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N 3사 통일 & 後3社 시대 개막
지난 9편(총성 없는 가격 전쟁)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웹데이터뱅크, 필라민트네트웍스와 유사 CDN 업체 등 경쟁사들은 씨디네트웍스를 공동의 적으로 정하고 약속한 듯이 우리의 기존 고객 또는 우리가 영업 중인 고객들을 타겟으로 '씨디네트웍스 대비 반값'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2002년부터 가열된 가격 전쟁의 후폭풍이 2003년 하반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소위 ‘정통 CDN 서비스’라고 하면 2개 이상의 ISP 네트웍에 PoP을 구성하여 특정 ISP의 네트웍 장애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통념이었으나, 경쟁사들은 지속된 Low Price 정책으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ISP 네트웍을 1개로 줄이고 인프라 투자도 최소화하였다. 그 결과 필라민트네트웍스의 서비스에 큰 장애가 자주 발생했고 고객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당시 필라민트의 1위 고객은 엔씨소프트였다. 엔씨소프트는 온라인게임 1위 기업으로 우리도 계약을 얻기 위해 수 차례 도전했었으나, 이미 필라민트가 지나치게 낮은 단가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데다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번번이 수주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술적인 문제란 우리의 CDN PoP에 엔씨소프트의 게임 서버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형 고객에게 전용 서버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우리의 원칙은 우리의 플랫폼을 사용해야 하고 우리만이 컨트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엔씨는 자신들이 개발한 플랫폼을 우리 서버에 설치하고 본인들이 직접 컨트롤하게 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당시에는 가격을 낮추는 것도 어려운 결정이지만, 엔씨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몇 번의 큰 장애가 나면서 대형 고객들이 이탈하고 결정적으로 엔씨소프트가 계약을 해지하고 웹데이터뱅크로 넘어가면서 필라민트는 사실상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2004년 9월 30일에 폐업신고를 했다)
웹데이터뱅크는 호스팅 사업으로 시작해서 기술력도 있고 재무상태도 양호한 회사였으나, 세계적인 벤처기업으로 회사를 키우려는 창업자 A사장의 무모한 우회상장 시도 때문에 탈이 났다. 사업을 확장하고자 했던 A사장은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쉽게 상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자력으로는 단기간에 상장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이미 상장된 회사와의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을 선택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3년 12월 상장회사인 인츠커뮤니티와 합병을 함으로써 상장에 성공했다. 그러나 우회상장을 위한 자금 조달에 문제가 있었다. 상세한 사정을 여기에 적는 것은 부적합한 것 같아 결론만 말하자면, 인츠커뮤니티의 주식을 담보로 사채를 쓴 것이다.하지만 우회상장 직후 인츠커뮤니티의 주가가 4분의 1로 떨어져 담보가치가 떨어지자 사채업자로부터 즉각 빚독촉을 받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웹데이터뱅크는 국내 대기업 계열사인 B사와 제휴를 통해 B사가 확보한 KT-IDC의 상면과 네트웍을 사용하고 매출의 일부를 정산해 왔는데, 1년간 지불하지 않은 비용 15억원을 당장 갚으라는 독촉까지 받게 되었다.
A사장은 모든 자금을 동원해서 사채를 갚기 위해 노력했고, B사에 대한 채무는 CDN사업을 매각해서 갚는 것으로 하고, B사가 직접 매각해서 대금을 회수하도록 했다. B사에서 이 일을 맡게 된 석OO 과장은 가장 유력한 매수자로 씨디네트웍스를 지목했다. 그리고 당시 우리의 주주였던 삼성벤처투자를 통해서 제안을 해왔다.
웹데이터뱅크 CDN사업부문 인수 제안을 받은 후 내가 담당자로 지명되었다. 처음에 나는 인수에 회의적이었다. 그 이유는 필라민트가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고객들이 씨디네트웍스나 웹데이터뱅크로 넘어간 것과 마찬가지로 웹데이터뱅크가 부채 때문에 사업을 접게 된다면 고객들은 우리에게로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B사는 15억을 당장 회수해야 것이었다. 우리가 인수하지 않을 경우 분명 다른 회사에 매각을 하려 할 것이고, IT의 차세대 유망업종이라 불리던 CDN 사업에 진출하려는 수많은 회사들이 반갑게 달려들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석OO 과장이 염두에 두고 있던 매각 대상은 우리 회사 외에도 KT, 그리고 곰플레이어로 유명한 그레텍이었다. 그중에서 그레텍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이미 상당한 미디어 기술을 가지고 있던 그레텍은 우리 회사가 HD급 고화질 동영상 CDN 서비스로 각광을 받자 그 시장을 빼앗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시장에서도 잘 알려진 플레이어와 미디어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니 CDN 인프라와 고객을 확보하면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판단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상장을 하기 위해 펀딩까지 받은 터라 자금의 여유가 있었던 그레텍은 20억까지 지급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인수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사장님과 사업본부장, 그리고 재무이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한 결과, 경쟁사 인수의 목적을 명확히 정의하고, 웹데이터뱅크의 CDN 사업부문 M&A를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기로 했다.
