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출장 에피소드
2003년 11월 나는 우리 회사 설립 이후 영업 목적으로는 처음으로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다. (2001년 이OO 부장, 안OO 이사, 주OO 이사 등 3명이 소위 ‘신사유람단’이라는 별칭으로 미국의 CDN 사업자(Mirror-Image, Adero 등)의 선진기술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고, 2002년에는 이OO 부장, 이OO 이사가 Akamai와의 파트너십을 협의하기 위해 미국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영어도 능숙하지 않으며 일본어는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내가 혼자서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으니, 부담감과 함께 두려움이 엄습했다. 욕심은 많아서 비싼 비행기 값 치르면서 가는 길이니 넥슨의 강OO 실장만 만나고 돌아오면 너무 아까울 것 같아서 일본에 진출한 한국계 게임사들도 만나기로 하고, 2위 통신사업자인 KDDI도 방문해서 일본의 콘텐츠 시장과 IDC 시장조사까지 하고 오자는 심산으로 3~4군데를 방문할 계획까지 세워놓았지만,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항공편과 호텔을 예약하고, 공항에서부터 첫 번째 방문지인 넥슨 사무실까지 가는 길은 물론 각 방문지로 이동하는 교통수단과 이동 동선까지 빠짐없이 조사를 해서 시간표를 빡빡하게 작성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국가로의 출장을 앞두고 걱정이 되기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사장님을 비롯해서 김형석 이사님과 경영관리팀장이었던 조OO 차장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걱정을 해주었다.
해외출장은커녕 국내출장도 거의 없던 터라 출장경비에 관한 규정이 없었던 때였다. 경영관리팀장인 조OO 차장이 내게
"출장비는 얼마를 드리면 되겠느냐?"
고 물었다. 호텔 숙박비와 접대비는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될 것이고 교통비와 비상금 정도만 현금으로 가져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넉넉하게 2만 엔을 현금으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카드로 결제할께요."
라고 했다.
지금도 일본은 Cash Only가 많은데 그때는 카드결제가 되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
출장 떠나기 전날 조OO 팀장이 내게 '빳빳한 5천 엔짜리 지폐 4장'을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인천공항을 통해 일본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에는 김포공항-하네다공항 루트가 막 생긴 때라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나도 몰랐었고, 비행편도 적었을 뿐 아니라 가격도 매우 비쌌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항공사 사정으로 인해 비행기가 1시간가량 늦게 출발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예상보다 1시간 이상 늦게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우리 회사의 최대 고객인 넥슨의 강OO 실장과 만나기로 약속을 한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로밍요금이 비싸다는 말에 로밍핸드폰을 빌려오지 않는 것이 후회되었다. (나리타공항에서도 로밍폰을 임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공중전화로 우선 강OO 실장에게 늦는다고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중전화를 걸려면 동전이 있어야 하니 가지고 온 5천 엔짜리 지폐를 동전으로 바꿀 수 있을만한 가게를 찾아 공항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껌을 하나 사고 잔돈을 거슬러 받아 겨우 공중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하고 약속시간을 늦추었다. 짧은 통화였지만 100엔으로 모자라 100엔을 더 넣어 통화를 마무리하고는 전화를 끊으면서 당시 한국보다 높은 일본의 물가를 실감했다.
원래 계획은 나리타공항에서 동경역까지 나리타익스프레스라는 논스톱 열차를 타고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택시를 탔다.
일본의 택시비가 비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원래는 택시를 탈 생각이 전혀 없었으므로 택시요금이 얼마인지, 나리타공항에서 동경역까지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는 미리 알아보지 않았었다. 그저 고객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택시를 잡아탄 것이다. 택시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갈 즈음 택시대기소처럼 보이는 곳에 수백 대의 차가 열을 맞추어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일본의 공항에서는 비싼 요금 때문에 택시를 타는 손님이 많지 않은데 나는 미련하게도 택시를 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으나, 택시는 이미 고속도로 입구로 진입하고 있었고 고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눈을 질끈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잠시 후 눈을 떠 내다본 풍경은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길처럼 사람은커녕 집 한 채 없는 풍경이 이어졌다.
그리고 눈을 돌려 미터기를 쳐다보았다. 한국의 택시와 똑같은,
요금 올라가는 속도에 맞추어 말이 달리는 미터기였다.
