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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동아빠 구재학 Sep 11. 2022

벤처 창업에서 글로벌 기업까지 18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2005년 설립한 일본법인의 성공에 힘입어 2006년에 중국법인 및 미국법인을 연이어 설립하면서 우리의 글로벌 항해는 순항하는 것 같았다. 순풍에 돛을 더하는 격으로 2007년에 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글로벌 사업을 위해 받은 1억불 투자는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우리는 실력은 물론 행운도 따른다는 자만심이 싹트게 되었다.


하지만 2004년에 해외사업을 시작한 지 4년이 되어가고 회사의 외양은 커져 갔지만, 구성원들의 역량과 조직체계, 프로세스 및 의사결정과정 등은 글로벌 사업에 맞게 진화하지 않은 채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본사의 조직과 사업체계를 카피캣 하는 방식으로 해외법인을 설립하다 보니 법인 간의 중복된 기능과 그로 인한 의사결정 지연 때문에

시간과 인력은 낭비되고 직원들은 예전보다 힘들어졌지만,
고객들의 만족도는 오히려 점점 떨어져 갔다.


그 결과 2007년 하반기부터 매출 성장은 정체되기 시작했고 영업이익은 떨어졌으며, 글로벌 사업 이후 처음으로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손실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경영진은 준비되지 않은 글로벌 사업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당시 해외사업을 맡고 있던 Steve W. Chung 이사와 나에게 글로벌 사업을 위한 조직구조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프로젝트를 맡겼다.


Steve 이사와 나는 해외사업본부 인력을 중심으로 프로젝트팀을 구성하여 프로젝트 목표와 범위 등을 정하고,

2008년 8월 가칭 ‘Global CDNetworks Project’를 발족하고
 임원들에게 프로젝트 착수보고를 했다.


착수보고에서 ‘사내 직원들과의 심층 인터뷰’ 및 ‘외부 전문가들의 조언과 Benchmark’를 통해 ‘올바른 Global HQ의 모습을 도출’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제시’하겠다고 보고했으나, 예산 절감을 위해 ‘외부 전문가들의 조언과 Benchmark’는 프로젝트 인력 중에서 MBA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던 자료들로 대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우리는 바로 한국법인 팀장급 이상 직원들과의 대면 인터뷰 및 해외법인 Manager 이상 직원들과의 서면 인터뷰를 시행했다. 그 결과 부서와 법인은 달라도 인터뷰 대상자들로부터 거의 비슷한 의견들이 다음과 같이 도출되었다.

   1. Too many cooks : 일사불란한 의사결정의 부재. 각 법인, 각 부서마다 제각각의 목소리만 존재하고 리더는 없음.

   2. 커뮤니케이션 혼란 : 수평/수직 커뮤니케이션 모두 문제. 한국 본사의 Head들은 HQ 역할을 못하고, 각 부서별 법인 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언어능력도 부족.

   3. Global 사업 vs. 한국사업 충돌 : 매출의 80%는 한국에서 나오는데, Technical Resource의 80%는 해외사업에 쏟아붓고 있어서 한국 고객의 불만이 쌓여감.

   4. 유사한 기능을 가진 4개의 기술본부 : 전사 인력의 75%를 차지하며 각각 운영인력과 개발인력을 보유한 4개 기술본부는 업무 비효율과 함께 인건비 증가의 주요인으로 꼽힘.

   5. Product Marketing 기능 취약 : 한국시장 중심의 Product Lineup으로는 Global Customer의 Needs를 충족할 수 없음.

   6. 경영기획조직 부재, 너무 약한 관리조직 : Global 전략을 수립/실행하고, 글로벌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기획 조직 신설 및 관리조직의 전문화가 필요함.

   7. 해외사업본부 해체 : 각 부서에서 해외법인과의 커뮤니케이션 필요시 업무는 모르고 외국어만 가능한 해외사업본부로 몰림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지연/왜곡이 발생할 뿐 아니라, 각 부서들이 스스로 외국어 능력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도록 하므로 각 부서의 글로벌 역량 향상을 위해 해외사업본부를 해체해야 함.


