더니 그가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 부부가 다단계 피라미드에 빠져서
나한테 그걸 권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했다.
순간 얼마 정도의 금액까지 사주어야 하나 고민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가 설명한 것은 다단계 피라미드는 아니었다. 대신 그는 종이에 동그라미를 서너 개 그리더니 그게 인터넷이라고 하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하고, 옆에 앉은 형수님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열심히 설명한 것이 소위 ‘CDN(Content Delivery Network) 사업계획’이었던 것이다.
사업내용은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때 내가 이해한 것은 바로 얼마 전까지 나의 사수였던 고사무열 과장이 뭔가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밑그림도 다 그려졌고 솔루션도 확보되었으니 나는 돈을 투자할 필요도 없고 몸만 오면 된다는 것이었다. 설명이 다 끝나고 베란다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면서 초조하게 내 대답을 기다리는 그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언제부터 가면 돼요?”
내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런 식으로 그의 대학 동창부터 전직장인 LG-EDS, 데이콤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그가 함께 일하고 겪으면서 찍어둔 사람들을 하나씩 포섭해 나갔을 것이다.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사업내용도 뭔지도 모르면서 함께 일하겠다고 선뜻 대답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는 것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생각은 나중에 하는 버릇..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2000년 3월 어느 날 법인 설립 준비를 위해 KIDC 10층에 임시로 만든 사무실에 갔는데 나처럼 고사무열 과장에게 포섭된 사람들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그와 LG-EDS에서 함께 일했었고 당시에는 삼성SDS에 근무하던 기술 담당 안OO씨, 데이콤 경영계획본부에 있었지만 나와는 평소 안면만 있었던 마케팅/투자유치 담당 박OO씨, 그리고 고사무열 과장의 대학 선배로 KT&G 출신의 관리 담당 김OO씨 이렇게 3명이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인물은 실명을 거론하지만 그 외의 인물들은 성만 언급함을 양해 바란다.)
그렇게 고사무열 사장을 포함해서 5명이 법인 설립 준비를 하면서 각자의 역할을 정했는데, CEO 고 사장, CTO 안OO 이사, CSO 박OO 이사, CFO 김OO 부장.. 다 좋은데 전직원 5명인데, C-Level만 4명이었다.
"그럼, 영업은 누가 하지?"
그래서 자연스럽게 영업관리는 해봤어도 영업은 해본 적 없는 5명 중 막내인 내가 씨디네트웍스 최초의 영업팀장이자 영업사원이 되었다.
아직 회사 설립이 되지 않았기에 고 사장을 제외한 4명은 기존 회사에 다니면서 몇달간 저녁과 주말에 무보수로 일을 하며 사업 준비와 법인 설립 준비를 해나갔고, 2000년 5월 27일 법인 등록이 완료된 후에도 회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첫 투자 유치가 가시화된 7월이 되어서야 정식 직원으로 입사해서 첫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달에 5명의 창업 멤버 외에 5명이 더 입사를 했는데, 씨디네트웍스 최초 신입사원인 김정연 사원을 제외하고는 사장님의 인맥을 통해 입사를 결정한 사람들이었으니, 데이콤 호스팅사업팀 출신으로 기술팀장을 맡은 이윤근 과장, 고사장이 잠시 몸담았던 DST 출신으로 개발팀장을 맡기로 한 조병룡 과장, 관리팀장 김OO 부장이 회계사무소로부터 스카우트했으며 1인 영업팀장인 나에게 볼 때마다 돈 벌어 오라고 핀잔을 주었던 회계담당 이일숙 대리(나중에 본인은 농담으로 그랬다고 했지만, 6개월 동안 한 건도 수주하지 못했던 나에겐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로써 작지만 개발팀, 운영팀, 영업팀을 갖춘 IT서비스 기업으로서의 조직의 틀이 잡히게 되었다.
-- 3편에서 계속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2편 - 창립 멤버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