말이 열심히 달리는 가운데 서울의 택시에서 요금이 올라가는 속도와 똑같은 속도로 100원씩 요금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여기는 일본이고 100원씩 올라갈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한국인이라고 원화로 요금을 세팅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
‘100원’이 아니라 ‘100엔’씩 요금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도 서울의 택시요금 100원씩 올라가는 속도와 똑같은 속도로…
가도 가도 도시는 나올 기미가 없고, 택시는 내릴 곳도 없는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침착하려고 애썼으나 1만 엔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식은땀이 나며 불안해지기 시작한 나는 급기야 택시운전사에게 "Card OK?"라며 카드로 결제가 되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무안하게도 돈도 없는 놈이 택시는 왜 탔냐는 눈빛으로 “노 카-도”라는 짧은 답변과 함께 그전까지의 외국인에 대한 친절 모드를 버리고 혼자서 구시렁거리는 것이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첫 해외출장길에 이게 웬 망신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사전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메타기의 말은 어느덧 1만5천엔을 넘어서 2만엔을 향해서 신나게 뛰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요금이 내 지갑에 있는 1만9천엔을 넘어서자 오히려 갑자기 마음에 평화가 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돈을 못내면 네가 손해지 내가 손해냐?’
라는 생각과 함께 고작 몇 백엔 때문에 외국인인 나를 경찰에 넘기겠느냐는 비이성적인 낙관론에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융통성이 없던 나는 비행기가 연착해서 늦게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짐가방을 끌고 고객을 만나러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원래 계획대로 운전사에게 신주쿠에 있는 와싱톤호텔로 가자고 했고, 호텔에 도착해보니 2만 2천엔 가량의 요금이 나와 있었다. 이미 느긋해진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운전사에게 호텔에서 환전을 해올 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호텔에서는 미국 달러만 환전이 가능하다는 우울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 문득 내가 씨티카드를 가지고 있으니 씨티은행에 가면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호텔에서 가까운 곳에 씨티은행이 있다는 안내를 받고는 택시로 돌아가서 씨티은행으로 가자고 했다. 씨티은행에서 현금서비스로 5만 엔을 찾고 택시를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 요금을 정산해보니 무려 2만 4천엔 가량이 나왔다. 아까운 마음에 속이 쓰렸지만, 국제적인 망신은 피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고객을 만나러 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자위하며 요금을 지불했다.
객실에 트렁크를 갖다 놓고 진땀을 흘려 망가진 몰골을 가다듬고 로비로 내려오니 거의 6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원래 5시 약속을 넉넉하게 6시반으로 시간을 바꾸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신주쿠역으로 가야 하는데, 낯선 곳이라 방향감각이 없어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신주쿠역이 어디냐고 물어보았지만, 영어로 대답할 자신이 없었는지 하나 같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손사래만 치며 가버렸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아깝지만 다시 택시를 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주머니에는 현금 5만엔도 있고 시내에서 이동하는 것이니 아까만큼 많은 요금이 나올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침 시간은 퇴근시간이 되어 버렸다. 서울만큼이나 악명 높은 도쿄의 러시아워(Rush Hour)에 갇혀 버린 것이다. 차창을 내다보니 처음엔 조깅하는 사람보다 느리더니 나중엔 걸어가는 사람들한테마저 뒤쳐져 버렸다. 왠지 일이 잘 안 풀릴 전조가 아닌가 하는 불길한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잠시 후 길이 뚫리기 시작했고, 나는 이 모든 것이 일이 잘 되려고 액땜을 한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저녁 7시가 넘어서 넥슨 사무실에 도착했고, 그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준 강OO 실장을 만나 백배사죄를 했다. 강 실장도 사정을 듣더니, 자기네 직원들도 그런 일들을 많이 겪어서 이해한다며 오히려 나의 미안함을 덜어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일본식 찻집으로 자리를 이동해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강 실장의 제안으로 한국에서는 생소한 말고기집으로 이동해 말 혓바닥 등 처음 먹어보는 고기를 먹으며 넥슨의 사업 얘기뿐 아니라 일본의 온라인게임산업, 콘텐츠산업, 그리고 IDC 및 네트웍 시장 상황 등을 들었다.
강 실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일본 출장을 가기 전에 '일본에서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는 온라인 콘텐츠 시장이 태동하는 일본에서 우리가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바뀌게 되었고, 이러한 확신으로 말미암아 나는 서울로 돌아온 후 경영진과 동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일본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나중에 이 에피소드를 몇몇 사람들에게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직원들이 들어 올 때마다 우리 회사 해외사업 초창기의 에피소드라며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퍼뜨려진 이야기를 내가 다시 들어보면 조금씩 부풀려져 와전되기도 하고 완전히 딴 얘기가 되어 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치열해져 가는 경쟁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돌파구를 찾으려는 생각에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좌충우돌하던 순수함과 네일 내일 할 것 없이 함께 달려들어 문제를 해결해 나가던 팀워크가 있었기에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11편에서 계속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외전 - 첫 해외출장 에피소드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