M&A 목적은 ‘고객 확보’와 ‘기술력 확보’로 정했다.
그리고 이번 딜이 그 목적에 부합하는지 따져보았다.
2004년 1월 현재 웹데이터뱅크는 40여 개의 고객으로부터 월 1.9억 가량의 매출이 발생하고 있었다. 따라서 차질 없이 고객을 이관한다면 연간 20억 매출에 2억 가량의 영업이익 증가가 예상되었다. 그리고 당시 웹데이터뱅크는 업계에서 인지도가 꽤 높은 엔지니어들이 근무하고 있었고 시장에서도 기술력은 씨디네트웍스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개발한 우수한 CDN 서비스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수한 기술인력과 솔루션을 확보한다면 우리 회사의 기술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고려할 때 웹데이터뱅크의 인수는 ‘고객 확보’와 ‘기술력 확보’에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되었고, 거기에 잠재적인 경쟁사의 CDN 사업 진입을 저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수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했다. 문제는 인수 가격 협상과 인수 후의 PMI(Post-Merger Integration)였다.
우리의 입장을 정한 후 한 달여간 B사와 줄다리기 끝에 인수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인수 가격은 15억으로 하고, KT-IDC에 있던 우리 PoP의 일부 시스템을 B사가 KT 분당 IDC에 확보하고 있던 상면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우리는 KT에 내던 돈을 B사로 지급처를 바꾸는 것이니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고, B사는 기존에 웹데이터뱅크로부터 받던 정산 매출이 계속 발생하니 좋고, KT도 손해 볼 것이 없는 딜이었다. 그 와중에 잠시 주식 가격이 오르는 바람에 A사장과 인츠커뮤니티의 주주들이 마음을 바꾸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쨌든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인수 가격 협상보다 더 중요한 PMI가 남았다. 인수를 했다고 해도 고객들이 거부하고 핵심인력들이 거부하면 돈만 날리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웹데이터뱅크 인수를 통해 고객과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영업, 운영, 개발의 핵심 인력들이 씨디네트웍스로 재입사를 거부하지 않는 것이 관건이었다. 나는 B사의 도움을 얻어 핵심인력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개별접촉을 시작했다. 영업팀의 술자리에 불쑥 찾아가기도 하고, IDC로 가서 핵심 운영인력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여간 만나고 설득한 끝에 우리가 지목했던 핵심인력들 대부분이 씨디네트웍스로의 입사에 동의해 주었다.
이로써 2004년 1월부터 시작된 웹데이터뱅크 CDN 사업부문 인수 프로젝트는 2004년 4월 16일부로 영업 4명, 운영 4명, 개발 5명이 입사하기로 함에 따라 행정적인 절차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고객 이관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고객 이관을 위해서 웹데이터뱅크 출신 영업사원과 씨디네트웍스 영업사원을 한 명씩 짝을 이루어 조 편성하여 이관할 고객을 할당하고, 고객들에게 설명할 설명 가이드와 예상 질문에 대한 답안을 통해 고객들을 설득하도록 했다. 그리고 회의실에 큰 상황판을 만들어서 매일 저녁마다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회의를 했다. 그 결과 2004년 5월까지 대부분의 고객들이 계약 이관에 동의해 주었고, 2004년 4월에 13억이었던 월 매출이 6월에는 15.5억으로 증가하는 결과를 얻었다.
2003년 말부터 2004년 상반기까지 우리의 경쟁사들이 사라짐에 따라 우리는 한국 CDN 시장에서 그야말로 독주를 하게 되었고, 그것은 더 이상 가격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야말로 CDN 시장 통일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 회사의 성공이 언론을 통해 부각되면서 CDN 사업이 IT의 차세대 유망업종으로 인식되었고, 고만고만한 경쟁사들이 사라진 자리에 탄탄한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 계열사들이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2001년부터 LG홈쇼핑, LG카드, LG텔레콤 등 LG계열사에 CDN 서비스를 제공해오던 LG기공이 2003년 하반기부터 CDN 사업을 대외고객으로 확대하기로 했고(2005년 4월 GS계열로 편입되면서 GS네오텍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같은 GS계열이었던 GS홈쇼핑이 High Price를 감수하면서 CDN 사업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2005년부터는 효성그룹의 효성ITX가 본격적으로 CDN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KT, 데이콤, SK브로드밴드 등 기간통신사업자들도 저마다 CDN 사업을 자체적으로 시작함에 따라 2004년 6월에 우리가 달성했던 CDN 시장 통일은 잠시 동안의 기쁨을 주었지만,
시장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고,
後3社 시대가 열리며 더욱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 12편에서 계속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11편 - CDN 3사 통일 & 後3社 시대 개막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