특히, 마지막 의견은 해외사업본부를 맡고 있는 나와 우리 부서원들의 자아반성이었으며(비록 해외사업팀의 신입 직원은 선배들과 헤어지기 싫다며 울어버렸지만…),

그때의 결정으로 인해 그 이후 회사의 거의 모든 조직장들이 영어로 능숙하게 회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해외사업본부 구성원들에게는 힘든 일이었지만 회사를 위해서는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위와 같은 의견들을 토대로 우리는 비슷한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와 경영학 이론들을 찾아 마치 대학생들처럼 공부하고 토론하며 생각들을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그동안의 인터뷰와 조사 및 토론을 거친 결과를 정리하여 2008년 10월 초 사장님께 중간보고를 드리는 되었다. 이때 보고한 ‘Global One CDNetworks’를 위한 제안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조직체계를 Geographical Region 조직에서 ‘Functional Matrix 조직’으로 변경 : Functional Head가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며, Country Manager는 법인 내 Function 간의 조율만 맡는다. (이는 글로벌 기업을 넘어 초국적기업의 Functional 조직으로 가기 위한 Interim Model임)

   2. ‘해외사업부문’ vs ‘한국사업부문’ : 회사를 크게 해외사업부문과 한국사업부문으로 나누고, CTO/CSO/CFO 조직은 공통조직으로 운영하되, Sales/Marketing/Biz Dev 기능은 국가별로 분리하여 각 시장별 Customer Needs에 집중하도록 한다.

   3. CTO 기능을 신설하고, 기술 조직을 Operation, Engineering, Research 기능으로 재편한다.

   4. CFO 기능을 신설하고, 경영관리팀을 각각 Accounting, Finance, HR 팀으로 분리한다.

   5. CSO 기능을 신설하고, M&A, Strategy, IT조직을 신설한다.


그러나 중간보고를 듣는 내내 사장님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사장님은 발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발표가 끝나자마자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내셨다. 하지만 우리는 사장님이 왜 화가 나셨는지, 어떤 내용이 마음에 안 드시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사장님의 의중을 가장 잘 이해하는, 모두가 사장님의 복심이라 부르는 임용기 상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창업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인데, 항상 지시만 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이 논리적으로 남을 설득하는 화법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창업자의 복심을 꿰뚫는 존재가 전체 조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그 사람의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조직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임상무의 통역(-.-;)에 의하면 사장님은 첫번째와 두번째 제안 때문이 실망한 것 같으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똑똑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좋은 자료를 취합해서 그림만 그럴듯하게 그린 것 같다.

   2. 갑자기 부사장, 상무급의 책임 있는 자리들을 여럿 만들었는데, 도대체 우리 회사 내에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글로벌 조직을 제시한다면서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 없이 그림만 그리면 어쩌라는 것인가?


순간  말이 없었다. 언제나 사장님보다 우리가  똑똑하고, 사장님이 잘나서가 아니라 밑에 있는 우리가 잘나서 회사가 여기까지 성장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는데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같았다. 역시 사장님은 창업자고 우리는 한낱 월급쟁이에 불과했구나 하는 비판을 하게 되었다.


사장님은 너무 실망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잘 정리도 못 하고 화만 내고 나가셨지만, 그 말씀이 전적으로 옳았다.

우리는 현실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그럴듯한 이론들만 가지고 자아도취에 빠져 토론에 열중했던 것이다. 정말 대학생처럼 말이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가 세웠던 가설들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되짚어갔다. 그리고 사장님 말씀처럼 현재의 조직과 R&R이 생겨난 이유 그리고 새로운 조직을 맡을 사람을 동시에 생각하며 발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조직 그림을 만들어 나갔다.


-- 19편에서 계속


벤처 창업에서 글로벌 기업까지 - Intro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2편 - 창립 멤버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4편 - 처음 맞은 치명적인 위기

5편 - CDN 업계 1위 등극

6편 - 창업 후 첫번째 계약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9편 - 총성 없는 가격 전쟁

10편 - Next Market은 어디인가?   

외전1 - 첫 해외출장 에피소드

11편 - CDN 3사 통일 & 後3社 시대 개막

12편 - 현해탄을 건너온 승전보, 글로벌사업의 시작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5편 - 꿈은 이루어진다, 코스닥 상장

16편 - Softbank와 제휴, 일본 대기업 공략

외전2 - 오오미야 사택 에피소드

17편 - 글로벌 도약을 위한 프로세스 재정의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

21편 - 처음이자 마지막 Layoff

에필로그 - 내가 이 글을 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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